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호감’ 뒤엉킨 민주 지지층… 서울시장·구청장 ‘분할투표’

■ 이현우의 Deep Read - 서울 지방선거 분석

시장은 여당 승, 8개 구청장은 야당 승… 민주 헛발질과 공천 난맥상이 야권 지지자 ‘줄투표’ 막아
정당에 대한 신뢰 상실, 정책에 대한 실망감, 후보 비호감 등이 유권자의 ‘상충적’ 태도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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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25개 구와 426개 행정동 모두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눌렀다. 하지만 구청장 선거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이 8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상당수 유권자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소속 정당을 구분해 따로 찍는 ‘분할투표’(split-ticket voting)를 했기 때문이다.

분할투표는 유권자가 같은 날 실시하는 동시선거에서 하나의 정당과 소속 후보를 줄줄이 찍는 ‘줄투표’, 즉 ‘일괄투표’(straight voting)와 대조를 이룬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주당 지지층의 분할투표는 지지 정당에 대한 신뢰의 상실, 정국 운영 방식이나 정책에 대한 실망감 증대, 선거 후보에 대한 비호감의 상승 등에 따라 정당에 대한 ‘상충적 태도’가 형성되고 정당 일체감이 약화하면서 표면화했다.

◇시장 따로 구청장 따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제대로 읽기 위해 지난해 4월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39.18% 득표했다. 이번에 송영길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39.23%로 두 번의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의 득표율은 거의 같다. 지난해 보선 때 57.50%를 득표했던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59.05%를 득표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1년 간격으로 실시된 두 차례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거대 양당 후보의 득표비율에 별 차이를 보이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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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오세훈 후보의 경우 서울의 25개 구에서 8개의 구에서만 2%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을 뿐 나머지 17개 구에서는 모두 2%포인트 이하의 차이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구로구 한 곳에서만 1%포인트 이상의 차이를 보였을 뿐 나머지 24개 구의 득표율은 박영선·송영길 후보의 득표율이 거의 비슷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당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 비위 의혹 사건 등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 투표 성격이 강했다. 민주당은 문 정부 심판에 따른 상대적 불리함이 대선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최소한 지난해 보선 때보다는 나아진 조건에서 이번 지방선거를 치렀는데도 진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 후보는 25개 구의 426개 행정동 모두에서 송 후보를 눌렀다.

흥미로운 것은 구청장 선거 결과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17곳, 야당인 민주당이 8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전체의 3분의 1에 가까운 지역에서 승리를 챙긴 것이다. 이 같은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분할투표, 왜 발생하나

이번 서울시 선거에서는 시장과 구청장 소속 정당을 구분해 따로 찍는 분할투표가 상당히 발생했다. 상당수의 서울 거주 유권자는 서울시장과 구청장을 뽑는 과정에서 같은 정당 소속 후보들을 찍는 일괄투표가 아닌, 각기 다른 정당 소속 후보를 찍는 투표 행태를 보였다. 분할투표는 어떠한 조건에서 발생하고 서울시 선거에서는 왜 상당한 분할투표가 이뤄졌을까.

분할투표는 한국의 의정활동에서 종종 보는 ‘교차투표’와는 다르다. 이는 원래 미국에서 동시선거를 치를 때 대통령 후보 정당과 하원의원 후보 정당의 선택이 다른 경우를 지칭하는 용어다.

분할투표를 설명하는 데 통상 ‘균형가설’이 동원된다. 대통령제에서 행정부와 의회가 서로 견제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두 권력기구를 한 정당에 맡기려 하지 않으며, 따라서 유권자가 대통령 후보와 하원의원 후보의 소속 정당이 다르도록 의식적으로 투표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분점정부’, 즉 여소야대가 발생한다.

유권자가 대통령의 자질과 하원의원 자질에 대해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는 점도 분할투표로 설명된다. 국가적 리더와 지역사회의 리더는 그 자질과 덕목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형적으로 대통령 후보는 권력과 질서의 이미지가 강한 후보를, 그리고 하원의원 후보는 지역 복지에 적극적인 이미지의 후보가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경우 특히 대선 직후 치러지는 ‘허니문선거’에서는 유권자가 집권여당에 일괄투표를 벌여온 경험이 많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 선거 결과는 이런 허니문선거의 투표 행태에서 벗어난 경우로 보인다.

◇유권자의 상충적 심리

한국의 선거에서 분할투표를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 번째는 제도적 요인이다. 단순다수제의 소선거구제와 정당비례대표제를 택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아래에서 군소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사표 방지를 위해 지역구 선거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큰 거대 양당 후보를 선택하되, 정당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원래의 선호 그대로 군소정당에 표를 준다. 즉 지역구 선거에서는 선호와 다르게 ‘전략투표’(strategic voting)를 하고,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원래의 선호대로 ‘진심투표’(sincere voting)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권자의 심리적 요인이다. 유권자가 평소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상충적’ 감정과 태도를 가질 때 분할투표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서 ‘상충적’이란 하나의 대상에 대해 긍정성과 부정성, 호감과 비호감, 즉 호오(好惡)의 감정을 동시에 갖는 이중적이고 다소 애매한(ambivalent)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유권자와 특정 정당 간의 유대감을 ‘정당 일체감’이라 한다. 아무리 정당 일체감을 갖고 출발했다 하더라도 정책이나 이슈의 변화, 이해하기 힘든 비도덕적 행태에 따른 환멸, 믿음의 상실 같은 요인이 발생하면 정당 일체감은 약화하고, 유권자는 지지 정당과 소속 후보에 대한 호감과 혐오의 감정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특히 대선 후 여소야대 국면에서 민주당의 입법 폭주와 공천 난맥을 확인한 민주당 지지자 중 이 같은 상충적 유권자가 다수 존재하게 됐다.

◇민심은 냉정했다

서울의 25개 구에서 시장에 나선 송영길 후보 지지율보다 구청장 후보들의 지지율이 평균 7.2%포인트나 높았다. 민주당이 승리한 8곳에서 구청장 후보들은 송 후보보다 9.6%포인트나 더 득표했다. 이는 송영길 서울시장 공천에 대한 혐오 감정이 민주당 지지자의 상충적 태도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분할투표를 불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확인된 민주당 지지층의 분할투표 행태는 유권자의 표심이 냉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세줄 요약

시장 따로 구청장 따로 : 6·1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25개 구와 426개 행정동 전체에서 송영길 민주당 후보를 누름. 하지만 구청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8곳에서 당선자를 배출.

분할투표 왜 발생하나 : 상당수 유권자가 시장-구청장 소속 정당을 구분해 찍는 ‘분할투표’를 했기 때문. 이는 ‘균형가설’의 원리로 설명됨. 미국에서 대통령과 하원이 견제하도록 ‘분점정부’를 구성하는 게 대표적 사례.

유권자의 상충적 심리 : 한국에서는 유권자의 지지 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상충적’ 태도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음. 민주당의 입법 폭주와 공천 난맥에 지지자들의 혐오와 호감이 뒤엉키면서 분할투표로 이어지는 것.


■ 용어 설명

‘분할투표’란 유권자가 여러 수준의 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지는 동시선거에서 다른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행위. 반면 같은 정당 후보에게만 표를 행사하는 행태를 ‘일괄투표’라 부름.

‘정당 일체감’은 일종의 당파적 태도로서, 유권자가 특정 정당을 대상으로 내면적으로 오래 간직하는 애착심 또는 귀속의식.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이 유권자의 투표 결정 3대 요인 중 하나로 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