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性도 불만 많았던 …‘남성만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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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김월회의 지식카페 - (15)여성과 정치

- 아리스토파네스의 ‘여인들의 민회’· 플라톤의 ‘국가’

“男은 공금으로 사리사욕 채워
女에 도시 넘기고 통치권 주자”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
국가 통치 맡는 데 영향 없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인데, 흥미롭게도 서양 고대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주’(Demokratia)는 기원전 508년 그리스 아테네의 시민들이 독재적인 참주 히피아스를 몰아내면서 탄생했고, ‘공화’(Res publica)는 그보다 한 해 전에 로마에서 왕정을 무너뜨리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나 아테네나 새로운 정치적 개혁의 혜택은 모두 자국 성인 남성에게만 돌아갔다. 노예나 어린이, 외국인은 물론, 자국의 성인 여성마저도 정치적 권리에서 배제됐다. 법과 정치적 권한에서 남녀평등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여성을 배제해 놓고, 그게 무슨 민주고 공화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민주와 공화의 발전은 정치적으로 배제됐던 여성의 권한이 점점 확장되는 역사에서 도모돼 온 것 같다. 그것도 인류 문명사를 돌아보면 아주 최근에 급속도로 진행된 일이다.

당시에도 남성만의 정치판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왜 여성들은 정치판에서 배제돼야 하나.’ ‘남자들만이 나랏일을 잘할 수 있는가. 잘하고 있긴 하나.’ 이런 의문과 거기에 깔린 불만은 여성들만의 것도 아니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남성들의 무능을 폭로하고 여성들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표방한 남성 시인과 철학자의 글이 그 명백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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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켰을 때, 아테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전쟁을 비판하는 여러 편의 희극 작품을 발표했다. 아테네 시민 대부분이 관람하는 가운데, 그는 리시스트라테라는 여인을 무대에 올렸다(BC 411). 그녀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여인들을 모아 남성들이 일으킨 무모하고 무익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 ‘섹스 파업’을 일으켜 남성들을 굴복시켰다. ‘거시기’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발정 난 강아지 같은 사내들이 전쟁을 하겠다고 설쳐 대는 꼴에 당찬 여성이 한 방 제대로 먹인 것이다.

여성들의 유능함에 대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망은 전쟁이 끝나고 발표한 ‘여인들의 민회’(BC 392)에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표현됐다. “공금에서 일당을 받으면서도 저마다 사리사욕을 채울 궁리만 하고 있으니, 공익이 휘청거린다”고 남자들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도시를 여인들에게 넘기되,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캐묻지 말고, 그냥 통치하게 해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여러 면에서 자질이 더 우수하고, 무엇보다도 남성들보다 훨씬 더 평화적이란다. “여인들은 우리 전사들의 어머니인 만큼 그들의 생명을 지켜 주려고 할 것이오.” 마침내 남성들로 변장한 여인들이 민회로 들어가 여성의 시정 참여를 허용하는 입법을 통과시켰다. 물론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저 문학적 상상력으로 꾸며진 무대 위에서 공연된 희극으로 소비됐을 뿐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같은 목소리를 냈다. 정치지도자가 되는 길을 남성에겐 허용하면서 여성의 진입을 막는 것은, 마치 대머리가 구두 만드는 일을 잘한다고 해서, 장발의 장인이 제화공이 되는 것을 금하는 것과 같이 불합리하다고 했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신체적, 생물학적 차이는 대머리와 장발의 차이만큼이나 국가의 통치와 관련된 일을 맡는 데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성별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정치적 직무를 적절하게 맡길 때, 국가가 안정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주장 역시 당시 그리스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실현되지 못했고, 철학적 논의의 공간 안에서만 갇혀 있었다.

지금 여기 우리는 어떤가.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얼마나 실질적이고 적극적으로 능력을 펼치고 있고,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가. 혹시 지금의 방법으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처럼 희화적으로 소비되고, 플라톤의 담론에서처럼 당위적으로 표방되고 있을 뿐,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