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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2년 05월 13일(金)
축제는 ‘공동체의 개성’… 모든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반복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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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에게 바치는 제의에서 출발한 축제는 지금 순간을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즐기며 죽음으로 향해가는 시간을 멈춰 세우는 놀이다. 사진은 세계의 대표적 축제인 베니스 카니발의 상징인 가면이 베니스 전경을 풍경으로 놓여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서동욱의 지식카페 - (30) 축제

‘축하하며 벌이는 행사’ 제사·종교적 의미 내포…희생·성스러운 춤·경기·공연 등 다양한 행위로 표출
놀이는 ‘참여’를 통해 다른 대상들과 합일… 축제는 매해 반복되는데도 단 한번의 사건처럼 여기는 ‘독특한 시간’


축제(祝祭)만큼 설레게 하는 것도 없다. 따분한 날들을 보내는 어린 학생들은 학교 축제를 기다린다. 그때만 잠시 예외적인 자유와 창의적인 생각을 폭죽처럼 터트릴 기회가 찾아온다. 대학 생활의 꽃 가운데 하나도 축제다. 억지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만들어지고, 마음도 다른 마음에 열린다. 축제는 공동체의 즐거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공동체만의 개성을 가시화해주는 힘이다. 거기 더해 축제는 경제적 효과까지 창출하기에 최근엔 지방자치단체들도 경쟁적으로 축제를 만들어낸다. 수많은 축제는 우리 삶의 방식이 됐다. 왜 사람들은 축제를 원하며, 공동체는 축제를 자신의 소중한 자산으로 간직하려는 걸까?

축제의 사전적 뜻은 ‘축하하여 벌이는 큰 행사’이다. 또 그것은 ‘제사’의 의미 역시 지닌다. 세속적 삶과 종교가 구분되지 않은 고대 세계에서는 신에게 바치는 제사가 곧 축제였다. 축제는 성스럽고도 세속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축제에는 노래와 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다. 즉 일상의 기분을 바꾸어줄 즐거움이 있다. 이는 축제란 노동으로부터의 방면을 뜻한다는 것, 축제란 곧 ‘놀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종인 역)는 종교 의례와 축제, 놀이가 서로 겹쳐져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잘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성소에 모여드는 것은 집단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이다. 성사, 희생, 성스러운 춤, 경기, 공연, 신비 의례 등은 축제를 축하하는 행위이다.”

축제의 또 다른 얼굴이라 해도 좋을 ‘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놀이를 주체와 동떨어진 어떤 대상처럼 여길 수 없다. 놀이를 즐기려면 하나의 고립된 주체가 대상을 멀거니 바라보듯 해서는 안 되고, 놀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놀이 속에는 놀이의 고유한 법칙이 있을 뿐, 자신의 독자성을 고집하는 주체는 사라진다. 여럿이 함께 넘는 줄넘기 놀이나 강강술래 같은 놀이에는 공동체가 즐기는 놀이 자체의 법칙이 있지, 주체의 독자적인 의지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이런 놀이의 고유한 법칙이란 무엇인가? 바로 ‘반복 운동’이다. 가다머는 하위징아처럼 ‘놀이’의 본성을 깊이 숙고하는 사상가인데, ‘진리와 방법’(이길우 외 역)에서 놀이의 특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놀이에선 “언제나 일종의 왕복운동이 고려되며, 이 운동은 결코 어떤 최종 목표에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다.…놀이는 운동이며, 이 운동은 끝나게 될 어떤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왕복운동은 명백히 놀이의 본질을 규정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따라서 이 운동을 누가 혹은 무엇이 수행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몰두하던 어린 시절의 놀이를 떠올려 보라. 예컨대 딱지치기는 최종 목적을 지니지 않으며, 반복 자체를 원리로 가진다. 더 이상 잃을 딱지가 바닥이 나는, 놀이 외적인 조건을 통해서만 이 놀이는 종결된다. 배드민턴이나 탁구 같은 놀이 역시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조를 지니기에 특정 점수에 도달하면 놀이를 멈추도록 하는 ‘임의적인 강제’가 있지, 놀이 자체가 내적 발전을 통해 완성하는 최종 형태는 없다. 강강술래는 어떤가? 손을 잡고 원형으로 춤을 추는 반복의 원리만이 있을 뿐 종결지점도 목적지도 없다. 노름꾼들의 카드놀이 역시 마찬가지다. 돈을 따고 일어서려면 분위기가 험악해져 도리 없이 다시 앉아 끝없이 반복되는 놀이를 해야 한다. 이 놀이의 내재적인 종결지점이 없는 까닭이다. 축제 역시 이런 ‘반복’의 놀이다.

