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삼성 수사 20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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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 산업부 차장

2016년 12월 21일, 최순실(본명 최서원) 국정농단 사건 특검이 출범하면서 다시 한 번 삼성에 ‘사법 리스크’가 들이닥쳤다. 현판식이 열린 그날, 특검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전격 압수수색해 삼성이 수사 타깃임을 공식화했다. 이후 삼성의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특검 수사 대상이 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결국 구속됐다. 이 부회장은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특검 수사가 시작된 지 약 5년 6개월이 흘렀다. 요즘 유행하는 날짜 계산 식으로 하면 2000일 가까이 지났다. 특검 수사는 재판까지 끝났지만, 삼성의 사법 리스크는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2018년 12월 분식회계 혐의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보기에 따라 강요 성격이 적지 않았던 최순실 사건이 아닌 진짜 경영권 승계 비리를 캐겠다는 의도였다. 검찰은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태스크포스장 등을 수사하면서 이 부회장 ‘턱밑’까지 갔지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소환하지도 못했다.

검찰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9년 9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와 KCC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내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수사를 전개했다. 편법 승계 의혹 관련 3라운드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수사의 속도는 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수사를 시작한 지 2년 6개월 만인 2020년 6월에야 결론이 나왔다.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민간인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는 불기소와 수사 중단을 권고했다.

기소 후 또 2년이 흘렀지만, 이 사건은 1심 재판도 끝나지 않았다. 선고일도 예측하기 어렵다. 사건이 복잡한 데다 피고인인 이 부회장 측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다퉈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1심만 3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대법원까지 가면 10년 재판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 와중에 검찰은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3월 삼성웰스토리 부당 지원 혐의로 또 한 차례 삼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끊임없는 수사가 계속되는 사이 이 부회장은 어느새 50대 중반이 됐고, 4대 그룹 총수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아졌다. 수사를 받는 기간 그보다 나이가 어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총수에 올랐다. 삼성의 ‘반도체 신화’ 못지않은 ‘바이오 신화’를 쓴 인물로 기억돼야 할 김태한 전 사장은 쓸쓸히 2선으로 후퇴해 재판을 받고 있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이고 세계 10대 강국이 된 한국의 대표 기업이지만,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수사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수사의 방식이다. 모든 수사의 정석은 ‘신속히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 등 여러 인사가 수십 년 동안 강조한 내용이다. 삼성 수사는 환부를 정확히 모른 채 암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개복부터 한 수술이다. 개복 후에 우왕좌왕하면서 환자의 건강은 점점 악화하고 있다. 원래 아프지 않은 데까지 문제가 생기고 있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에는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아야 할 의무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