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무의식의 극한에서 만나는 우리 자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혜선, Wind wave, oil on canvas , 90.9×72.7㎝, 2022.

우리만큼 손끝의 감각을 중시하는 민족도 없을 것 같다. 그림, 요리, 낚시, 골프 등에서 보듯 여러 활동에서 추구되는 것이 손맛이다. 촉감 활동은 인지능력이나 정서, 감각, 근육 등의 발달을 촉진한다. 어려서부터 손끝의 촉감들이 DNA로 축적돼 손재주로 나타나고 있으니,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준 원천이 아닐까.

손끝의 감각은 그림의 인터페이스를 통한 표현에서도 결정적이다. 김혜선의 두꺼운 임파스토 화면은 손맛의 절정을 보여준다. 미장 칼 같은 긴 나이프로 일필휘지의 넓은 궤적들이 생동감과 내면 에너지의 리듬을 들려준다. 붓의 운필을 하나의 도(道)나 법(法)으로 이해한 신화 때문인지 낯익은 리듬이다.

심연에 갇혀 있던 충동에 따라 미끄럼 타듯 활주(滑走)한 결과가 어떤 이미지에 당도한 느낌이다. 딱히 무엇을 의식한 게 아닌 심상의 이미지지만, 그것은 거센 파도나 물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히, 포말로 보이는 흰색 부분은 절묘한 감각의 결정체다. 무의식의 끝에서 만난 것이 사진보다 사실적이라니.

이재언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