일단 축제는 놀이와 같이 거기 ‘참여’하지 않고는 성립하지 않는다. 놀이는 참여이며, 실천이다. 심지어 스포츠 경기를 보기 위해 좌석에 앉아 있는 관람객 역시 바깥의 관찰자가 아니라 응원을 통해 놀이 속에 참여하는 자이다. 우리는 축제를 ‘보러 간다’라고 말한다. 이때 보거나 구경하는 일은 뭘까? ‘바라봄’ ‘관조’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말은 ‘테오리아(theoria)’이다. 가다머가 분석하듯 이 말로부터 유래하는 ‘테오로스(theoros)’라는 말은 축제에 뛰어드는 ‘참여자’를 뜻한다. 그러니까 바라봄(테오리아)이라는 것은 나와 무관한 외부의 대상을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는 뜻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그 대상과 합일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축제를 ‘보러 간다’는 것은 곧 놀이에서와같이 거기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축제의 시간은 놀이와 같이 ‘반복’의 시간인가? 이 점을 토마스 만의 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장지연 역)보다 잘 알려주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인류가 가진 신화의 가장 오래된 모습까지 추적해가는데, 그 결과 알게 되는 것은 신화 자체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는 죽고 3일 만에 부활했다. 3일 또는 삼 년 만에 부활한 신은 그 이전에는 없었을까? 너무도 많다. 그리스도는 죽고 부활하는 신들의 전통에서 막내에, 최신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토마스 만은 이 소설에서 고대 바빌로니아의 탐무즈 신에 대해 주인공 요셉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다음 인용에서 탐무즈 신의 이름을 가리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들린다. “탐무즈는 살아 계시네! 주인님께서 부활하셨네! 오, 위대하신 주님! 그분은 죽음의 그림자 집을 무너뜨리셨네! 위대한 주님!…무덤은 그를 붙잡아두지 못했어. 겨우 사흘밖에 못 붙잡은 거야. 그는 부활하셨어.…마침내 기쁨의 축제가 시작되는 거야. ‘비었네, 비었네, 텅 비었네!’ 모두들 그렇게 외친단다. ‘무덤이 비었네. 아돈은 부활하셨네.’” 여기서 축제는 종교적 의례이다. 기독교의 부활절처럼 말이다. 이런 부활하는 신의 이야기는 이집트의 신화 속에서도 반복된다. 바로 동생 세트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다가 부활한 신 우시르(오시리스)의 이야기 말이다. 요컨대 신화 자체가 다른 신화 속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들을 기리는 축제 자체 역시 해마다 이뤄지는 반복이라는 점이다. 토마스 만은 우시르 신의 반복된 부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위대한 신은 단순히 한 번 죽었다 부활하는 게 아니고,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일을 계속 반복한다.” 바로 겨울에 물이 줄어들어 마른 땅을 드러냈다가 다시 파종 시기에 풍부해지는 나일강의 모습으로 말이다. 우시르 신의 모습인 나일강이 풍부해질 때마다, 즉 일 년마다 사람들은 황소를 잡아 그에게 바치는 축제를 연다. 탐무즈 신에게 바치는 해마다 반복되는 축제 역시 마찬가지다. “축제에는 다 때가 있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도 다음에 일어날 일을 다 알면서도, 지금 현재에 일어난 일을 거룩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자신을 속이는 거라니까.”

이 구절은 반복으로서의 축제의 비밀이 무엇인지 잘 알려준다. ‘자신을 속이는 일’이란, 바로 축제를 지금 이 순간 단 한 번 생겨난 새로운 사건처럼 여기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도, 지지난해도, 그리고 백 년, 이 백 년 전에도 ‘전통적으로’ 축제는 열렸는데 말이다. 축제는 매해 반복되는데도 단 한 번의 사건처럼 여기는 것, 이것이 축제의 시간의 독특한 점이다. 이를 가다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정기적인 축제는 반복된다는 데 특성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반복을 축제가 돌아온다고 말한다. 이때 돌아오는 축제는 원래 경축됐던 것의 단순한 회고도 아니고 전혀 다른 축제도 아니다. 모든 축제가 갖는 근원적으로 신성한 성격은, 우리가 현재, 회상, 기대라는 시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그러한 구별을 명백히 배제한다.…축제가 언제나 다른 것이라는 사실은 (비록 축제가 ‘아주 똑같이’ 경축된다고 하더라도) 축제 본래의 근원적 본질에 속한다.” 축제는 해마다 다르고 새로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축제의 시간은 우리의 통상적인 직선적인 시간을 통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축제는 ‘회상’이 아니다. 우리는 부처님 오신날이나 부활절 축제를 맞아, ‘어 작년에 태어난 부처님이 어떻게 올해도 또 태어나시지?’ 또는 ‘예수님 작년에 이미 부활하셨어, 부활절은 이미 옛날 일이야’라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축제는 언제나 새로운 사건으로 찾아오며, 그것이 축제의 시간, 반복의 본질이다. 반복은 이미 존재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는 반복이다.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 만의 다음과 같은 말 또한 이해할 수 있다. ‘축제는 시간의 극복이다.’ 직선적인 시간 속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며 일하고 사랑하고 좋은 추억과 나쁜 기억을 쌓고서 죽을 날을 향해 간다. 죽음 앞에 놓였을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회한 속에 돌아봐야 하는 사라진 시간뿐이다. 반면 축제는 이런 시간을 극복한다. 축제 속에서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 올해 석가모니의 탄생은 유일무이한 일회적인 소중한 사건이지, 작년 부처님 오신날의 재탕이 아니다. 누구도 이 반복된 탄생을 이미 이뤄진 일의 김빠진 재방송이라 하지 않고, 새로운 사건으로서 소중히 여긴다. 즉 축제 속에 들어선 인간은 탄생으로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덧없는 일직선의 이야기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 반복 속에서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자다. 매해 반복되는 벚꽃 축제의 꽃들이 새로운 꽃들이듯이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축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왜냐하면 축제는 인간이 하루하루를 잃어가며 늙어가는 운명을 벗어나 매번 새로 태어날 기회이기 때문이다. 축제 속에서 삶은 되찾을 수 없는 시간으로 추억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실현된다. 우리가 설레는 마음으로 축제를 기다린다면, 축제가 시작과 삶을 돌려주기 때문이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본문 중 언급된 주요 작품들 : 네덜란드 문화사가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는 문화의 본질을 인간의 놀이에서 발견하는 책이다. 인간의 행위는 근본적으로 놀이이며, 다른 여타의 활동에 앞서서 놀이가 문화의 근본을 이룬다는 점을 보여준다. 토마스 만의 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을 추적하고 있다.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이야기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다양한 신화를 다룬다. 이 다양한 신화 속에서 토마스 만이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야기의 반복이며,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 삶의 가장 근본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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