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영하 50도 함께 견디며… 동료 마음 녹이는 큰형 같은 ‘포용력’

  • 문화일보
  • 입력 2022-06-27 08:58
  • 업데이트 2022-12-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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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프런티어 리더십 - 진동민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1일 인천 송도 극지연구소에서 진동민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이 남극에서 사용할 방한복과 장비 등을 착용해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신창섭 기자


남극도 우주처럼 미지의 영역
필요한건 열린 마음과 협동심
무모한 모험심·낭만은 버려야
전문가적 지식만 내세우기보다
경청·겸손·배려 자세로 이끌어
해가 지지 않는 白夜 속 대원들
스트레스·고립감 최소화에 노력


인천 = 지건태 기자

지난 21일 우리나라 독자 기술로 만든 첫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미지의 영역인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이날 누리호가 쏘아 올린 성능검증위성은 지구의 또 다른 미지인 남극 세종과학기지와도 처음 교신을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문화일보가 만난 진동민(59)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은 자신이 마치 유인 우주선의 우주인이라도 된 양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 36차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으로 발탁된 그는 우주 개척에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 순간에 자신도 주인공이 된 것처럼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그가 속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는 매년 18명의 월동연구대를 세종과학기지에 파견한다. 이들은 올 연말부터 내년 말까지 1년간 극한의 환경인 남극에 머물며 기지에 설치된 천문 우주와 대기, 지구 물리와 생물·해양 연구에 필요한 각종 관측 장비를 관리하고 여기서 수집된 자료를 국내 연구진에 보내는 역할을 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가장 빠르고 예민하게 나타나는 남극의 기상과 생태계를 관측하고, 지름 4.7m의 위성통신 안테나를 유지 관리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다.

수개월간 햇빛조차 볼 수 없는 남극의 겨울은 어쩌면 기후위기 인간이 처할 수 있는 마지막 지구환경일 수 있다.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가 지구를 지키는 어벤저스라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두 번째 남극기지인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이미 초대 월동대장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진 대장은 자신이 선발한 새로운 월동대원과 함께 세 번째 남극의 겨우살이에 도전한다.

“세상 끝인 남극은 아직도 우주와 같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나 월동대원에게 남극은 탐험이 아닌 과학의 영역이어야 한다.”

올 초부터 진행한 36차 월동대원 선발 과정에서 진 대장이 지원자에게 늘 강조한 말이다. 그는 이달 말 최종 합격 통보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대원들이 남극을 자신의 어릴 적 버킷리스트에 써 둔 과제 정도로 여기지 말았으면 했다. 언제 어디서든 초속 20m의 블리자드(남극 강풍)에 직면할 수 있고 체감온도 영하 50도를 밑도는 날씨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신입 대원 선발에 누구보다 까다롭게 군 진 대장은 월동대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과 ‘협동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진 대장을 포함한 18명의 대원은 기상청과 국방부, 해양경찰청, 가천길병원 등에서 파견된 필수 안전요원과 극지연구소의 연구진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을 공개 모집을 통한 경쟁 방식으로 선발한다. 기계와 설비, 통신, 중장비 등 5개 시설분야의 전문가와 조리사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평균 1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면접 과정까지 올라오지만 기본 체력과 건강검진, 심리테스트 등을 통과해야만 남극에 갈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진다.

이들은 앞으로 4개월간 기지 내 각종 장비를 다루기 위한 실무 교육과 함께 극지 적응 훈련을 한다. 이 중에는 대원 간 협력과 공동체 의식 강화를 위한 일정 기간의 합숙도 포함됐다.

대원 중 최고 연장자인 진 대장은 오는 11월 이들과 함께 남극행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까지 가족 같은 우애를 다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진짜 가족을 떠난 내년 극지에서 회갑을 맞게 되는 그는 대원들이 가족보다 더 잘 챙겨줄 것이란 기대도 은근히 하는 눈치다.

“살아온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극지란 극한의 환경이 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진동민 대장이 극지연구소 홍보관에 전시된 남극 서식 동물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12월 초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 남극의 여름인 하계기간 세종과학기지에는 각 분야의 연구활동을 위해 남극을 찾은 과학자가 많게는 120명에 달한다. 더욱이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으로 이들은 밤낮 구분 없이 연구에 몰두한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챙겨야 하는 것도 월동대원의 몫이다. 진 대장은 누구보다 그 고충을 잘 알기에 현지에서는 과거 딱딱하게 굴었던 면접관이 아닌 동네 큰형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2001년 15차 월동대원으로 처음 남극에 갔을 당시 그의 대장도 그랬다. 전문가라는 우월감에 자신의 경험과 지식만을 내세우기보다 먼저 남의 말을 듣는 겸손함과 상대의 입장부터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교훈도 그때 익혔다.

그리고 당시에는 국내 쇄빙선인 아라온호가 건조되기 전이어서 중국 바지선을 빌려 보급품을 실어 날라야 했다. 그러다 바지선에 구멍이 나 한쪽으로 기울며 중요한 식품 일부를 바다에 빠뜨려 한동안 통조림만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있다.

진 대장은 대원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고립감을 최소화하는 것도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월동기간 가장 많은 공동과제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다행히 세종기지에는 지난해부터 스마트팜(실내농장)이 설치돼 오이와 애호박, 고추 같은 신선 채소의 재배도 가능해졌다.

대학에서 영어와 해사법학을 전공한 진 대장은 남극대륙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정한 남극조약과 유엔해양법협약 등에도 관심이 많다. 과거 남극이 자원 확보와 개발을 위한 세계열강의 각축장이었다면, 지금의 남극은 지구환경을 위해 인류 공동체가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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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학기지는…
서울서 1만7240㎞… 한국 첫 남극과학기지


남극 반도 남셰틀랜드군도 킹조지섬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사진)는 서울에서 1만7240㎞ 거리에 있다. 미국과 유럽을 경유해 칠레 산티아고까지 항공편으로 24시간을 이동한 뒤, 남극의 관문인 푼타아레나스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4시간을 날아 프레이 공군기지에 도착해 기지 월동대원의 안내를 받아 고무보트를 타고 들어가야 기지에 닿을 수 있다.

세종과학기지는 우리나라가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하면서 1988년 준공한 한국의 첫 남극과학기지다. 전체 5864㎡ 넓이의 부지에 연구동과 생활관동 등 16개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18명의 월동대원이 상주한다.

극지연구소는 매년 2∼3월에 차년도 월동대 선발에 관한 공고를 하고, 지원-서류전형-실기-면접 등의 선발 과정을 거쳐 6∼7월에 확정한다. 세종과학기지가 있는 킹조지아섬에는 칠레와 중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총 8개국의 상주기지가 있다.

한편 이곳 세종과학기지에서는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제작해 아라온호를 통해 들여온 스마트팜(실내농장)이 설치돼, 매주 1∼2㎏의 신선 채소를 대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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