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자식위해 땔감 지고 십리길 … 희생만 하신 아버님

■그립습니다 - 문대연(1930∼1992)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대연(오른쪽) 씨의 군대시절 모습.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독한 이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슴속에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단어다. 나의 아버지는 6·25전쟁에서 종횡무진 용맹을 떨치던 참전용사였다.

시골 오지에 계시던 아버지는 살아생전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했던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에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특히 국사봉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쓰러진 세 살 어린 전우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당신을 바라보던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어 늘 살아남은 죄책감에 눈시울을 붉히곤 하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곳에 모시고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그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해 자식으로서 도리를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아버지는 19세가 되던 해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이듬해 6·25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전쟁이 끝나고 전역한 이후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인해 밤마다 비명을 지르고 식은땀도 흘리며 악몽에 시달렸다. 하지만 병원 치료는 사치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라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하셨다.

부모님은 가난해 벌목장과 남의 논밭에서 일하며 품삯으로 생계를 꾸리셨다. 그러다 어머니가 벌목장에서 몸을 다치셨다. 하지만 병원비 마련이 불가능했다. 아버지는 산과 들을 누비며 약초를 캐고 달여 지극 정성으로 어머니를 돌봤다. 또 나의 학비를 위해 오일장이 서는 날마다 무거운 땔감을 등에 지고 십리도 넘는 길을 걸어서 팔러 다니셨다.

민간요법에만 기댄 채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던 어머니가 41세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나는 가난을 원망했다. 가끔은 아버지도 원망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찢어지는 듯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고향을 떠났다. 그런 아버지가 위암 투병 중에 병증이 크게 악화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의 한 종합병원으로 모셨다. 하지만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다음날 서울역으로 아버지를 배웅 갔었다. 견디기 힘든 극심한 통증 때문에 배를 움켜잡고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힘겹게 플랫폼으로 가시면서도 발걸음을 멈추고 몇 번을 뒤돌아보며 “나 신경 쓰지 말고 잘 지내라”고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나를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62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후회스러운 일이 많았지만, 아버지께 용서받지 못할 불효를 저지른 그때의 철없음이 가장 후회된다.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형언할 수 없는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풍수지탄,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오늘따라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하루다. 당신의 힘들고 고달픈 삶을 오로지 팔자로만 여기고 이 못난 자식을 위해 희생만 하다 떠나신 아버지께 가슴 깊이 감사드리고 또 죄송할 따름이다.

6·25전쟁 72주년을 앞두고 참전유공자 증서와 예쁜 꽃다발 한 아름 안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겠다. ‘아버지, 천하의 죄인이 살고 있는 이곳은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봄을 지나 눈이 시리도록 푸르름이 더해지는 6월의 중순입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그곳은 어떠하신가요. 당신이 너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문영호 ㈜천신CSK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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