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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2년 08월 05일(金)
깨진 접시·메모지도 샹들리에로… 조명, 예술을 밝게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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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식기 조각들로 만들어진 조명 디자인, 포르카 미세리아(Porca Miseria).


■ 최경원의 세상을 바꾼 디자인 - (19)잉고 마우러

부서진 식기·식도구로 만든 ‘포르카 미세리아’ 조명, 주변 공간까지 ‘초현실적’으로 변화
알전구에 새의 날개 붙인 ‘루첼리노’도 파격 매력… 상업·기능주의 디자인의 틀 허물어


디자인이 무엇인지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디자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디자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부딪힘 없이 합의하는 부분은 디자인은 쓰임새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종 작가의 자유로운 개성과 주관이 중심인 순수미술과 대비되면서, 디자인은 그런 예술과는 다르다는 것으로 귀결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은 사회를 위해 의미있는 것을 창조하는 일 혹은 사람들의 편의에 헌신하는 일인 것처럼 과대 포장되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 따라 실제로 디자인은 상업적 가치나 생산활동 안으로 강력히 포섭되고 그 외의 가치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돼왔다. 그런데 독일의 조명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는 디자인에 대한 이런 꼰대적 해석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렸고, 디자인이 얼마나 위대한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줬다.

◇부서진 식기 조각들로 만들어진 조명 디자인, 포르카 미세리아(Porca Miseria)

부서진 식기 조각들과 나이프, 포크와 같은 식도구들이 멋진 조명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포르카 미세리아 조명은 일단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놀라움에 빠지게 한다. 웬만한 설치 미술품을 능가하는 모양은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대량 생산된 것만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준다. 그렇지만 누가 이것을 디자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조명으로서 해야 할 일에도 모자람이 없으므로 이것을 디자인 바깥으로 몰아낼 수 없다. 오히려 이 조명은 일반 조명이 하지 못하는 기능까지 더하고 있다. 이 조명의 파격적인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줌과 동시에 높은 파고의 감동에 휩싸이게 한다. 미학에서 말하는 예술적 감흥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샹들리에는 분위기 있는 빛으로 주위를 밝혀주면서도 주변 공간을 대단히 초현실적으로 만든다. 엄밀히 말하면 이 조명을 구성하는 깨진 접시 조각들은 폐기물로, 당장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할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용도가 완전히 다른 물건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속성이 다른 존재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허공에서 폭발하는 듯한 접시 조각들이 최신의 조명이 되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이 조명등은 주변의 상식적인 물건들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초현실적으로 두드러져 보인다.

이 위태롭고 강렬해 보이는 조명에서 느껴지는 고전적인 분위기도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비록 깨지기는 했지만 세라믹 도자기에 스며들어 있는 귀족 문화의 역사성과 클래식한 모양은 위태로움과 강렬함을 가볍게 우아함으로 바꿔 버린다. 그러니 누가 이 조명을 예술품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잉고 마우러의 이런 디자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과 디자인의 구분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렸고 건조한 기능주의 위에 감동을 수혈해왔다.

◇메모지와 문방구용 집게만으로 탁월한 개념을 표현하고 있는 Zettel’z 6

잉고 마우러의 조명 Zettel’z 6.

Zettel’z 6 조명을 이루고 있는 재료라고는 철사와 그 끝에 끼워져 있는 문방구용 집게, 그리고 그 끝에 달린 조그마한 메모지가 전부다. 예쁠 것도, 귀할 것도 없는 재료들로 만들어졌고 급하게 갈겨쓴 듯한 메모지들이 어지럽게 붙어있을 뿐인데도 이렇게 멋진 샹들리에가 만들어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을 때는 휴지통 직행 1순위인, 그저 보잘것없는 일상 소모품인 메모지가 집게에 끼워지는 순간부터 귀하디귀한 조명등의 몸체가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디자이너의 멋진 스케치나 명필로 쓴 아름다운 글씨가 아니라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종이들이 끼워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조명을 더 고귀하게 만드는 것 같다. 디자이너는 단지 철사에 집게만 달아 놓았을 뿐이고 쓰는 사람들이 메모지들을 모아,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는 것처럼 집게를 채워 나가면 그 어떤 장식보다도 더 화려해 보이는 조명이 완성된다.

