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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22년 06월 17일(金)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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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음악평론가

복잡한 전문용어 구사 상담원에
인터넷 서비스 해지하려다 실패
3개 인터넷 이용하는 호갱 등극

휴대폰 인증 땐 손이 덜덜 떨리고
QR 찾지 못해 전화를 걸어 인증
“아! 나는 정말 이시대와 안맞아”


며칠 전, 집에 있는 인터넷 TV 이용 서비스 중 하나를 해지하기 위해 통신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나의 가입 내역을 살펴보던 상담원이 화들짝 놀라면서 “아니, 고객님께서는 할인 혜택을 받으실 수 있는데 그동안 안 받고 계셨네요. 혜택을 받으셨으면 ○○○원만 내시면 되는데 그동안(무려 4년 반 동안이나!) ○○○원씩이나 내셨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세상에! 그동안 내가 더 낸 돈이 도대체 얼마야. 무언가 엄청나게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담원은 인터넷 TV 이용 서비스를 해지하려는 나의 의사를 무력화하는 것이 본인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신청하기만 하면 받을 수 있었던 할인 혜택에 대해 줄줄이 나열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그렇게 많은 명목의 할인 혜택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얼마나 많은지 상담원의 말을 따라 듣기가 벅찰 정도였다. 나는 그가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그 수많은 전문용어(?)와 숫자 앞에 길을 잃었다. 거의 외계어를 듣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나는 못 알아듣는다는 티를 내기 싫었다. 그래서 상담원의 말 중간중간에 “어머! 그런 혜택이 있었어요?”라는 추임새를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자 상담원은 신이 나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세상일에 무심했는지,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고 살았는지 열심히 깨우쳐 주었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한참을 듣다 보니 나는 그냥 뭘 공짜로 준다고 해도 모르는, 너무 무식해서 자기 권리도 제대로 못 찾아 먹는 바보라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그 말이 맞기는 하다. 혜택은커녕 이사하면서 연결이 끊겨 사용하지도 않은 인터넷 TV 이용 요금을 그냥 내고 있었으니까. 그 이유가 그냥 해지하기 귀찮아서였으니 말해 뭐하랴.

그런데 상담원의 말을 듣는 동안에도 나의 귀차니즘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할인 혜택의 종류가 많은지 그것을 나열하는 데만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10분은 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 알지도 못하는 얘기를 듣는 데는 인내심이 없는 편이다. 그렇게 유용한 정보를 듣는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도대체 이게 언제 끝나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 시간이 말도 못하게 지루했다. 참다못해 하마터면 “저 그 혜택 안 받을 테니까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할 뻔했다.

사실 내가 이런 알토란 같은 혜택을 안 받거나 못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요즘은 마트나 레스토랑, 빵집에 가도 포인트 적립이라는 것을 한다. 계산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포인트 적립 카드 있으세요”라고 묻는다. 없다고 대답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참에 포인트 적립 카드 하나 만들라고 설득한다. 그러면 나는 포인트에 무슨 원수라도 진 사람처럼 단호한 목소리로 “아니요. 안 만들 거예요”라고 대꾸하곤 한다. 이러는데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인생을 좀 심플하게 살고 싶은 것일 뿐.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내가 원한다고 언제나 심플하게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가끔 불가피하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생기곤 한다. 그럴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그중에서 특히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휴대폰으로 하는 본인 인증인데, 나는 아직도 그 절차의 복잡함과 난해함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상담원으로부터 “지금 고객님 휴대폰으로 인증번호가 갔는데요. 그 번호를 입력해 주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아니, 지금 다른 화면을 보고 있는데, 인증번호를 어떻게 본다는 건가. 그리고 만약 어찌어찌해서 인증번호를 보는 데 성공한다 한들 그 번호를 입력하는 창으로는 또 어떻게 이동한단 말인가. 당황해서 이런저런 버튼을 눌러 본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잘못 눌러 전화가 끊어지기도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들어가려면 큐아르(QR) 코드를 찍어야 하는 때가 있었다. 그때 딸에게 부탁해 휴대폰에 QR 코드를 깔기는 했는데, 문제는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막상 찍으려는 순간 QR 코드를 찾지 못해 그냥 못 찍은 적도 많았다. 그런 때는 QR 코드를 찍는 스마트한 방법 대신 입구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거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여러 번 반복하면 저절로 학습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종류의 일에서만큼은 아무리 많이 반복해도 뇌에 입력이 안 된다. 할 때마다 새롭고, 할 때마다 어렵다. 그럴 때마다 “아! 나는 정말 이 시대와 안 맞아”라고 한탄하곤 한다. 모든 것이 정보화·디지털화돼 있는 이 시대를 살아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버거운 과제다.

앞에서 해지하려고 한 인터넷 이용 서비스는 결국 해지하는 데 실패했다. 복잡한 전문용어를 구사하는 상담원과 통화하면서 이용 서비스를 해지하는 것보다 해지 안 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난해한 논리를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 결과, 나는 집에서 무려 3개의 인터넷 TV 서비스를 이용하는 ‘호갱’에 등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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