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디지털 신분증’ 가로막는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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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 가천대 법과대학 교수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나는 동안 다양한 정책 과제와 비전이 제시돼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경제정책 방향에서 규제 개혁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시장 중심의 규제 혁파 의지를 내비친 점은 박수 칠 만하다. 민간 주도의 규제 완화는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고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 토대가 될 수 있으며, 혁신적인 서비스를 누리려는 국민의 다양한 기대에도 부응할 수 있게 한다. 적극적인 규제 혁신을 통해 편리한 서비스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게 하여 경제 체질도 개선하고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일이야말로 정부의 최우선 과제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규제 샌드박스 수요자 체감도 조사연구’에 따르면, 샌드박스 승인을 받았던 기업 중 응답한 330개 기업의 60%가 ‘승인까지 너무 많은 기간이 걸려 불편했다’고 응답했고, 64%가 ‘규제법령 개선 지연에 대한 애로사항이 있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 나오고, 국민이 체감하는 효익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지속적인 지원과 함께 정부의 모든 부처가 규제 개선에 대한 합의를 이루고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래 국가 경쟁력 제고와 실질적인 국민 편익의 증진을 위해서는 4차 산업의 근간이 되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과 접목해 국민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규제 혁신 과제를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원격의료와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팜이나 자율주행차의 영상 데이터를 활용해 온·오프라인 산업의 진입 관문으로서 신분증의 모바일화 등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이들 산업 발전을 더디게 만드는 혁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금융혁신은 우리 경제활동의 핵심 요소인 지급결제 환경을 유체적인 금전으로부터 무체적인 디지털·모바일 결제로 빠르게 전환되도록 해 지갑 없는(Walletless) 사회가 본격화하는 기틀이 됐다. 반면, 지급결제만큼이나 경제활동에서 중요한 기반이 되는 신분증은 디지털·모바일 전환이 더디다. 유럽연합(EU)이 최근 eIDAS규정(Regulation)의 개정을 통한 디지털 신원 확인 체계 구축을 가속화함으로써 유럽 전역의 디지털 단일 시장을 공고히 하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분증이 디지털·모바일화하면 실물 신분증이 도난·분실될 경우 생기는 개인정보 피해를 예방할 수 있으며, 복제·불법사용·위조가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개인정보 노출을 최소화함으로써 개인정보권과 보안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디지털·모바일화된 신분증은 온·오프라인에서 금융 서비스 이용 때 간편한 신원 확인을 가능하게 하고, 무인 매장에서의 주류 구매나 온라인상의 연령별 콘텐츠 구매, 권한별 출입 통제 등에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현재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탄생한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 서비스가 민간 주도로 운영되고 있지만, 모든 사회·경제 영역으로의 확대까지는 갈 길이 멀다. 새 정부의 최우선 규제 혁파 과제로 국민이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민간 주도의 신원확인·신분증 서비스가 다양하게 개발되고 사회·경제 전 영역에서 안전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규제를 혁신해 국민 편익 증진과 다양한 산업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규제 샌드박스는 일시적이지만, 규제 개혁의 필요성은 일시적일 수 없다. 규제 혁신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