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프로필 사진 고민

이근미 작가

10년前 찍은 ‘프사’지금도 사용
요청 올 때마다 해묵은 것 보내

아버지 영정 사진 늙어 보이지만
난 연세 든 모습이 훨씬 멋있어

나의 이율배반에 여러 생각이…
이젠 ‘올해 사진’ 당당하게 첨부

객원기자로 일했던 잡지에서 특집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20명의 필자에게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자 패션디자이너가 30년 전의 사진을 보내왔다. 검색을 해 보니 그분은 오로지 그 사진만 사용하고 있었다. 방송에서 연로한 모습을 봤는데 사진은 신예 디자이너 때의 모습이었다. 싱그러운 시절을 박제하여 마르고 닳도록 사용하는 그분에 대해 “와, 이건 독자에 대한 기만인데”라고 혼자 성토한 적이 있다.

대학 다니던 때 일화 한 토막을 소환해 본다. 사진학과 친구들이 캐논 카메라 메고 다니는데도 기죽지 않고 내 야시카 카메라로 동기들 사진을 찍어주곤 했다. 그날도 사진 찍으며 놀고 있는데, 지나가던 교수님이 “나도 한 장 찍어라. 나는 기고할 때마다 반드시 그해 사진을 보내는데 올해 찍은 사진이 없네”라고 하셨다. “왜 그해 찍은 사진을 보내시냐”고 여쭙자 “당연한 거 아냐?”라고 반문하셨다.

나도 교수님을 본받아 기고할 때마다 그해 찍은 사진을 첨부해 왔다. 그런데 2012년, 비싼 프로필 사진을 찍으면서부터 패션디자이너처럼 한 사진만 사용하게 되었다. 사진작가의 손을 빌린 것부터가 경로 이탈에 달콤한 유혹이었던 셈이다. 무료 강의를 마치고 받은 촬영권을 썩히고 있다가 프로필 사진이 필요하다는 지인한테 묻어가서 촬영한 결과물이었다.

사진이 근사하게 나오면서 근심이 시작되었다. 사진작가의 요청으로 안경을 끼지 않고 찍은 데다 보정을 하는 바람에 수년 전 히트곡 ‘썸’의 가사처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사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차선책으로 사진작가에게 보정 전 원본을 요청하자 “피차 상처받습니다”라고 말해 둘이 한참 웃었다.

사진이 실제보다 잘 나와도 문제가 생긴다는 걸 여러 차례 경험했다. 초면인 두 작가와 출판사 휴게실에서 만나기로 했을 때의 일이다. 먼저 온 분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마지막 주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자 먼저 온 분이 “저기 이근미 선생 오시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이근미’라고 했더니, 그 작가 분은 “무슨 소리예요? 내가 사진 검색하고 왔는데”라고 했다. 셋이 앉아서 내 사진 얘기를 하며 박장대소를 하다 금세 친해졌다.

강의하러 가서 파워포인트(PPT)로 내 사진을 띄운 뒤 “실물과 차이가 좀, 아니 많이 나죠?”라고 하면 왁자한 웃음이 터진다. 내 사진으로 나를 디스하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면서 강의에 도움 되는 경우가 많았다.

10년 전에 찍은 사진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데, 프로필 사진을 보낼 때마다 패션디자이너가 자꾸 떠올랐다. 아울러, 그분이 30년 전 사진을 보내온 심경도 뒤늦게 이해가 갔다. 그분의 사진도 사진작가가 찍은 게 분명해 보였는데, 이후 다시 사진 찍을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찍었는데 그때만큼 마음에 든 사진이 없었을 확률도 높아 보인다. 최근 사진을 첨부하라는 덧붙임 말이 없었으니 자신의 ‘최애’ 사진을 보낸 게 문제 될 일도 아니라는 너그러움이 발동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 후 사진작가에게 프로필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 사진 요청이 올 때마다 해묵은 사진을 보냈다. 기왕이면 잘 나온 사진을 내보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지라 ‘패션디자이너 샘은 잘못이 없었던 거야’라며 웃곤 했다. 하지만 교수님이 강조하신 ‘올해 찍은 사진’이 떠올라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글에 실을 사진을 첨부해 달라는 신문사 요청에 얼마 전에 찍은 여권 사진이 갑자기 생각났다. 정면을 바라보는 경직된 모습이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부터 사용하던 프로필 사진과 함께 보냈더니 담당자는 여권 사진을 골랐다. 프로필 사진은 오래 전에 기고할 때 사용한 적이 있어 여권 사진을 선택한 게 아닌가 싶다. 어쩐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미리 찍어 놓은 영정 사진이 없어 가장 선명하게 나온 사진을 확대해서 사용했다. 86세에 돌아가셨으니 생전에 준비를 해 두었을 만도 하건만, 우리 아버지는 오래오래 사실 거라 생각하다 무방비 상태에서 이별을 맞은 것이다.

6·25 참전용사인 아버지를 경북 영천에 있는 국립영천호국원에 모셨다. 영정사진을 축소하여 봉안함에 붙였는데 호국원에 갈 때마다 막냇동생이 아버지 사진을 다른 걸로 바꾸자고 재촉했다. 장례 기간에 큰 영정사진을 볼 때는 못 느꼈는데 아버지가 틀니를 빼고 계신 게 눈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틀니를 안 껴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인다며 열심히 사진을 찾던 동생이 아버지의 70대 초반 모습을 골라냈다.

충령당 관리소에서 사진을 바꿔 부착해 주겠다는 허락까지 받았지만 내가 반대했다. 일단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다르고, 또 하나는 너무 젊어 보여서 싫었다. 호국원에 가면 다른 분들 사진도 보게 되는데 거기서는 더 나이 든 사진이 훨씬 멋있어 보인다. 사진을 보면서 ‘저분은 일찍 가셔서 가족들이 마음 아팠겠다’ ‘저분은 우리 아버지보다 더 나이 드셔서 가신 거 같은데, 부럽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아버지 사진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나는 더 젊어 보이고 싶으면서 더 늙어 보이는 아버지 사진이 마음에 드는 이율배반에 여러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교수님처럼 ‘올해 찍은 사진’을 당당히 첨부하는 일부터 실천하며 더 깊은 상념에 빠져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