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도시의 여왕’ 이스탄불… 도시이름 바뀔 때마다 문명이 바뀌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하기아 소피아. 초기 기독교의 유산이지만 지금은 모스크로 전환됐다. 게티이미지뱅크

■ 장은수의 지식카페 - (15) 아시아-유럽 잇는 이스탄불

세계 富의 3분의2 집결·교역 요충지로 ‘황금수레’라 불려
문명의 명멸따라 비잔티움·안투사·콘스탄티노플 등으로 바뀌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십자군 급습으로 몰락→ 이스탄불때 ‘이슬람 수호자’ 명성
다민족·다종교·다문화 도시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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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의 다리이고, 동양과 서양 두 세계의 문턱이며, 이슬람과 기독교 두 종교의 통로다. 도시 가운데엔 남쪽의 마르마라해와 북쪽의 흑해를 잇는 좁디좁은 보스포루스 해협이 있다. 마르마라해 아래로 지중해가 펼쳐지고 흑해 위로 유라시아 초원지대가 열려 있다. 이 도시는 북해와 지중해를 잇는 통로이자 유목 문명과 농경 문명의 교차로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은 중세 그리스어로 ‘도시로’란 뜻이다. ‘모든 도시의 여왕’답게 이스탄불은 중동과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로, ‘도시의 도시’이자 ‘도시의 대명사’였다. 중세 유럽인들은 ‘도시’라고 말하면 저절로 이스탄불을 떠올릴 정도였다.

기원전 7세기 중엽 사라이부르누 땅에 그리스인들이 몰려와 비잔티온이라는 도시를 처음 건설한 후, 이스탄불은 교역의 요충지로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재물이 몰리는 천혜의 항구 도시였다. 그 덕분에 이 도시의 거리는 늘 페르시아, 아라비아, 이집트, 이탈리아, 러시아, 북유럽,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몰려온 상인들로 붐볐다. 바이킹들은 이곳을 ‘황금 수레’라고 할 정도였다.

19세기 초 프랑스 시인 라마르틴은 이스탄불을 여행한 후 말했다. “양쪽 해안 전체가 닻을 내린 채 끝도 없이 모여 있는 배들로 덮여 있었다. 큰 배가 놀랄 정도로 많았다. 닻을 내리고 있는 배가 있는가 하면, 돛을 단 채 보스포루스 해협이나 흑해나 마르마라해 쪽으로 나아가는 배도 있었다. 나는 큰 선박에서 작은 범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들의 숫자를 세보려 하지도 못했다. 런던 템스강에서도 그런 풍경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세계의 부 3분의 2가 몰린’ 이스탄불의 번영은 사방 모든 세력의 질시와 탐욕을 불러들였다. 지킬 힘이 있을 때 이 도시는 제국의 보고였으나 지킬 힘이 없을 땐 잔혹한 약탈의 대상이 됐다. 그리스,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오스만 등 당대 가장 강한 세력만이 이곳을 차지할 수 있었다. 오르한 파무크는 ‘검은 책’에서 썼다. “비잔티움, 비잔트, 노바 로마, 안투사, 차르그라드, 미크라그라드, 콘스탄티노플, 코스폴리, 이스틴폴린, 바로 그 아래에는 이전 문명이 피난했던 지하 통로가 있다.” 도시 이름이 바뀔 때마다 한 문명이 몰락하면서 역사의 지형도가 바뀌었다.

이스탄불의 역사엔 커다란 분기점 둘이 있다. 첫 번째는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천년 고도인 이곳의 성벽을 증축하고 궁전, 극장, 포룸, 성당, 공중목욕탕 등을 지어 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아서 천도한 일이다. 이때 도시 이름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됐고, 로마제국은 사실상 동서로 쪼개졌다.

476년 동고트족 침공을 받아 서쪽 로마가 함락된 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세 겹의 성벽으로 둘러싼 난공불락의 요새이자 기독교 문명의 심장으로 번영했다. 4세기엔 20만 명이던 인구가 5세기엔 50만 명을 넘어설 정도였고,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는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본토 등을 되찾아 지중해를 다시 ‘우리의 바다’로 삼았다. 8~9세기에는 ‘제2의 로마’로서 당나라의 장안, 아바스제국의 바그다드와 더불어 세계 3대 교역 도시로 성장했다.

7세기 중엽부터 아랍 이슬람 세력이 팽창하고, 북쪽에서 슬라브인, 아바르인, 불가리아인 등이 압박하면서 로마제국은 많은 영토를 잃고 위축됐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힘을 잃지 않고 발전해 나갔다. 10~11세기 전성기 때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인구 100만 명이 넘어서는 국제 교역 도시이면서, 고대 그리스 문화를 부활시키고 기독교 문명을 찬란히 꽃피움으로써 유럽의 정신적 자부가 됐다. 이 때문에 ‘비잔티움으로 항해하며’에서 시인 예이츠는 이곳을 “그리스 대장장이가 금을 두드려 빚은 것”이라고 찬양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결정적 몰락으로 몰아넣은 세력은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였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이집트 대신에 이곳을 급습했다. 이들은 도시를 점령한 후 교회를 불사르고 사제를 살해하고 황제의 무덤을 파헤쳤다. 10세기에 서로를 파문하면서 동방 정교와 서방 교회로 분열했던 동서 교회의 관계는 이로써 끝장났다. 십자군이 점령한 57년 동안 도시는 지속적인 착취로 폐허가 됐다. 인구가 4만7000명으로 줄었고, 지중해 제해권도 베네치아, 제노바 등에 빼앗겼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역사는 사실상 이 무렵 종언을 고했다. 남은 건 황혼이었다.

