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몰래 투자했는데 들키면 ‘이혼각’”…‘영끌’ 후유증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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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05-1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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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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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더지 리포트 - ‘2030 영끌족’ 9인 인터뷰 (上)

문화일보는 ‘두드리고, 더 파고, 지속하고’의 앞글자를 딴 ‘두더지 리포트’를 론칭, 탐사기획 보도를 진행합니다. 두더지 취재팀은 철저하게 팩트에 기반해 사회 이슈와 권력 비리, 대형 사고 문제점 등을 끝까지 추적해 진상을 밝히는 심층 보도를 이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포모’· 상승장 불안감에 투자
주식으로 큰돈 버는데 상실감
수중에 돈없어 영끌 투자 강행

주식창 10분마다 보고 ‘물타기’
부모님에게 생활비 빌려 쓰고
온라인 판매 등 ‘투잡’ 뛰기도
2030 “투자는 오롯이 내책임”


“아내 몰래 투자했는데…들키면 ‘이혼각’입니다.”

자산시장 투자 수익률은 고꾸라지는데, 대출금리는 끝을 모르고 올라간다. 희망이 없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했는데 그나마 있던 희망이 더 사라지고 있다. 2030 ‘영끌족’들이 맞닥뜨린 불안하고 우울한 자화상이다.

최근 주식·코인 등 자산투자 시장이 초토화하면서 영끌족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고 있다. 영끌족 입장에서는 단순 현재 시장 상황만이 문제가 아니다. 빠르게 긴축시계를 감고 있는 한국은행과 미 연방준비제도(Fed), 그에 따른 대출금리 급상승,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달러당 1300원을 넘보며 12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로 솟은 원·달러 환율 등 앞으로의 어느 대내외적 여건 하나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영끌족들은 애초 어떤 생각으로, 무슨 이유에서 투자를 시작했을까. 두더지(두드리고, 더 파고, 지속하고) 취재팀은 9인의 영끌족을 심층인터뷰했다. 금융권 종사자 이모 씨는 “포모(FOMO·상승시장에서 나만 뒤처진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나보다 어린 사람이 부동산이나 주식 상승으로 큰돈을 모은 걸 봤을 때의 상실감이 컸다”면서 “그런데 당장 수중에 가용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영끌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이들의 ‘영끌 후유증’은 다양했다. 대기업 사원 김모 씨는 주식창을 10분에 한 번씩 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주식시장이 시작되면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고, 장외 시간엔 무기력증에 빠졌다”며 (주식시장이 쉬는) 주말엔 무기력하고, 월요일만 기다려지는데, 나름 월요병 극복 방법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허탈해했다. 부모님이나 배우자 ‘몰래’ 투자를 감행해 아내에게 휴대전화를 숨기는 버릇이 생긴 경우도 있었다. 은행권 종사자 A 씨는 “아내가 빚투(빚 내서 투자) 사실을 알면 이혼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 돈을 잃었을 때보다 오히려 벌었을 때 회의감에 빠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회계사 허모 씨는 “돈을 벌면 그 나름대로 당시 근로소득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하루에 수백만 원 씩 벌리니까 노동이 뭔지 우스웠다”며 “많은 돈을 날린 지금이 차라리 차분한 상황”이라고 했다.

영끌족들은 ‘물타기’(평균 단가 낮추기)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A 씨는 친동생에게 300만 원을 빌려 물타기를 했다. 그는 “대출이자만 해도 그때그때 손절하는 것으로 충당해야 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자영업자 중에서는 ‘투잡’을 뛰는 경우도 있었다. 자영업자 서모 씨는 “(원래 하던 일 외에) 화장품 브랜드에서 물건을 떼와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월급이 수백만 원에 달하는 대기업 종사자지만,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박모 씨는 “(월급 대부분이 대출이자로 나가기 때문에) 부모님께 생활비를 빌리는 수밖에 없지 싶다”고 했다.

영끌족들은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1차적인 투자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게임의 룰’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특성을 잘 보여준다. 오모 씨는 “나는 영끌을 해서라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에 처하게 된) ‘벼락거지’ 신세를 만회해보려 빚투를 시작했다가 망했다”면서도 “하지만 투자는 오롯이 내 책임이다. 만약 투자가 잘됐다면 정부 덕분에 잘됐다고 생각했겠느냐. 내가 잘해서 잘했다고 생각할 것 아니냐”고 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회삿돈을 끌어다 투자하는 횡령 사고가 빈번한 것을 두고 ‘영끌’의 부작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614억 원의 은행자금을 횡령해 세간을 충격에 빠뜨린 전모 씨는 횡령금으로 선물옵션 상품에 투자했다가 318억 원 손실을 본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앞서 4월엔 계양전기 재무팀 대리 김모 씨가 회사 자금 약 246억 원을 횡령해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 선물옵션이나 주식에 투자 등으로 횡령자금 대부분을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송유근·김보름·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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