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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석의 푸드로지 게재 일자 : 2022년 06월 09일(木)
숙취 풀어줄 시원한 국수… 스트레스 날려줄 매콤한 떡볶이… 나의 입맛 구원해줄 ‘분(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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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밀 재료 분식

전북 익산의 노포 고려당에서 내는 쫄면우동. 쫄깃한 면발의 우동이다.


식탁 점령 명실상부 ‘제2의 주곡’
국내에선 재배 어려워 귀했지만
6·25전쟁 이후 미국産 들어오며
수제비·찐빵 등 식문화 바꿔놓아

싸면서 조리 쉽고 배부른 식재료
복잡한 세계 정세에 값 상승 지속


그야말로 ‘밀 전쟁’(wheat war)이다. 최근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고립을 강화하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한편, 독일 외교장관이 ‘밀 전쟁’이라 단호하게 표현한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결의했다.

밀 전쟁 발발 이유는 국제 밀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밀 수출국 러시아(3위)와 우크라이나(6위) 두 나라의 전쟁과 국제 해운 비용 상승이 밀 가격 폭등에 대한 불씨를 제공했다. 게다가 지난달부터 세계 밀 생산량 2위 국가인 인도까지 밀 수출을 제한하면서 기름을 끼얹었다. 인도 정부는 자국과 이웃국의 식량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밀 수출 정책을 ‘자유’에서 ‘금지’로 변경했다.

악화일로. 이미 2년 전보다 45% 이상 상승한 밀가루 값은 더 오를 전망이다. 밀가루를 쓰는 국수, 제과 등 상품 가격과 이를 사용하는 식당 식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적에서 밀 주식 국가가 절대적으로 많은 까닭에 밀은 그야말로 밥(meal)이다. 작금의 상황이 최대 위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밀은 부족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밀을 먹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 식탁은 곳곳에 밀가루 음식이다. 밥이 심심하면 국수에 수제비, 빵과 만두를 먹는다. 중국음식점에 가서 짬뽕과 짜장면을 주문하고 양식집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먹는다. 간식으로 먹는 떡볶이, 꽈배기, 도넛, 붕어빵, 찐빵 모두 밀가루 음식이다. 이처럼 식생활에 밀접하게 닿아 있다.

서울 신당동의 떡볶이 원조집인 마복림 떡볶이의 떡볶이.

부산 부전동 초량밀면의 살짝 얼린 국물에 말아 낸 밀면.

서울 용산 창주랜드의 골뱅이파스타. 올리브오일이 베이스다.


쌀 소비가 꾸준히 감소함에 따라 2020년 기준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약 58㎏이다. 밀 소비량은 반대로 지속적으로 늘어 약 31㎏을 차지하고 있다. 쌀 소비량의 절반 이상의 밀을 먹고 있으니 명실상부 ‘제2의 주곡’이라 할 수 있다. ‘천지 삐까리’가 아니라 ‘천지에 밀가리’다.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맨든다’는 말이 있듯, ‘국시’와 ‘밀가리’는 밀가루의 동남방언이다.

밀의 자급률은 1%도 안 되는 수준(0.8%)이다. 앉은뱅이 밀 등 토종 밀을 재배하는 농가가 더러 있긴 하지만, 시장성이 낮아 극소수량만 재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값도 비싸거니와 외국산 밀과 글루텐 함량 등에서 차이가 나, 이런저런 이유로 제빵업체에서 사용을 꺼린 측면도 있다. 참고로 일본은 밀 자급률이 14%가 넘는다.

지난 2020년부터 정부는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현재 시행 중에 있지만, 자급률은 답보 상태다. 지난달 16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새 정부 경제정책 관계자들은 소상공인들과 함께한 간담회 자리에서 “국산 밀 생산을 늘리고 수입 밀과의 가격 차를 줄여 자급률을 높일 수 있도록 긴 안목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밀가루 가격 폭등에 이처럼 난리법석이 벌어지니, 과거 쌀의 지위처럼 밀은 생명이고 하늘이었다. 밀은 사실 ‘볏과’였다. 볏과 밀속에 속하는 밀은 쌀, 옥수수와 함께 세계 3대 곡물로 꼽힌다. 밀을 주식으로 먹는 세계 인구는 무려 30%에 이른다. 같은 쌀을 먹는 줄 알았던 중국인 역시 60% 이상이 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작은 보리라 해서 소맥(小麥)이라 부르는 밀은 재배 역사가 굉장히 오래됐다. 기원전 9000∼8000년쯤 서아시아에서 처음 밀을 심고 거뒀다. 지중해와 인도양을 건너 그리스, 인도 등으로 전파된 이후 기원전 3000여 년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기원전 2000여 년에는 아시아 중국까지 전래됐다. 이때 형성된 밀 주식 지역은 다른 곡물에 침범(?)당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밀의 효용성과 함께 영양, 맛 등이 이들 지역 식문화에 뿌리를 내린 까닭이다.

