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유로비전 2022’ 우승팀 칼루시 오케스트라는 우크라이나 6인조 밴드다. 뮤직비디오에는 군복 입은 여성이 폐허 속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가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들은 말한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다.”
모성애(Motherhood)에서 첫 글자 M이 튕겨 나와 사라지는 영화가 있다. 그래서 제목도 ‘아더후드’(Otherhood)다. 뒤틀렸던 모자 관계는 ‘나에 대해 10가지 사실을 말해보라’는 어머니의 요청에서 극에 달한다. 처음엔 한 가지도 답을 못하던 아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의 존재감을 하나씩 발견한다.
영화를 떠올린 건 알파벳 M 때문이다. M은 어머니(Mother)이기도 하고 영화(Movie)이기도 하다. 때로는 음악(Music)이고 돈(Money)이기도 하다. ‘우린 물질적인 세상에 살고 있으며 나도 물질적인 여자’(We are living in a material world and I am a material girl)라고 솔직하게 노래(제목도 ‘Material Girl’)한 가수가 있다. 줄여서 M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 사람. 나는 그 이름을 처음에 시로 만났다.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이상화 ‘나의 침실로’ 중)
마돈나가 이번엔 ‘어머니’로 나타났다. ‘창조의 어머니’ 마돈나는 탱크 위에서 나비를, 숲 속에서 지네를 낳는다. “여성으로서 내 삶의 여정은 나무의 그것과 같다.” 물론 실제상황이 아니라 대체불가능토큰(NFT) 컬렉션에 3D아바타로 등장해서 벌인 일이다. 마돈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것들은 희망과 기술을 상징한다”고 전했다. ‘저 사람 왜 저래’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전위(혹은 전방위)예술가인 마돈나가 경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을 아동과 여성지원단체 등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히니 딱히 말릴(?) 명분도 찾기 어렵다.
마돈나의 노래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을 처음 들었을 때 제목과 관련된 일화 하나가 기억의 숲을 얼핏 스쳐 지나갔다. 영어표현에 미숙했던 이민 1세대 두 분이 식당에서 종업원의 결혼 여부를 놓고 내기를 걸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던가.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는데 요즘 같으면 ‘1도 없어’(에이핑크 노래) 상황이다. 게다가 ‘아 유 싱글’이 아니라 ‘아 유 어 버진’이라고 했으니 무례함이 한도를 초과했다. 졸지에 언어폭격을 당한 웨이트리스의 당황한(황당한) 표정은 연기오디션의 실기 소재로 제공해도 손색이 없을 성싶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음악 혹은 음악적 영향력으로 우리는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마돈나의 히트곡목록 중엔 ‘기도처럼’(Like a Prayer)도 있다. 첫 소절에 호기심과 다짐이 들어 있다. ‘인생은 미스터리야/ 모두가 혼자 서야 해.’(Life is a mystery/ Everyone must stand alone) ‘라이크 어 버진’의 첫 소절은 그에 대한 일종의 화답이다. ‘어떡해서든 황무지에서/ 난 뭔가를 이뤄냈지’(Made it through the wilderness/ Somehow I made it through)
눈과 귀로만 말고 마음까지 열어야 초심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라이크 어 버진’을 ‘처녀처럼’이 아니라 ‘처음처럼’이라고 해석한다.
작가 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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