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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M 인터뷰 게재 일자 : 2022년 05월 13일(金)
“음대시절 어깨아래 전신마비… 결국 ‘노래’로 다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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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현 한국장애음악인협회장이 지난 2일 경기 화성시 동탄호수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그는 “만약 내가 장애가 없는 평범한 성악가였다면 지금처럼 주목받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남의 도움 없이는 거동조차 힘들지만, 이 모습 그대로 행복하다”며 웃어 보였다. 신창섭 기자

■ M 인터뷰
-‘올해의 장애인상’ 이남현 한국장애음악인협회장

수영장서 경추 산산조각 사고
“성악 할 수 없다” 말에 절망도
재기위해 1년간 기본음정 연습
2년 노력 끝에 가곡 1절 불러

폐활량 문제로 체내 산소 부족
노래하다 혼절해도 꿈 포기안해
평창올림픽 개막식 무대 서고
금난새·김동규와도 한 무대에


화성=박성훈 기자

“몸이 온전한 사람만 성악을 할 수 있을까요? 저처럼 어깨 아래로 신경이 마비된 사람도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면 성악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

지난달 20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한 이남현(41) 한국장애음악인협회장을 소개할 때에는 항상 이름 앞에 ‘바퀴 달린 성악가’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가 휠체어를 탄 중증 지체장애인 성악가이기 때문이다. 성악을 하려면 풍성한 폐활량과 복식호흡이 필수다. 온몸을 악기처럼 사용해야 하기에 몸을 제어할 수 없는 이가 성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회장은 경추 손상으로 거동은 물론 숨을 몰아쉬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온몸의 신경이 마비된 장애인도 성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그런 그를 지난 2일 경기 화성시 동탄호수공원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떡 벌어진 그의 어깨는 그가 과거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 회장도 한때는 대중가요를 즐겨 들으며 가수를 꿈꾸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중학생 시절 거리에서 우연히 듣게 된 성악가의 노랫소리에 매료된 그는 성악을 하기로 결심, 전남예고와 목포대 음대로 진학했다. 군 복무를 마친 2004년 여름, 친구들과 수영장에 놀러 간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고를 당했다. 수영장에 뛰어들었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쳐 경추가 산산조각 난 것이다. 온몸이 마비된 채 30분을 물속에 있었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6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다. 수십 개로 조각 난 목뼈를 제거하고 골반뼈 일부를 이식하는 대수술이었다.

수술을 마친 뒤 그는 자신이 언젠가 다시 사고 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던 그였다. 하지만 허황된 꿈에 불과했다. 의사는 그에게 “폐활량이 사고 전의 30%밖에 되지 않아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실의에 빠졌던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TV에서 스스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는 이들에 대한 소식이 들리면 그 사람이 부러웠어요.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몸을 움직여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 있지만, 저는 그조차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니까요.”

질곡 같은 절망 속에 있던 그에게도 희망이 찾아왔다. 병원에서 듣게 된 음악이 그 실마리였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를 듣는 순간 그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노래였어요. 그 천사 같은 아이들의 노래를 듣는 순간 저는 희망을 봤습니다. 노래로 세상에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이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것입니다.”

그는 노래를 다시 시작했다. 첫 목표는 한 곡의 1절을 완창하는 것이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환자가 아플 때 내는 신음 같은 괴상한 소리가 나왔다. 음정이 없었다. “당시 모두가 제게 ‘현재의 몸 상태로 노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아’ 하는 소리를 길게 내는 것도, 짧게 내는 것도 안 됐거든요. 성악의 기본적인 복식호흡이 안 된 것입니다.”

퇴원 후 결행한 복학 역시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만난 조교들도 자신을 생경한 눈빛으로 봤다. 그동안 장애인 전공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많은 교수가 장애를 가진 그를 격려해 줬다. 함께 수업을 듣던 학생들 역시 번번이 그를 강의실까지 들어 옮겨 줬다. “당시 저를 지도해 주신 김철웅 교수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이 기본적인 음정도 못 내는 제게 계속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1년 동안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정확히 부르는 데에만 매달렸고, 2년의 훈련 끝에 가곡 ‘청산에 살리라’의 1절을 부를 수 있게 됐을 때 제 눈에선 닭똥, 아니 주먹 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회장은 학부를 마친 뒤에도 전공을 사회복지로 바꿔 보라는 권유를 적지 않게 받았지만, 계속 음악 공부에 매진했다. 2016년 목포대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2019년 경희대 일반대학원 공연예술학과에서 예술경영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이 지각된 가치와 삶의 긍정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는 경희대 최초로 장애인으로서 원우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박사과정은 수업이 어렵고 체력 소모가 많아 힘들었지만 결석하지 않고 성실히 임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은 자신을 불러 주는 무대라면 장소를 마다하지 않고 어디든 달려간다. 2011년 9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금난새가 지휘하는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바리톤 김동규와 한 무대에 서기도 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개막식 무대에 올라 ‘평창의 꿈’을 불렀고, 유엔 본부에서 마련한 공연에도 초청됐다.

이처럼 영예로운 순간이 적지 않음에도 그는 가장 깊은 감동을 느낀 무대 경험으로 서울역 앞에서 노숙자들을 상대로 한 노상 공연을 꼽았다.

“서울역 앞에서의 공연이었어요. 노래를 마치자 노숙자 한 분이 와서 제 손에 빵을 쥐여 주시며 ‘다시 한번 잘 살아 보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의 눈물을 보고 저 역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는 장애 탓에 무대에 설 때마다 비장애인 성악가보다 더 많은 변수를 고민한다. 일반인보다 폐활량이 적어 노래를 하다 체내 산소량이 부족해 실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는 노래할 때 몸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발성할 때마다 온몸의 죽은 신경세포를 최대한 깨워 집중해야 합니다. 호흡을 조절해야 하는 성악을 하다 보니 노래를 하는 동안 체내 산소량이 떨어져 저혈압으로 혼절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하지만 뒷걸음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노래를 듣고 누군가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대에서 잠들어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 회장은 “건강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안 그래도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지금이 좋다’고 답한다”고 한다. “사고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제가 장애가 없는 평범한 성악과 학생이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주목받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신체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노래하기 때문에 주위에서 관심을 가져 주시는 것이지요. 예전에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카피가 있었죠? 저는 ‘장애인이라서 행복해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롤 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에 10여 초를 고민하다 “어제의 나”라고 답했다. 장애인으로서 성악가로 성공한 이가 없어서다. “하루라도 더 젊은 내가 더 에너지도 있었을 것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어제의 나를 항상 떠올리며 더 나은 장애인 성악가가 되고자 합니다.”

이 회장은 “장애 등 어려움으로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꿈을 꾸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보세요. 그다음에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꾸준히 투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대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단기간에 뭔가 이루려고 하지 마세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도중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잠시 멈추고, 다시 시작하세요. 그럼 꿈이 이뤄질 겁니다.” 그는 “앞으로 장애인 문화예술을 위해 작더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며 장애인예술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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