세계적으로 2배체 밀, 4배체 밀, 6배체 밀, 일립계 밀, 이립계 밀(에머 밀), 듀럼 밀(스파게티 밀), 폴란드 밀, 호라산 밀, 페르시아 밀, 티모피비 밀, 빵 밀, 클럽 밀, 스펠트 밀(딩켈 밀) 등 각각 특성이 있는 밀 종류가 유통되고 있다.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한 대신 가공성과 활용도는 상당히 높은 곡물이다. 보관성과 점착성이 좋아 빵이나 국수를 만들기도 좋고, 과자 등 기호품을 만들 때도 많이 쓴다.

쌀보다는 단위 면적당 경작 효율이 떨어지지만, 필요한 노동력이나 기후 조건, 병충해 등을 감안하면 밀을 재배하는 게 더 나은 지역도 있다. 생장 속도가 빠른 대신 지력을 많이 소모하지만 질소 비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어 인류가 꾸준히 경작지를 넓혀 나가는 작물이다. 쌀과 달리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난 후 늦봄이나 초여름에 수확하는 까닭에 이와 반대인 쌀과 함께 이모작도 가능하다.

경작하는 데 쌀보다 손이 덜 가는 대신 밀은 수확한 후 제분하는 과정이 번거롭다. 밀을 주식으로 삼는 나라에서 풍차나 물레방아 등 방앗간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다. 이게 끝이 아니다. 화력과 오븐도 필요한데 일일이 가정에 갖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밀이 주식인 국가에선 마을 공동으로 빵집을 운영하거나 아예 특정한 곳에서 빵을 사 오는 경우가 많다.

강수량이 많은 국내에선 경작이 어려워,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서나 앉은뱅이 밀을 길렀다. 평안도와 황해도 등에 겨울 밀을 재배하는 밭이 있었지만, 보리와 함께 쌀을 이모작하는 것보다 경작 효율이 떨어져 차츰 밀려났다. 토종 앉은뱅이 밀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일본이 이를 개량한 왜성형(키작은) 품종을 세계적으로 유통시켜 지금의 주된 밀 품종이 완성됐다고 한다.

토양과 기후, 수확 시기상으로 밀은 한반도에서 재배하기 어려운 까닭에 귀했다. 맛이 좋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많이 구할 수 없었다. 잔칫날이나 돼야 국수를 뽑는 고급 식재료로 대접을 받았다. 보통은 척박한 땅에서도 쉽게 자라는 메밀을 썼다. 밀을 쓴 국수는 그야말로 귀한 것이었다. 권세가가 많았던 안동 등에서 전통적으로 국수가 이름난 이유다.

그러나 밀이 고급 식재료로 대접받았던 것은 6·25전쟁 직후 원조 받은 미국산 밀이 대량으로 들어오기 전까지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수입된 밀은 원조 밀이 부산을 통해 대거 들어온 이후 순식간에 식생활을 바꿔 놓았다. 값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거니와 조리하기 편한 음식으로 바로 소문이 났다. 전국 곳곳에 소면 공장이 생기고 집에서도 칼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끼니를 때우는 용도로 썼다. 전을 부칠 때도 어김없이 들어가 푸석한 메밀(지금은 더 비싸다)을 대체했다.

처음엔 배가 고파서 먹었다지만, 워낙 맛과 식감이 좋으니 밀가루 음식에 열광하도록 한국인의 입맛도 점차 바뀌어 갔다. 불가역적으로 우리 미각에 단단히 뿌리 내린, 그리고 지금 가격 폭등의 태풍 앞에 선 ‘위기의 밀가루 음식’을 소개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어디서 맛볼까

◇떡볶이 = 마복림 떡볶이. 예전 고추장 CF의 “며느리도 몰라” 그 집이다. 이젠 며느리도 아는가 보다. 달지 않고 구수한 고추장 육수에 매끈한 떡볶이와 어묵 등을 넣고 달달 끓여 먹는 즉석떡볶이집이다. 키 작은 밀떡이라 더욱 매끈하게 넘어간다. 오래 끓일수록 양념이 배어 더 맛있다. 명실상부한 떡볶이 원조집이다. 서울 중구 다산로35길 5. 1만5000원(2인 세트).