1453년 5월 29일, 천년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최후의 날이 왔다. 오스만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이 도시를 점령했다. 두 번째 분기였다. 주인 바뀐 도시는 이스탄불로 불리면서 ‘이슬람의 수호자’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오스만제국의 지배 세력은 튀르크인이다. 영웅서사시 ‘데데 코르쿠트의 서’에 따르면, 이들은 본래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오구즈인들이었다. “눈이 내린다면 여름은 아니다./ 죽을 날이 아니라면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런데 운다고 해서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현자 코르쿠트가 부르는 이 노래는 모든 튀르크인을 하나로 묶는 ‘영혼의 실’ 같은 작품으로, 오구즈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 결혼, 신앙, 죽음 등 튀르크의 지혜를 전한다. 튀르크인은 오구즈인 중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사람을 뜻한다.

16세기 초 쉴레이만 1세 때, 이스탄불은 전성기를 맞았다. 인구가 다시 70만 명에 달하면서 ‘세계의 수도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라고 불릴 정도였다. 술탄은 ‘정의의 순환’을 원칙으로 내치에 힘쓰고, 로도스섬을 점령해 지중해 무역권을 장악한 후, 유럽으로 세력을 돌려 빈을 공격해 합스부르크 왕가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술탄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비무슬림 록살리나와 세기의 사랑에 빠져 그녀를 황후에 앉혔다. 이스탄불 중심에 아름답고 웅장한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세워 그녀에게 헌정하고, 직접 시를 지어 바치기도 했다. “연인이여, 네 아름다움의 꽃밭에서 종달새는 아침이 되도록 그렇게 너를 찬미하는구나.” 예술을 사랑했던 황제는 제국 각지에서 화가와 장인을 초청해 정기 급료를 제공하면서 오스만 문화의 독자적 창조를 독려했다. 이로써 이스탄불은 이슬람 문명의 꽃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의 품은 넓었다. 제국은 기독교도와 유대인에게 관용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튀르크인,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세르비아인, 이집트인, 페르시아인 등을 이 도시에 강제 이주시켰다. 그 덕분에 제국의 역사 내내 이스탄불은 다민족·다종교·다문화 도시였다. 시민들한테 이는 풍요이자 혼란이고 갈등이었다. ‘이스탄불’의 작가 파무크는 이스탄불의 정체성을 꿰뚫어 봤다.

‘내 이름은 빨강’은 1591년 이스탄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통해 오스만제국 궁정 화가들의 예술관을 탐구한 걸작이다. 작품의 중심에는 궁정 그림에 베네치아 화풍을 도입하려는 몇몇 세밀화가의 시도를 둘러싼 질투와 반목이 놓여 있다. “그 그림에선 유럽인들 그림에서처럼 사물이 신의 마음속의 중요성을 따르지 않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려졌다더군. 그건 아주 커다란 죄라는 거야.” 인간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베네치아 화풍은 서양 기독교 문명의 은유로, 이에 매혹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눈이 먼다는 건 고요해지는 것이라네. 그림이 가장 심오한 경지에 이르는 것은 어둠 속에서 신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지”라는 말처럼, 이슬람 전통은 신의 눈으로만 보기 위해 인간의 눈을 포기하는 데 있다.

그러나 파무크는 이스탄불의 정체성이 두 문명의 조화와 융합에 있다고 주장한다. “어르신께서는 여기 이스탄불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성격과 기질, 종파의 화가들을 화합시켜 오스만제국의 화풍을 만드셨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세력을 키워 가는 오늘, 작가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이슬람과 기독교 등이 이스탄불에서 만나 함께 문명의 춤을 췄음을 강조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 게티이미지뱅크

신화도, 종교도, 사상도, 예술도 이스탄불에서 키메라처럼 뒤섞여서 사방으로 전파됐다. 하기아 소피아의 화려함, 블루 모스크의 세련됨, 톱카프 궁전의 장엄함, 고고학박물관의 고졸함, 커피 하우스의 유쾌함 등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문명이 이곳에 이어져 흔적을 남겼다. 그러고 보니 온 세상에서 모든 이가 몰려와 교통하는 그랜드 바자르의 경이로운 복잡성이야말로 어쩌면 이스탄불의 진짜 얼굴일지 모른다. 이스탄불엔 모든 것이 있다.

문학평론가


[ 용어설명 ]

로마제국과 비잔티움제국 : 로마제국은 476년에 망하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수도를 옮겼을 뿐이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을 로마라고 불렀고 교황도 계속 임명했다. 유럽의 누구도 이 도시의 황제가 모든 나라의 우두머리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비잔티움 제국은 존재한 적이 없다. 이 말은 오스만 정복 이후 생겨났다. 로마의 법통을 이슬람이 이어받고 술탄이 로마 황제를 칭하자 유럽인들은 참을 수 없었다. 16세기에 이들은 가상의 비잔티움 제국을 만들어 거북함을 씻었다. 일종의 역사 조작이자 오리엔탈리즘이었다.


정의의 순환 : “나라를 통치하려면 군대가 필요하고, 군대를 유지하려면 나라가 부유해야 하고, 나라가 부유하려면 백성이 잘살아야 하고, 백성이 잘살려면 정의로운 법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법치를 통한 부국강병 정책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