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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22년 06월 14일(火)
20대 스타도 90대 거장도 사랑한 작가… 산은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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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타계 20주년 특별전

韓 미술사 최초 ‘추상화’ 시도
색과 구도서 한국적 원형 탐색
“빛 제대로 담은 국내 유일 작가”
국제갤러리, 5개 전시장 활용
작가의 일생·색채 변주에 초점
회화 68점·드로잉 21점 선봬


유영국 1967년 작 ‘Work’.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방탄소년단 RM이 유영국 화백의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RM 인스타그램

“산은 내 안에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지난 9일 SNS에 이런 글과 함께 그림 사진을 몇 장 올렸다. 그가 민트색 셔츠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도 있다. 그의 복장 빛깔과 잘 어울리는 색을 지닌 그림은 유영국(1916∼2002) 화백의 작품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가 유 화백 타계 20주기를 맞아 특별전을 열었는데, RM이 거기 다녀왔다. 유 화백이 생전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한 것을 기억했다가 자신의 감상평으로 되살린 것이다.

RM이 글을 올린 날, 전시장에서 박서보 화백을 봤다. 91세의 화백은 정정한 모습으로 후학들과 함께 유 화백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 화백은 “홍익대 미대에서 교수를 찾을 때 유 화백을 추천했을 정도로 신뢰했다”고 전했다. 그는 “유 화백의 초창기 작품을 좋아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태양 빛을 화면에 집중시킨 작품들이 있어서 눈여겨봤다”고 했다.

20대 대중문화 스타와 90대 미술 거장이 함께 찾은 화가 유영국. 그는 대중에게 친숙한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로 크게 인정받고 있다. 김환기와 함께 한국 미술사에서 최초로 추상화를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컬렉션에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인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고 이 회장이 유 화백의 작품을 수집해서 귀하게 여기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며 “우리 미술사에서 드물게 빛을 제대로 담아낸 작가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전시장에서 작품들을 보면,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림들의 색이 단순한 듯 보이지만 중층의 미감으로 빛의 향연을 펼친다. 예컨대, 저녁노을 풍경을 담은 그림은 빨강을 주조로 하는데, 명도와 채도의 미묘한 변화가 기하학적 문양과 어우러지며 보는 이를 매혹한다. 이번 전시 제목(‘Colors of Yoo Youngkuk’)은 그 빛의 미학을 누려보자는 뜻이니 사뭇 적절하다.

국제갤러리는 이례적으로 전관(K1, K2, K3)에서 5개 전시장을 통해 작품들을 선보인다. 우선, 회화가 68점이나 걸려 유영국의 작품 세계를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K1 관에서는 1950∼1960년대 초중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색채와 조형 실험을 하며 자신만의 그림 언어를 구축하던 시기이다. K2에서는 1970∼1990년대 작품들을 보여준다. 점, 선, 면, 형, 색이라는 기본적 조형 요소를 균형감 있게 다루며, 자연의 빛과 구도를 심상으로 끌어온 작업의 완숙미를 느낄 수 있다. K3에서는 기하학적 추상과 조형 실험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 중후반∼1970년대 초기작을 소개한다. 기획자인 이용우 홍콩 중문대 문화역사학과 교수는 “연대기 순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일생과 색채의 변주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드로잉 21점과 함께 사진 작품들을 선보인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고도(古都) 경주의 문화재와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은 구상일 수밖에 없는 장르에서도 추상 시도를 하는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유영국은 엄정한 자세로 수행하듯 창작에 힘썼다. ‘Work’라는 이름의 연작은 그가 성실한 직업인의 자세로 작품을 만들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작가의 일생을 전하려는 기획자 의도는 전시장에 따로 마련된 아카이브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영국 화백이 1990년대에 서울 방배동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모습. 국제갤러리 제공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작가는 평생 고향의 산과 바다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1935년 일본문화학원에 입학해 김병기(1916∼2022)와 함께 공부했다. 이 학교에는 1년 뒤 문학수(1916∼1988), 2년 뒤 이중섭(1916∼1956)이 들어왔다. 유영국은 이때 처음 추상미술을 접했다고 한다. 당대 전위예술 운동의 최전방이었던 무라이 마사나리(村井正誠·1905∼1999), 하세가와 사부로(長谷川三郞·1906∼1957) 등을 만나 다양한 미술 단체들과 교류했다. 이번 전시 아카이브에는 당시 작가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있어 흥미롭다.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감추고 내면세계를 가꾸는 청년의 초상이 거기에 있다.

유영국은 1943년 태평양전쟁 때 귀국한 후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고향에서 배를 몰거나 양조장을 경영하며 가족을 건사하는 일에 힘썼다. 사업 수완이 좋다는 평을 들었던 그는 1955년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서울에 올라와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에 뛰어들었다.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등 미술 단체를 이끌었으나 1964년 “그룹의 시대는 끝났다”며 개인 작업으로 침잠했다.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김환기 등과 함께 참여한 이듬해였다. 만 48세였던 그때 신문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선보였다. 색과 구도에서 한국적 원형을 탐색하며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대학교수(1948∼1950년 서울대, 1966∼1970년 홍익대)로 두 번 재직했음에도 그에겐 전업 작가라는 칭호가 붙어있다. 예술가연하며 세상에 나와 발언하는 것을 즐기지 않고 작업실에 처박혀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한 덕분이다. 그는 말년에 투병 생활을 오래 했다. 심장박동기를 달고 살며 병원 입·퇴원을 수십 번 반복했다. 그런 와중에도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병과 싸우며 만든 작품들도 이번 전시에 나와 있다. 그 작품들이 유독 안온한 느낌을 주는 것은, 수도하듯 그림을 그린 세월이 투병의 고통을 보듬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는 8월 21일까지.

장재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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