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의 생태계 … 끝내 살아남는 건 언제나 ‘약자’

■ 패자의 생명사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박유미 옮김 더숲

흔히들 자연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한다. 육식 동물은 초식 동물을 잡아먹고, 초식 동물은 식물을 먹는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론 그렇다. 그렇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 돌이켜보면 끝까지 살아남은 건 오히려 ‘약자’이고 ‘패자’라고 책은 말한다.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순간부터 인류의 출현까지 생명의 역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서술한 저자는 단언한다. 생명에 멸종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목숨을 이어간 것은 당시 번성했던 생명체가 아니라 변방으로 쫓겨나 있던 생명체, 패자였다고.

책에서 제시하는 생명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27억 년 전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던 원핵생물(DNA를 저장할 세포핵이 없는 생물) 박테리아는 지금까지 살아내며 치즈로, 청국장으로 활동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인류의 기원이 된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보다 몸집도 작고 힘도 약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뇌조차 경쟁자보다 작았다. 그렇지만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기 위한 소뇌가 발달했고, 집단을 만들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다. 결국 네안데르탈인보다 부족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 남는 ‘승자’가 됐다.

척추동물의 육지 진출도 당시 기준에선 패자의 도피였다. 강한 물고기들을 피해 뭍으로 도피한 물고기들은 양서류가 됐고, 이 양서류는 파충류, 공룡, 조류, 포유류가 됐다고 책은 설명한다. 바다에서 육지로의 이동은 최약자를 결정하는 토너먼트 경기였다.

늘 약자였던 포유류의 역전극은 어떤가. 공룡이 멸종하고 하늘은 조류, 물가는 파충류가 장악하고 있었다. 포유류는 한 귀퉁이에서 요리조리 적들을 피해 잽싸게 이동하면서 삶을 연명했다. 이미 성공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조류나 파충류와 달리 포유류는 잃을 게 없던 ‘제로 상태’였다. 그러나 포유류는 청각과 후각을 발달시키고 민첩성을 기르는 등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다 인간의 시초가 됐다고 책은 주장한다.

공룡이 멸종된 사건을 인류의 멸종 위기와 연관 지은 점도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공룡 같은 무시무시한 생태계의 강자들을 피하며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던 씩씩한 패자의 후손이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의 공룡처럼 생태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과거 대멸종의 쓰라린 경험을 당한 것은 지구를 지배한 강자들이었던 것처럼, 다음 차례는 인간이란 얘기다.

더 나아가 인류가 멸종해도 지구엔 다시 새로운 생물들이 출현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고. 저자는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까지 생명의 릴레이를 펼쳐나가고, 인류는 멸종돼도 유전자는 계승되기에 생명은 영원하다고 태연스레 말한다. 248쪽, 1만6000원.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