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튀김과 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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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맥’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기름에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한다. 이 신조어의 뿌리인 ‘치킨’은 프라이드 치킨이고 이 조리법의 핵심은 기름이기 때문이다. 미끈거리면서도 고소한 기름은 재료에 풍미를 더한다. 그리고 물보다 높은 기름의 끓는점은 재료 속의 수증기를 폭발시켜 바삭한 맛을 더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튀김이니 튀김은 기름 없이는 불가능하다.

튀김은 ‘튀기다’의 명사형으로 볶음, 조림, 찜 등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단어여서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튀김을 ‘튀기’라고 하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튀기다’에서 말의 줄기만 따온 것일 듯하지만 그렇게 단어를 만드는 법은 없다. 아마도 ‘튀다’의 명사형일 텐데 ‘뻥튀기’나 ‘두루치기’ 등의 단어에서도 확인되는 용법이다. 그러니 낯설기는 해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말은 아니다.

기름이 귀했던 탓인지 일제강점기의 신문을 보면 부침이나 지짐은 흔히 보이지만 튀김이란 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광복 후 일본어 ‘덴뿌라’의 순화어로서 신문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기름에 튀기는 방식은 여러 조리법 중에 늦게 개발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치킨’의 전성시대인 요즘은 다르다. 본래 닭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말 속의 ‘치킨’은 튀겨 낸 닭 또는 여기에 양념을 가미한 것을 뜻한다.

‘튀기’라 하면 이종 동물 사이에 태어난 새끼, 혹은 다른 인종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 말은 본래 ‘트기’였으니 튀기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남과 북이 통일된다면 튀김과 튀기 중 어느 것이 더 많이 쓰이게 될까? 누군가는 남과 북의 말을 잘 섞어 새로운 말을 만들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튀기말’이 생길 가능성은 낮다. 말은 많이 쓰여야 힘이 세다. 음식은 맛이 있어야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우리의 튀김 맛을 북쪽의 튀기 맛이 이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