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의 시론>기업인을 범죄자로 모는 과잉범죄化

  • 문화일보
  • 입력 2022-07-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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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논설위원

행정 규제 위반을 형사 범죄化
2030년 성인 30% 전과자될 판
경제법 형벌조항 무려 6568개

‘규제범죄’ 기업인 전과자 양산
징역·벌금 등 2중 처벌 수두룩
행정제재 전환 반드시 실천을


현장 기자로 뛰던 때 일이다. 한 섬유업체 최고경영자(CEO)가 인터뷰 중에 “내가 지금 전과 3범, 4범은 될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난데없는 ‘고백’에 어리둥절했지만, 이어진 설명에 바로 수긍이 갔다. 노동·환경 등의 법과 시행령 규제가 너무 촘촘할 뿐만 아니라, 자잘한 실무 착오에도 CEO를 처벌하기 일쑤라는 한탄이었다.

사실 경제 분야 규제 내용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봐도 갈수록 처벌 수위를 높이다 못해 명백한 실무자의 과실에도 CEO 책임을 묻는 게 허다하다. 그것도 징역형 같은 형사처벌로 강화되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얼마 전 놀라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6개 경제 부처의 경제 분야 법률 301개 가운데 징역·벌금·자격정지 등 형벌 항목이 6568개나 됐다. CEO에 대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한 최근의 중대재해처벌법부터 공정거래법, 근로기준법, 외부감사법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실제 지난해엔 근로자 집단 간염 발생으로 인한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대표이사가 처음으로 기소됐다. 기업 대표들이 이 법에 공포감을 갖는 게 무리가 아니다.

특히, 사망이나 안전과 전혀 관련 없는 행정 규제 위반도 형사처벌을 받는다. 예컨대, 공정위의 행정 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잘못 작성했을 경우엔 최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형법상 직계존속에 대한 상해치사 형량과 같다. 가혹하다. 더구나 징역·벌금·과징금·손해배상·몰수·자격정지 등 이중·삼중 처벌 조항도 수두룩하다. 2중 처벌 이상의 항목이 전체의 36%(2376개)다. 또, 92%는 법 위반자와 법인을 동시에 처벌한다.

과태료나 과징금 부과로도 충분한 행정규제 위반을 범죄화하는 ‘규제의 범죄화’ 폐해는 심각하다. 당장 기업인을 범죄자로 몰아 전과자로 만든다. 과잉 규제를 넘어 과잉범죄화(Overcriminalization)다.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범죄자가 급증한다는 경고는 진작부터 제기돼 왔다. 김일중 교수는 지난해 6월 한 포럼에서 2000년 이후 규제범죄 건수가 급증해 형법상의 일반범죄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시장에서 자율적 해결이 가능하고, 민사적·행정적 제재 수단이 많은데도 형사처벌하는 과잉범죄화가 범죄자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행정규제 위반자 증가로 이미 2016년 15세 이상 인구 중 26%가 전과자였는데, 2030년엔 30%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도 제시했다. 그는 행정규제 위반에 대해 형벌 조항을 둔 법률이 2015년 기준 700여 개이고, 벌칙 조항은 5000개를 넘는다며 1개 벌칙 조항과 관련된 규제위반 조항이 2개씩만 있어도 규제범죄는 1만 개,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이 5개씩이면 규제범죄가 총 5만 개나 되는 셈이라고 심각성을 강조했다.

돌아보면 박근혜 정부 때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경제민주화 광풍이 이런 과잉범죄화를 더욱 확산시켰다. 징벌적 손해보상제가 도입되는 등 기업이 번 이익을 부정하고, 신규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억지 상생’의 폐해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선 경제 활동의 기초인 원청·하청 계약을 예속 관계처럼 죄악시하고, 민사상 통상적인 갑을관계를 마치 착취 관계인 양 호도했다. 그 결과 기업과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왜곡된 시선이 만연해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경제단체들의 건의를 수용해 기업인 형벌 조항을 과태료 같은 행정제재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법무부·환경부·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금융위 등 관계부처 차관들과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된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 CEO들은 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조마조마하게 걷는 셈이라는 말이 공연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기업인들을 형벌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경제 정상화에 필수다. 기업인 기를 살려 대담한 결단과 실행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게 출발점이다. 그러나 행정 제재 전환 역시 국회를 넘어야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에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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