‘내가 있잖아, 여기 있잖아’ … ‘다친’ 마음의 문을 열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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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산울림 ‘문 좀 열어줘’

오늘 산책은 ‘닫힌 문’ 앞에서 소심하게 출발한다. 음악동네로 이동하기 전에 먼저 이웃 마을 몇 곳을 기웃거려보자. 철학자 사르트르(1905~1980)가 쓴 희곡 ‘닫힌 문’(Huis Clos)은 ‘출구 없는 방’(No Exit)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마지막에 타인을 지옥으로 묘사한다(Hell is other people). 표현이 좀 과하다 싶으면 멀리 갈 것 없이 뉴스를 보라. 지옥은 원래 말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평판에 시달리고 재판도 자주 열린다. 반면에 천국엔 노래가 많다. 여기저기서 음악회가 열린다. ‘열린 음악회’(KBS1 TV) 장수 비결은 작명 덕도 한몫했을 터이다.

시인의 마을도 곳곳이 닫혀 있다. “문 열어라.” 상점이 아니라 꽃을 향해 이런 명령을 내리는 건 시인의 특권이다. 서정주는 ‘꽃밭의 독백’에서 ‘문 열어라 꽃아’를 두 번이나 외친다. 자신의 무기력과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서다.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예술의 집에 들어가고자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한 시인(김동명)도 있었다.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 나는 ‘번개 같은 노래에 낙엽같이 춤추겠나이다’. 여기서 당신은 ‘악의 꽃’으로 유명한 보들레르다. 동서고금에 꽃이 지천인데 하필 ‘악의 꽃’이었을까.

음악동네에선 꽃과 창, 달이 세트로 등장하는 미장센이 한때 유행했다. ‘한 송이 장미를 종이에 곱게 싸서/ 어제도 오늘도 하루같이 기다리네/ 그대의 창문은 열릴 줄 모르니/ 사랑의 달빛으로 노크를 해야지’(도시아이들 ‘달빛 창가에서’ 중). 이런 노래를 특별히 세레나데로 분류하는데 이탈리아말로 저녁음악(소야곡)이라는 뜻이다. 저녁은 날마다 찾아오고 음악엔 국경도 없으니 엄혹한 시절엔들 소야곡이 없었을까.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으로 시작하는 남인수의 히트곡 ‘애수의 소야곡’(1937)에는 달빛 대신 별빛이 등장한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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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어다오’ 왠지 로미오가 줄리엣의 발코니를 바라보며 불렀을 것 같은 이 노래의 출생지는 뜻밖에도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오데사다. 작곡자는 카푸아(1865~1917), 원곡 제목은 ‘마리아 마리’인데 가요제(피에디그로타 페스티벌) 수상곡이다. 낭만가요답게 장미를 꺾어서 그대에게 침대를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도 나온다.

이제 마지막 음원 선착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영 종합실내체육관인 문화체육관이다. 지금은 아파트로 변한 그곳에서 제1회 MBC대학가요제(1977)가 열렸다. 노래에도 운명이란 게 있을까. 하마터면(?)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대신 산울림의 ‘문 좀 열어줘’가 대상 수상곡이 될 뻔했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6분 가까운 대곡이지만 가사는 달랑 35글자가 전부다. ‘내가 있잖아/ 여기 있잖아/ 문 좀 열어줘/ 방긋 웃어줘/ 밤이 새겠네/ 못 보고 가네/ 여기 있잖아.’ 예선에선 1등을 했지만 본선 무대에 못 오른 건 ‘반드시 재학생’이라는 규정 때문이었다. 졸업한 맏이(김창완) 때문에 본선 진출은 좌절됐지만 둘째(샌드페블즈 5기 김창훈)의 자작곡 ‘나 어떡해’를 열창한 현역 후배들이 그 곡으로 우승자가 된다. 시작부터 대단한 형제였다.

귀를 닫지 마라. 문밖에서 지금 누가 애타게 부르고 있지 않나. 어떤 때 보면 세상이 활쏘기 대회장 비슷하다. 누가 더 강력하게 시위를 당기는가. 누가 더 타인을 아프게 겨누는가. ‘당신과 나는 남남으로 만났다가/ 상처만 남겨놓고 남남으로 돌아섰다’(문주란 ‘타인들’ 중). 닫혔던 가게 문들은 열리기 시작하는데 심리적 거리두기는 해제되지 않았다. 과녁을 자세히 보자. 문제는 닫힌 문이 아니다. 닫힌(다친) 마음들까지 빗장을 풀어야 비로소 5월의 정원에도 햇살이 눈부시지 않겠는가.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