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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Deep Read 게재 일자 : 2022년 05월 17일(火)
역사적 사건 헌법 수록 최소화해야… 국민 보편적 공감 없인 분열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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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수의 Deep Read - 5·18과 헌법 전문 수록

서구에선 美노예해방·佛대혁명 등 명시하지 않는 게 일반적… 주요사건 발생 때마다 추가는 부적절
5·18정신 담으면 ‘3·15의거, 부마항쟁, 촛불혁명도 넣자’ 요구 분출 가능성… 자칫 정국 ‘블랙홀’될 수도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말 그대로 격동의 역사였다. 대한민국은 신생독립국 중에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해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로 꼽히고 있다. 경제발전에서 개발독재를 통한 압축성장의 진통이 적지 않았던 것처럼 민주화의 과정도 험난했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주권자임을 자각하면서 권위주의 정권과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1980년 발생한 5·18민주화운동은 비극을 동반한,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항쟁이었다. 최근 매년 5월이면 반복되는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이슈도 처절했던 민주화운동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다. 그런데 3·15의거, 부마항쟁, 6·10민주항쟁 등도 권위주의 체제와 싸우고 민주화를 위한 국민적 투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이런 가운데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문제가 유독 강조되는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헌법 전문의 상징성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서 3개의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다. 3·1운동, 임시정부, 4·19혁명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1948년 제헌헌법부터 현행 헌법까지 전문에 같은 이름을 유지해온 역사적 사건은 오직 3·1운동 하나뿐이다. 5·16쿠데타는 제3·제4공화국 당시 ‘5·16혁명’이란 명칭으로 헌법에 수록됐다가 삭제됐다. 4·19혁명은 같은 시기 ‘4·19의거’로 규정됐다가 제5공화국 헌법에서 사라졌는데, 현행 헌법에서 ‘4·19민주이념’으로 살아났다.

서구 선진국의 헌법에서는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성문헌법을 갖는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이 각기 역사적 전통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막상 헌법 전문에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수록하지 않는다.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 사건들, 예컨대 미국의 독립혁명이나 남북전쟁, 노예해방, 혹은 프랑스대혁명 등도 헌법 전문에 명문화되지 않았다.

서구 선진국 헌법이 이런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헌법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중요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계속 전문에 추가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자각, 둘째는 정말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헌법에 수록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충분히 조명된다는 인식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역시 헌법에 역사적 사건들을 추가해 나가려는 요구나 움직임에 대해서는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5·18정신 하나만 추가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3·15의거, 부마항쟁, 심지어 촛불시민혁명 정신을 담아내자는 요구가 터져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헌법 전문에 나타나는 대한민국의 역사성과 정통성과 상징성을 드러내는 장치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평가와 국민의 동의

2017년 국회 개헌특위에서도 5·18정신을 전문에 추가하는 문제가 쟁점이 된 바 있다. 당시 자문위원회는 ‘6·10민주항쟁을 추가하자’고 제안했고, 소수의견으로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촛불시민혁명 등이 명시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6·10민주항쟁 이외의 역사적 사건들은 일단 배제됐다. 1987년의 6·10민주항쟁은 시민혁명으로 평가되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었고 이를 통해 ‘1987년 민주화 체제’가 만들어졌지만, 그 밖의 역사적 사건들은 아직 그런 정도의 평가가 내려진 상태는 아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역사적 평가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건 국민의 보편적 공감과 동의를 온전히 얻어내지 못했다는 점과도 통한다. 그런 점에서 5·18민주화운동, 3·15의거, 부마항쟁 등을 모두 전문에 수록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이 강하게 있었다.

주권자의 보편적 동의와 공감의 획득이 전제되지 않는 한 자칫 개헌 작업은 국민 통합이 아닌 분열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1987년 개헌 이후 30년 만에 벌어진 헌법 개정 시도에 그동안 쌓인 요구사항들과 첨예한 대립 사안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면서 논의의 방향을 종잡기 어려웠었다.

2018년 3월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했던 헌법 개정안 전문에 ‘4·19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이라는 문안을 만들어 넣었는데, 국회 논의 및 처리 과정에서 결국 불발됐다.

◇개헌이라는 블랙홀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두 차례에 걸쳐 5·18정신을 헌법에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헌법 전문을 손보는 것은 개헌과 국민투표를 동반해야 할 문제다. 대통령은 헌법 개정에 대한 발의권만 가질 뿐이며, 최종적인 결정권은 대의기관인 국회와 국민에 있다.

2018년 문 대통령이 개헌 작업을 할 때 여론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국회에 발의했고, 이는 개별적 내용에 대한 검토 및 찬반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었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만일 개헌안을 공론에 부쳤다면 누구는 제주 4·3사건을, 누구는 3·15의거를, 누구는 촛불시민혁명을 넣자 말자 하며 거센 논란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헌법 개정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헌법 개정이 성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정치적 타협에 의해 역사적 사건들이 헌법 전문에 수록되더라도 그것이 영원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개헌은 복잡한 정무적 고려 사항들을 동반한다. 35년 만에 개헌이 추진된다면 정파적 이해관계가 얽힌 ‘권력구조’ 문제나 정치개혁 문제를 호출해낼 수도 있다. 이때 개헌론은 다른 국정 운영 과제들을 집어삼키는 정국의 블랙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복잡한 논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개헌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긴 흐름의 판단 필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는 긴 흐름 위에서 봐야 하며 이를 헌법에 수록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것이어야 한다. 또한 국민이 흔쾌히 공감하는 보편적 동의가 내려진 상태가 아니라면 헌법 전문을 손보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국민의 확실한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지 않은 역사적 사건의 헌법 수록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선진국들이 역사적 사건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다.

헌법학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헌법 전문의 상징성 : 미국·프랑스·독일 등 성문헌법을 채택한 선진국 헌법 전문에는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지 않는 게 일반적. 헌법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장치는 최소화해야 하며 신중하게 해야 할 필요성 있음.

역사적 평가와 국민의 동의 : 5·18정신을 헌법에 넣으려 할 경우 제주4·3사건, 부마항쟁, 촛불시민혁명 등의 헌법 수록 요구 도미노를 부를 수도. 헌법 개정은 역사적 평가가 끝나고 국민의 전적 공감을 얻어야.

개헌 블랙홀 : 섣부른 개헌론은 다른 국정 운영 과제들을 집어삼키는 정국의 블랙홀로 작용할 가능성 있음. 헌법을 고치는 작업은 자칫 국민 통합 아닌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으므로 긴 흐름 위에서 봐야.


■ 용어 설명

헌법 ‘전문’은 국민 근본규범으로서 정신과 원리를 담은 헌법의 서문. 형태나 성격은 나라에 따라 달라서 한국은 법적 효력을 부여해 헌법해석의 기준으로 삼지만, 전문을 두지 않는 나라도 많음.

‘국민투표’ 절차는 현행 헌법 130조 2항에 근거함. 동항엔 국회가 개헌안을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적시돼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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