◇국수 = 진우네 집국수. 담양 관방제림 옆 국수거리에 있는 집이다. 대표는 역시 멸치국물국수. 멸치로 우려 낸 진한 국물이 특징이다. 우동 가락의 절반 정도 되는 굵은 면을 쓴다. 한 젓가락 집어넣으면 입안에 가득 찬다. 고명으론 고춧가루와 대파만 얹었는데도 허전함이 없다. 삶은 계란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담양 담양읍 객사3길 32. 4000원.

◇칼국수 = 무교동 참복집. 복어요리를 하는 집인데 점심 메뉴로 저렴한 복칼국수를 판다. 복어와 미나리를 넣고 시원하게 끓여 낸 육수에 매끈하고 쫄깃한 칼국수를 말아 낸다. 시원한 복맑은탕에 국수를 넣어 먹는 셈이다. 직접 반죽하고 밀고 썰어 낸 면발이라 식사 마지막까지 심이 살아 있다. 해장이나 식사로 모두 좋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8 1층. 1만5000원.

◇파스타 = 창주랜드. 골뱅이에 소면 사리를 넣어 비벼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이 이탈리안 퀴진을 하는 아이디어 좋은 셰프와 만나 ‘골뱅이 파스타’가 탄생했다. 경질 듀럼 밀의 파스타면과 골뱅이를 올리브오일에 볶아 냈다. 봉골레도, 알리오 올리오도 아니다. 그냥 창주랜드식 파스타다. 군고구마 통에 굽는 바비큐도 유명하다. 서울 용산구 이촌로29길 21-14. 1만5000원.

◇밀막국수 = 고바우식당. 50년 넘도록 평창군 진부읍을 지켜 온 노포.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깔끔하고 담백한 육수가 압권이다. 생 밀면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아주 좋다. 비빔장도 맵거나 달지 않고 고소함이 감돈다. 싱싱한 푸성귀를 쓱쓱 비벼 먹으면 더위에 지친 입맛이 살아난다. 지역민들이 메밀면도 마다하고 즐겨 찾는 막국숫집이다. 평창군 진부면 청송로 90-17. 8000원.

◇우동 = 고려당. 익산의 유명한 분식 노포인데 쫄면우동을 판다. 쫄면으로 말아낸 우동이다. 시원한 멸치와 디포리(밴댕이) 국물에 탱글탱글한 쫄면이 들었다. 달걀도 풀고 김가루를 얹은 것이 중국과 한국식이 혼합됐다. 국물만큼이나 씹는 맛도 일품이다. 값도 저렴하다. 척 보기에도 튼실한 만두와 찐빵도 명물인데 점심시간쯤이면 떨어진다. 익산시 중앙로 52. 5000원.

◇밀면 = 춘하추동. 냉면에 대항하는 부산 사람들의 솔 푸드가 밀면이다. 살얼음 낀 육수에 밀가루 면을 말고 그 위에 화끈한 양념을 얹어 낸다. 특유의 매끈한 식감도 좋고 달콤하면서도 매운 양념이 입맛을 살려 낸다. 기계로 제면한 밀면은 메밀면보다 매끄러워 쪼르륵 빨아 대는 특유의 쾌감이 있다. 한약재 맛이 감도는 국물 역시 진하고 담백하다. 만두도 시켜야 한다. 부산 동구 중앙대로 225. 밀면(소) 5500원.

◇짬뽕 = 불간짬뽕. 이름이 낯설지만 매운맛을 의미하는 ‘불’과 ‘간짬뽕’의 조합이다. 간(乾)짜장처럼 즉석에서 볶아 내는 짬뽕이라 국물이 거의 없다. 주문하면 만들기 시작하는데 양파와 고추기름, 돼지고기 육사(肉絲)를 해산물과 함께 달달 볶아 낸다. 늘 문전성시지만 미리 주문하고 제시간에 맞춰 가면 바로 먹을 수 있다. 파주시 가람로51번길 16-24.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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