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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Global Window 게재 일자 : 2022년 08월 02일(火)
英을 이끌고, 英을 망친다…권력의 산실 ‘옥스퍼드 P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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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Window - 엘리트 정치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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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 후임 차기 총리 맞대결
수낙- 트러스 둘 다 PPE 출신
총리 3명·의원 100여명 배출

재학생 70%가 특권계층 출신
사회 각분야 요직 독점 부작용
일각 “佛행정학교 폐교 본받자”


“2015년 4월 13일은 영국 정치의 민낯을 보여준 날이다. 옥스퍼드대 PPE(철학·정치학·경제학) 졸업생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가 총선 선언문을 발표했고, 역시 옥스퍼드대 PPE 출신인 BBC 정치 편집자 닉 로빈슨과 경제 편집자 로버트 페스턴, 영국 재정연구소장 폴 존슨이 밀리밴드의 선언문을 분석했다. 이어 옥스퍼드대 PPE가 배출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를 비판했고, 노동당 고위 인사인 에드 볼스는 밀리밴드 당수를 옹호했는데 그 또한 옥스퍼드대 PPE 동문이다.”

2017년 2월 영국 가디언이 옥스퍼드대 PPE를 심층 분석해 보도한 기사의 한 부분이다. 옥스퍼드대 PPE 출신 인사들의 위세를 보여주는 구절로 지금까지도 영국 정치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캐머런(75대) 전 총리를 비롯해 에드워드 히스(68대), 해럴드 윌슨(69대) 전 총리 등 3명의 총리를 배출했으며, 100명이 넘는 하원의원이 옥스퍼드대 PPE를 거쳐 갔다. PPE 과정은 런던정치경제대, 킹스칼리지 런던대, 더럼대 등 영국 상위권 대학에도 개설돼 있지만, 정계뿐 아니라 재계·법조계·언론계 최고위직 상당수는 옥스퍼드대 PPE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영국엔 “옥스퍼드대 PPE 졸업생만이 역사를 좌지우지할 힘을 갖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각종 거짓말 논란으로 사임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후임을 선출하는 보수당 대표 경선도 결국 옥스퍼드대 PPE 졸업생 맞대결로 압축됐다. 최종 2인 후보로 결정된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2001년 졸업)과 리즈 트러스 외교장관(1996년 졸업)은 옥스퍼드대 PPE 동문이다. 최종 결과는 오는 9월 5일 보수당 전 당원 투표로 결정되는데, 누가 승리하더라도 역대 네 번째 옥스퍼드대 PPE 출신 총리가 된다. 하지만 옥스퍼드대 PPE 출신이 사회 각 분야 요직을 독점한 탓에 엘리트주의가 공고화되고 다양성을 해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기득권층의 전유물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가 폐교한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00년 전통의 옥스퍼드대 PPE…존슨도 넘지 못한 높은 벽 = PPE는 1920년대 옥스퍼드대가 철학(Philosophy)과 정치학(Politics), 경제학(Economics)을 융합해 연구하자는 취지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전공이다. 옥스퍼드대가 가장 먼저 도입했고, 효과를 체감한 다른 대학들이 따라 만들었다.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A 레벨’ 시험에서 최고점인 ‘트리플A(AAA)’를 받아야 하며 에세이와 자기소개, 추천서 등도 꼼꼼하게 따진다. 옥스퍼드대를 비롯한 영국 대학 입시에선 공부하고자 하는 전공과 코스를 미리 정해야 한다. 특히 한국과 달리 칼리지(college)로 입학하게 되는데, 특정 칼리지를 선택할 수 있으며 무작위로 배치받기도 한다.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는 동시에 지원할 수 없다.

PPE는 영국 최고 명문인 옥스퍼드대에서도 들어가기 힘든 학과로 꼽히며, 존슨 총리도 성적이 모자라 PPE 대신 고전문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평소 PPE에 입학하지 못한 자격지심이 크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존슨 총리는 2019년 7월 옥스퍼드대 PPE를 졸업한 제러미 헌트 전 외교장관을 제치고 보수당 대표 자리에 오르며 나름의 ‘복수’에 성공했다.

존슨 총리도 넘지 못한 옥스퍼드대 PPE의 벽을 뚫은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3명의 전직 총리와 100명이 넘는 하원의원을 배출했다. 영국을 넘어 전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들도 옥스퍼드대 PPE를 졸업했다. 정계에선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과 파키스탄 최초 여성 총리인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와 임란 칸 전 총리, 밥 호크·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선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한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장관과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민주당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오른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도 동문이다. 경제계에선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가, 언론계에선 ‘언론 재벌’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이 유명하다. 한국에선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옥스퍼드대 PPE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기득권 유지 수단’ 비판받는 PPE “국가 운영 유연성에 큰 문제” = 수낙 전 장관과 트러스 장관이 보수당 대표 결선투표를 뚫고 최종 후보에 오르자 외신에선 옥스퍼드대 PPE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독점하는 영국 사회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30년 넘게 금융 저널리스트로 활약한 존 오더스는 지난달 21일 블룸버그에 기고한 글에서 “영국은 여전히 옥스퍼드 출신 리더 너머를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1차 경선을 통과한 6명 후보 모두 40대로 세대교체에 성공했고 이 중 3명이 흑인과 아시아계 등 소수인종이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기득권 타파까지 이어지지 못한 배경엔 결국 옥스퍼드대 PPE가 버티고 있다는 취지였다. 그는 “성별이나 민족과 관계없이 총리 지망생은 여전히 특정 교육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며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유연성이 부족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특히 인도계인 수낙 전 장관은 최초의 유색인종 총리라는 타이틀을 눈앞에 뒀지만,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일명 ‘금수저’라는 비판이 따라다닌다. 그는 옥스퍼드대 PPE 입학 전 연간 학비만 3만6600파운드(약 5722만 원)에 달하는 윈체스터스쿨을 다녔다. 1392년 설립돼 630년 역사를 자랑하는 기숙학교로 이튼스쿨, 해로스쿨 등과 함께 3대 명문으로 꼽힌다. 이들 학교는 남성만 입학할 수 있는 금녀(禁女)의 공간으로 여겨졌는데, 윈체스터스쿨은 지난해부터 여성의 입학을 허용했다.

◇ENA 폐지한 프랑스…영국에서도 “본받아야” 목소리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프랑스 정·재계 최고위직을 독점해온 ‘권력의 산실’ ENA를 폐교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ENA는 마크롱 대통령을 포함해 4명의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1945년 설립된 소수정예 공무원 양성 특수 대학으로 매년 80∼9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입학과 동시에 국가공무원 신분을 부여받는 특권을 누리며, 졸업과 함께 간부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배경과 상관없이 전문 공무원을 양성하겠다는 설립 의도가 점차 퇴색됐고, 특권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불평등 관측소는 “부모가 고소득 전문직인 학생은 빈곤층 학생과 비교하면 ENA 입학 가능성이 12배 높고, 이른바 특권층 출신 재학생 비중은 70%에 달한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ENA를 공공서비스연구소(ISP)라는 이름의 새로운 기관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히면서 “다양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영국에서도 프랑스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FT는 “공공 행정을 현대화해야 하는 국가는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도 마찬가지”라며 “코로나19에 대한 미숙한 대처는 영국 공무원 사회의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고, 영국이 엘리트 중심의 정치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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