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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22년 07월 08일(金)
고립된 광대, 고향 등진 사람…‘애절한 삶’예술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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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김희영(왼쪽) 포도뮤지엄 디렉터가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모습. 김 디렉터는 “언론 간담회는 처음이지만, 전시를 준비한 기획자로서 아는 만큼 안내를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아래 왼쪽은 정연두 작가의 ‘사진 신부’, 오른쪽은 오노 요코가 난민 보트를 은유한 ‘채색의 바다’. 포도뮤지엄·장재선 선임기자


■ 제주 포도뮤지엄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디아스포라·마이너리티’ 주제
다양한 작품 속에 메시지 담아

우고 론디노네·오노 요코 초청
이배경·강동주·정연두 작품도

다른 생각에 대한 포용과 이해
“감상한 뒤 공감 느낀다면 성공”


“전시 제목은 가벼운 느낌인데 내용은 무시무시합니다.” 이배경 작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제주 포도뮤지엄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본 직후였다. 동명의 산문집 제목을 차용한 이번 전시의 주제는 ‘디아스포라와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다. 이런 테마를 예술 작품으로 녹여내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의 파문을 일으키겠다는 시도는 그 자체가 무시무시한 야심이다.

제주 현지에서 전시를 둘러보고 난 소감은 “주변에 관람을 권하고 싶다”는 것이다. 예술 작품들의 미학과 전시 기획자의 메시지가 어우러지며 꽤 긴 여운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테마 공간의 울림 = 이번 전시는 작년 4월 제주 서귀포 안덕면에 개관한 포도뮤지엄의 두 번째 기획전이다. SK㈜ 자회사인 휘찬이 운영하는 이 뮤지엄은 개관전 ‘너와 내가 만든 세상’부터 예술을 통해 사회적 인식 개선을 꾀하겠다는 의도를 뚜렷이 표방했다. 초청작가들의 작품들 사이사이에 ‘테마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관 자체 창작품을 선보이며 전시 주제를 강조했다. 올해도 같은 형식이다. 이와 관련, 김희영 포도뮤지엄 디렉터는 “사람들이 전시를 보고 인식의 변화나 어떤 공감을 한다면 그 사회적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익사업을 하는 티앤씨재단(T&C Foundation)의 대표이기도 한 김 디렉터는 “이번 전시가 재단의 브랜드인 ‘아포브(APoV·Another Point of View)’ 팀에서 준비하고 있는 콘퍼런스와도 관련이 있다”고 소개했다. ‘다른 생각’에 대한 포용과 이해를 지향하는 아포브 프로젝트의 하나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의도가 뚜렷하면 메시지 과잉으로 작품의 미학이 묻히는 경우가 흔하다. 이번 전시가 그것을 피한 것은 작품과 테마공간을 잇는 동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실일 것이다. 김 디렉터는 “동선을 정말 많이 점검하고 계속 바꿨다”며 “팀원들이 지겨워했을 것 같다”며 웃었다.

테마 공간에 설치한 영상 작품 ‘이동하는 사람들’은 광야를 걸어가는 것처럼 막막한 느낌을 준다. 공항 안내판을 연상시키는 설치 작품 ‘디파처보드’는 세계 각지에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시각화했다. 60개 문장으로 교차하는 증언마다 곡진한 사연을 담고 있어 발길을 사로잡는다.

‘주소 터널’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본국 주소를 표기한 글씨가 투명 LED 패널과 거울을 활용한 설치 작품을 통해 명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 디렉터는 “주소를 650여 개 받았는데, 그것들이 들숨 날숨을 하는 생명처럼 숨 쉬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년 전시서 설치작품을 보여줬던 최수진 작가는 올해엔 전시와 동명의 애니메이션에서 목탄 드로잉으로 참여했다. 뮤지션 나이트오프가 뮤지엄과 함께 작업했다는 노래는 서정적이면서도 발장단을 치게 하는 유쾌함이 있다.

◇초대작들의 ‘여운’= 올해 전시 초대작가는 이배경, 강동주, 정연두, 리나 칼라트,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 오노 요코, 우고 론디노네 등이다. 이들은 미디어아트, 설치, 영상, 회화, 조각 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30대 작가 강동주는 제주의 항구와 포구 44곳을 방문해 관찰한 땅의 모습을 먹지 위에 눌러 기록한 작품을 내놨다. 풍경의 흐름을 잡아내는 작업을 통해 시적 에스프리를 전하고 장소의 시간성을 사유하도록 이끈다.

정연두 성균관대 교수의 ‘사진 신부’는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20세기 초 하와이의 조선 노동자들과 결혼하기 위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던 어린 여성들의 삶을 주제로 삼았다. 낙원을 찾아 떠났지만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설치작품과 영상, 조각으로 담아냈다. 사탕수수밭의 냄새를 재현하기 위해 뮤지엄 측과 향수업체가 협업해 만든 향이 작품의 메시지를 돕는다. 김 디렉터는 이에 대해 “지긋지긋한 낙원의 냄새”라고 했다.

필리핀 출신으로 호주로 이주해 활동하는 부부 작가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주를 방문해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50㎝짜리 택배 상자 140개를 쌓아 올려 만든 대형설치 작품 ‘주소’엔 애옥살림 물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모든 삶을 구겨 넣어 이민을 가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삶이 오롯이 들어 있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아내이자 전위예술가인 오노 요코의 ‘채색의 바다’는 난민 보트를 은유한다. 보트가 새로운 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관객이 희망의 메시지를 써주면 작품이 완성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89세인 요코가 포도뮤지엄 공간에 맞게 작품을 설치한 것이 이채롭다. 김 디렉터는 “작품이 어그러질 뻔한 적도 있었으나, 간곡한 메일을 써서 성사시켰다”고 했다.

당대에 가장 주목받는 현대미술 작가 중 한 사람인 우고 론디노네는 광대들이 등장하는 설치 작품 ‘고독한 단어들’을 선보인다. 당초 40명의 광대를 만들었으나 뮤지엄 공간에 맞게 27명만 배치했다. 인간이 홀로 24시간 고립됐을 때 보이는 모습들이라고 하는데,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잔한 느낌을 준다. 각각의 광대들은 제목처럼 고독해 보이지만, 한 공간에서 독특한 풍경을 함께 이뤄내고 있는 것이 미묘한 울림을 선사한다. 최태원 SK 회장이 최근 전시장을 방문해 광대의 널브러진 모습을 흉내 낸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는데, 실제로 광대들을 보면 따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번 전시는 내년 7월 3일까지 1년간 이어진다.

제주 = 장재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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