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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Deep Read 게재 일자 : 2022년 06월 23일(木)
부패·비리 司正은 ‘의무’… 前정권 범죄 수사 안 하면 檢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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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민의 Deep Read - 권력과 司正

尹대통령 “강력한 법치” 소신 따라 文정권 사정에 속도… 검찰의 범죄 수사는 실정법상 재량 아닌 의무조항
한국선 때론 정치보복 논란…프랑스, 檢 정치적 독립성 보장해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권력형 비리 파헤쳐


윤석열 정부의 사정(司正)이 본격화하는 형국이다. 사정은 특히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의 비리나 범죄 혐의 등을 겨냥한 검찰 수사로 나타나고 있다.

여권은 법과 원칙에 따른 ‘정당한 수사’라고 하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권력이 교체될 때마다 전 정권을 겨냥한 사정은 있었고, 때로 이를 둘러싼 정치보복 논란이 제기돼 왔다.

◇죄와 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있긴 하지만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사정 수단은 여전히 검찰 수사다. 형사소송법 제196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한다’고 규정한다. ‘수사할 수 있다’가 아니라 ‘수사한다’고 한 것은 검찰 수사가 ‘재량행위’가 아닌 ‘의무규정’이라는 뜻이다. 범죄혐의가 있는데도 정당한 이유도 없이 수사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범죄(직무유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출근길 일문일답에서 ‘검찰의 산업부 블랙 리스트 수사 등에 대해 야당에서 기획된 정치보복 수사라고 주장한다’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과거 일을 수사하지, 미래 일을 수사할 수는 없잖아요. 과거 일부터 수사가 이뤄지고 좀 지나고 나면 현 정부 일도 수사가 이뤄지고 하는 것이지 민주당 정부 땐 안 했습니까. 정상적 사법 시스템을 자꾸 정치 논쟁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는 검찰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산업부 블랙 리스트 사건, 대장동 사건 등에 대한 수사 가능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검사의 임무는 당연히 범죄와 싸우는 것이고 누구든지 죄가 있다면 처벌받아야 하며 있는 죄를 덮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것 역시 윤 대통령의 발언과 흐름을 같이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9년 10월 22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엄정한 사정 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은 없었을 것이고 어떤 권력기관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한 일이 있다.

◇사정이냐 보복이냐

전 정권을 겨냥한 사정은 때로 정당성을 인정받았지만 때론 정치보복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 구호 아래 ‘5·18 특별법’을 제정했다.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신군부 출신 핵심인사 11명을 구속했고, 대법원은 전두환 사형·노태우 징역 12년형을 확정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물어 김영삼 정부의 부총리를 지낸 강경식, 경제수석 김인호 등을 사법 처리했다.

노무현 정부는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했고, 이에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등 전 정권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명박 정부 때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이광재와 형 노건평 등이 뇌물죄 등으로 구속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사정은 검찰을 총동원한 정치보복의 결정판이었다. 사실상 제1호 국정과제로 내걸었던 ‘적폐청산’이 광범위하게 이뤄졌고, 임기 5년 내내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치기 했다. 1979년 이후 39년 만에 서울중앙지검 4차장 직제까지 신설해 전방위로 검찰 수사가 진행됐다.

법치주의가 확고한 선진국에서의 사정은 정권교체 여부와 상관없이 상시적으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가 이뤄진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근대 형사사법제도를 처음 구축한 프랑스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대통령 퇴임 후 판사 매수 혐의로 3년 구금형을 선고받았고, 자크 시라크는 과거 공금 유용 혐의로 대통령 재직 중 기소되기도 했다. 이는 전직이나 현직이나 사정의 예외가 없다는 걸 보여줬다. 국가 최고지도자라 하더라도 독립된 검찰에 의해 언제나 수사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정치보복 논란에서도 자유롭다.

◇윤 정부 사정 전망

윤 정부의 전 정권에 대한 사정은 사실상 예고된 것이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돼야죠”라면서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취임사에서 강력한 법 집행을 통한 법치를 국정 운영의 기본원칙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앞서 지난해 대선 출마 선언 때에는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다”며 권력형 부패와 비리 척결이 시대적 과제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부정부패 척결과 적폐청산’이 상위에 꼽히는 것 역시 사정 수사에 힘을 실어준다.

이에 따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산업부 블랙 리스트 사건을 비롯해 이재명 민주당 의원과 관련된 대장동 개발 비리, 성남FC 후원금 사건, 백현동 특혜 의혹 등과 관련된 검찰과 경찰의 수사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문 정부 시절 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로 권력형 부패·비리 수사팀이 사실상 공중분해 되고 수사 중단 상태까지 갔었다. 하지만 윤 정부가 최근 검찰 인사를 정상화하면서 중단된 수사 재개는 불가피해졌다. 구체적인 권력형 부패와 비리 혐의가 수사 결과 밝혀지기 시작하면 정치보복이라는 민주당의 방어 논리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어질 수 있다.

◇사정의 조건

제도권 권한을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절제의 규범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중요한 가드레일이다(레비츠키 &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윤 정부의 사정 수사가 정당한 법 집행으로 평가받고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보복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수사하고 그 결과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 검찰이 정치권력에 예속되거나 외압을 받으면 수사의 정당성은 무너진다. 셋째, 살아있는 권력 부패·비리에 대해서도 타협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 전제를 이루는 토대는 검찰의 독립이다. “검찰 독립이 없으면 공정함이 없고 공정함이 없으면 정의도 없다”는 프랑스 전 검찰총장 장 루이 나달의 경구는 한국이 특별히 유념해야 할 교훈이다.

변호사,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 세줄 요약

죄와 벌 :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사정 수단은 여전히 검찰 수사임. 형사소송법 제196조에 따르면 검찰의 범죄혐의 수사는 ‘재량행위’ 아닌 ‘의무규정’. 범죄혐의를 수사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가 될 수 있음.

사정이냐 보복이냐 : 전 정권의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도 당연히 의무임. 하지만 사정은 때로 정치보복 논란을 부름.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 상시적으로 신구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는 관행과 문화가 정착돼야.

윤 정부 사정 전망 : 윤 정부의 사정은 사실상 예고된 것. 그는 대선 후보 때부터 집권 후 권력의 불법과 비리를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음. 검찰 인사 정상화로 사정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


■ 용어 설명

‘사정(司正)’의 사전적 의미는 ‘그릇된 일을 다스려 바로잡는다’임. 주로 정치인과 권력의 부패·비리를 조사·수사하는 행위. 적폐청산이란 뜻으로도 쓰임. 검찰, 경찰, 감사원 등이 주요 사정기관.

‘민주주의 가드레일’은 성문법 외에 불문법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온 두 개의 원칙을 말함. 레비츠키 & 지블랫은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이를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고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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