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살아온 40년… 英 베테랑 편집자의 삶

서평의 언어│ 메리케이 윌머스 지음│송섬별 옮김│ 돌베개

영국 서평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이하 LRB)의 공동 창립자이자 독보적인 여성 편집자인 메리케이 윌머스의 에세이와 서평을 모은 산문집이다. LRB는 유럽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서평지로, 영미 문학 독자 사이에서 한결같은 신뢰를 얻고 있다. 윌머스는 반세기 가깝게 다양한 여성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온 베테랑 편집자이고, 동시에 전방위적 저널리스트다. 주로 문학 속 여성 인물, 그리고 책 읽는 여성의 삶에 대해 써왔다. 그의 글이 한국 독자들과 만나는 건 처음인데, 국내서도 사랑받은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제목을 지은 것도 바로 윌머스다.

197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40여 년간 윌머스가 쓴 다양한 글을 망라한 책은 여성이자 한 인간, 서평가, 편집자인 윌머스를 입체적으로 만나게 한다. 엄마가 된 후의 솔직한 감정을 담은 ‘나는 황폐해져 갔다’에서 그는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는 의무”는 논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자연스러움과 자발성을 강요한다고 비판한다. “어째서 ‘자연스러운’ 것이 곧 ‘좋은’ 것으로 여겨진단 말인가?” “내가 우울했던 건 내 안에 선한 모성이 차오르기는커녕, 이 상황 덕분에 내 성격의 악한 차원이 새로이 열리는 것만 같아서였다.”

윌머스는 특히 작품을 작가의 삶과 엮어 색다른 시각으로 분석하는 데 능했다. 예컨대, ‘나르시시즘과 그 불만’에서는 진 리스의 소설 속 여성들이 외모에 집착하면서도, 결국 외모 덕(?)을 보진 못한다면서, 리스의 성장 배경, 즉 여성은 우선 예뻐야 하고, 그 뒤엔 연애 상대가 됐다가, 결혼해야 하는 기대와 마주하는 세계가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끝없는 허기와 사랑받고자 하는 갈등”을 겪는 여성들은 사실은 리스 자신이라고.

한때 버지니아 울프의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 등 국내에 덜 알려진 여성작가들을 소개하고, 결혼한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담백하게 밝히는 등 책은 지적인 충만감과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역시, 하이라이트는 탁월한 서평가인 윌머스가 ‘서평’을 논하는 ‘서평의 언어’다. 서평 도입부의 다양한 사례를 다 공개해 버리고 서평이 자주 하는 실수를 적나라하게 풀어버린 그는 언젠가부터 소설 서평이 신랄하지 못하며, 너무 친절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늙은 소설가에게는 늙었다는 이유로, 젊은 소설가에게는 젊다는 이유로, 영국인 작가에게는 영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러면서 윌머스는 독자들이 기대하는 서평이란, 서평가가 소설가에게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금언을 남긴다. 이것은 결국 ‘좋은 글’이 갖춰야 할 덕목이자, 좋은 글을 보는 눈이 된다. 참신함, 정교함, 그리고 진실함이다. 392쪽, 1만7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