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1980년 5월 조천호 군에게 보내는 그림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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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05-1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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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꿈 |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끝까지 기억하고자 애쓴 사람들 덕분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역사를 아예 기억하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기억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생명까지 빼앗기도 한다. 기억의 방해자들은 오직 자기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기억을 삭제하고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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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순 작가의 그림책 ‘봄꿈’은 어느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모여 탄생한 작품이다. 그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순간은 1980년 봄이다. 고정순 작가는 지난가을 광주에 가서 한 사람을 만난다. 그가 광주에 가게 된 데는 1988년 5월 15일에 권정생 작가가 썼던 편지 형식으로 된 시, ‘경상도 아이 보리문둥이가-광주의 조천호 군에게’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뒤늦게 발굴된 이 시는 계간 ‘창비어린이’ 2021년 봄호에 짧은 글과 함께 실렸다. 그 글을 쓴 똘배어린이문학회의 이기영 씨는 2018년 안동에서 열린 권정생 선생 귀천 11주기 모임에서 임재해 선생의 발표로 이 시를 알게 됐다. 선생의 소장 자료를 통해 출처가 1988년 오월문학제라는 것을 확인한 뒤 당시 문학제에 참석했던 김석현 시인을 찾았다. 그리고 잠자고 있던 오월문학제 자료집을 발견해 원문을 이 잡지에 실은 것이다. 고정순 작가는 이 편지를, 이제는 조천호 씨가 된 광주의 조천호 군에게 전달하고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청한다.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던 사진 속의 다섯 살 어린이, 마흔을 넘긴 조천호 군은 이제 누군가의 아버지가 돼 있었고, 기억을 전하며 그림책을 만들어달라고 말한다.

이 그림책은 아름답다. 슬프다. 소중하다. 책의 마지막에는 권정생 선생의 편지가 실려 있다. 편지는 묻는다. “정말 우리는 몰랐다고 말해도 될까”라고. 어떤 기억은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빛나며 세계를 지킨다. 이 그림책을 읽은 우리는 더 이상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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