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은 강한 국방력의 근간… 조국 헌신에 자긍심 갖는 문화 만들 것”

■ 현안 인터뷰 - 취임한달 맞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7세때 부친이 베트남戰서 전사
전몰군경 유족 마음 깊이 이해

美선 軍 복무 영광스럽게 여겨
세계강국 유지하는 이유중 하나

제복근무자 존중하는 문화 위해
보훈콘텐츠 플랫폼 구축 등 추진

내년 정전 70돌, 보훈외교 강화
참전국 대표 초청 행사 등 계획

나라를 위한 희생에 대해 예우와 보상을 해주지 않는 국가는 존속할 수 없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은 박민식(56) 국가보훈처장은 “강한 국방력의 근간이 되도록 보훈제도와 문화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순국선열과 참전용사 베테랑들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주요 국가들처럼 한국도 보훈행정 자체는 물론 사회 전반적인 인식과 문화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취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식 기념사는 보훈정책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윤 대통령은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 초대 보훈처장으로 오는 13일 취임 1개월을 맞는 박 처장을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 집무실에서 만났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의 제2연평해전 승전을 기념해 만들어진 ‘참수리 357호정 안보전시관’ 앞에서 보훈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 처장은 “애국이라는 가치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보훈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부친이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참전했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전사하셨다. 보훈가족으로서 보훈처장을 맡은 소감은.

“아버지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제가 7살 때 전사하셔서, 어머니가 6남매를 어렵게 키우는 모습도 지켜봤다. 전몰군경 자녀로서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의 가치와 유가족들의 아픔, 생계 등 현실적인 어려움, 그리고 그분들께 정성으로 보답하는 ‘보훈’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전사하시고 받은 느낌을 돌이켜 생각하면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서 뭔가 부끄러운 느낌, 죄책감 같은 것이었다. 저는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이 나라를 위한 헌신에 자긍심을 가지는 나라를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소명의식이 있다.”



―새 정부 첫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추진하는 일은.

“이번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고맙습니다’를 주제로, 국민과 함께 국가유공자의 희생을 기억·기념하고, 국가유공자를 예우·감사하며, 국민의 참여와 화합의 계기를 마련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국가유공자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주요 행사로 현충일에 추념식을 가졌고, 6·10 만세 운동 기념식도 준비하고 있다. 6·25전쟁을 기억하는 정부기념행사도 진행하려고 한다. 국가유공자를 최고로 예우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모범 국가유공자 정부 포상식과 위로·격려행사도 개최할 것이다. 12개 참전국 유엔참전용사와 유가족 100여 명을 국내로 초청해 감사 행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또 전시회와 마라톤 등을 비롯해 국가유공자와 국민 110만여 명이 참여하는 180여 개 문화예술행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보훈문화 확산 방안은.

“제도적 기반인 보훈문화진흥법 제정을 추진하고,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훈콘텐츠 플랫폼 등 시스템을 구축하겠다. 제복근무자를 존중하는 범국민적 캠페인 추진 등 보훈문화 분위기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다.”



―박민식표 보훈정책에서 추진하는 역점 사업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실용적인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70년도 지난 6·25전쟁에서 숨진 조종사의 유골을 찾기 위해 수십억 원의 돈을 들여 현지 발굴에 나서고 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군인을 우대하는 것이 사회문화로 자리잡은 미국에서는 군 복무를 영광스러운 일로 여기며 자부심을 갖는다. 이것이 미국이 세계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윤 대통령께서도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보훈대상자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추모의 벽 조성이 마무리된다고 들었다.

“올해 7월 미국 워싱턴DC에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이 준공될 예정이다. 높이 1m, 길이 130m의 화강암에 미 한국전쟁 전사자(3만6634명)와 한국 카투사 전사자(7174명) 4만3808명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다. 추모의 벽 건립은 유엔참전국인 미국에 대한 감사와 대한민국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사업이다. 한국 카투사의 이름이 미국의 한국전쟁 전사자와 함께 새겨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을 영원한 우방이자 동맹국으로서 바라보는 미국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 줬다고 본다.”



―내년 6·25전쟁 정전 70주년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2023년은 6·25전쟁 정전 70주년으로, 새 정부 임기 중 맞이하는 10주년 단위 호국행사로서 국내외 다양한 기념사업을 범정부적·국제적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유엔 및 참전국 대표 초청 중앙 기념행사, 참전국 현지 감사행사 등의 사업을 통해 국제보훈외교를 강화하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가 국내외 참전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있음을 기억하며 온 국민이 하나 되는 계기로 만들겠다.”



―문재인 정부 때 광복회가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관리·감독 기관인 보훈처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2월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재임 중 정치적 발언 논란과 불투명한 수익사업운영 및 개인비리로 자진 사퇴했고, 이후 단체 내부에서 갈등과 혼란 상황이 표출되기도 했으나 지난 5월 31일 보궐선거를 통해 장호권 회장이 선출됐다. 보훈처도 광복회가 조속히 정상화돼 존경받고 신뢰받는 모범적인 단체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와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1898∼1958) 의열단 단장을 언급하며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고 언급한 것도 논란을 빚었다.

“김원봉이 1919년 의열단을 창설해 23차례나 폭탄 투척과 요인 암살을 주도하며 독립운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1948년 월북 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고 6·25 남침전쟁에 개입하는 등 동족 학살의 큰 책임이 있다. 2015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시절에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말한 데 이어 현충일에도 그를 언급한 것은 보훈의 큰 기둥인 ‘호국’의 관점에서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식에서 ‘확고한 보훈체계는 강한 국방력의 근간’이라고 언급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해 확실하게 보상하고 예우해야 국민도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이는 곧 ‘굳건한 안보와 직결’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이 보훈조직을 장관인 ‘부’(部)로 운영한다. 반면, ‘처’(處)인 우리의 경우 장관급과 차관급을 반복하면서 국가유공자를 소홀히 한다는 인식이 제기돼 왔고, 원활한 보훈정책 추진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보훈처는 ‘부처 간 종합·조정’을 주로 하는 ‘처’의 역할이 아닌, 국가유공자 예우·보상, 대국민 보훈선양, 제대군인지원, 보훈외교 등 전 국민과 22개 유엔참전국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정책을 수행하고 있어 정부조직 원리와도 맞지 않다. ‘부’ 승격으로 ‘보훈의 위상’을 강화해 국가유공자의 자긍심을 높여야 하며, 국정운영의 핵심 부처로서의 중추적인 역할 수행을 통해 보훈이 국가의 핵심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국정과제에 의무복무자 우대 제도 추진이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군 가산점 제도는 군 복무를 마친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었지만, 여성들이나 장애인들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아 위헌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제대군인의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것이 입법 정책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매우 필요하다’고 판시하면서, 다양한 사회 정책적·재정적 지원방안을 예시한 바 있다. 현행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도 의무복무 제대군인에 대해 ‘채용 시 응시연령 상한 연장’과 ‘군 경력 호봉·임금 반영 권장’ ‘군 복무 중 발병한 중증질환자에 대한 의료지원’ 등의 지원을 규정하고 있다. 앞으로 의무복무자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군 경력을 호봉 등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등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 의무복무자에 대한 주택청약 가점 부여, 국민연금 가입 인정기간 확대, 대학 학점 인정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한 지원 대책들도 적극 추진하겠다.”

정충신 선임기자, 정리=서종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