디자인에 녹아든 개념과 실험성은 앞서 살펴본 조명등에 뒤질 게 없고, 웬만한 순수미술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명은 관념적으로 보이지 않고, 순수예술품이 흔히 가질 수 있는 심미적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아무래도 우리의 그저 그런 생활을 이 조명이 적극적으로 끌어안기 때문일 것이다.

‘조명을 위해선 어둠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처럼, 어두운 가운데에서 흘러나오는 빛들이 자아내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감동적이다. 깊은 통찰에서 나오는 안목이랄까. 디자인은 무조건 기능적이고 상업적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이 팽배해 있는 우리 사회에 큰 교훈을 제시한다. 디자인의 경쟁력이 마케팅이 아니라 통찰력, 세계를 보는 깊은 눈에서 오는 감동이란 것을 입증하고 있다.

◇전구에 날개를 달아 자신의 이름을 날리게 되었던 문제의 조명, 루첼리노(Luchellino)

잉고 마우러의 조명 루첼리노.

백열전구가 날아다닌다. 그것도 날개를 달고…. 말은 쉽지만, 이것저것 꿰맞춰 놓는다고 해서 모두 예술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별것 아닌 것들을 꿰맞춰 놓은 것 같은데도 예술작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잉고 마우러의 조명 루첼리노가 그렇다.

알전구에 소켓.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가장 최소의 조건만 갖춘 조명이다. 못살던 시절 이것에 의지해서 어슴푸레한 저녁을 보냈던 추억의 물건이기도 하다. 계급으로 보자면 조명 중에서도 가장 하층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에 새의 날개를 갖다 붙이면서 모든 선입견과 계급적 문제가 뒤집힌다.

조형적으로나 속성적으로도 알전구와 날개는 어떤 연관성이 없다. 그럴 경우 어색해 보이거나 과도한 대비감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만 자극하고 마는 어설픈 콜라주에서 멈춰 버리기 쉽다. 인사동을 배회하는 어설픈 예술작품들이 대체로 그러다가 생을 마친다.

하지만 알전구와 날개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은 대단한 은유와 상징을 양산하며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을 초현실적으로 승화시킨다. 천장과 전깃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비행을 하는 전구의 초현실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겠지만, 그것을 보며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이 그렇게 자유로이 비행하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낀다.

꽉 짜인 사회에서 백열전구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그 덕분에 이 조명은 설치미술의 어설픈 흉내라는 혐의(?)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우리들의 머리 위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쏙 안긴다.

겉으로는 예술작품인 것처럼 자유로워 보이면서, 조명이란 기능 수행에서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어엿한 하나의 디자인이다. 이런 디자인을 놓고 예술이냐 디자인이냐 구별한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 예술이면서도 얼마든지 디자인일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감동을 가져다주고 세상을 보는 눈을 다르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breaking buddha

이름부터가 파격적이고, 의미심장한 이 조명은 사실 디자인인지 작품인지 구분하기 훨씬 더 어려운 디자인이다. 중국의 부처 얼굴인 듯한 모양들을 붙여 놓아서 약간 징그러워 보일 수도 있는데, 이 덕분에 조명 전체가 매우 강렬해 보인다.

독일의 디자이너가 뜬금없이 중국의 고전적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 특이한데, 디자인이 단지 기능성이나 상품성이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가치를 환기시킨다는 것은 디자인의 범위와 수준을 상당히 바꿔 놓는 것이다. 조명 하나를 가지고 대단한 가치의 세계를 누비고 있는 디자이너의 세계관과 지적인 솜씨가 감동적이다.

이런 파격적이고 멋진 조명들을 디자인한 잉고 마우러는 원래 독일과 스위스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약하다가 조명 디자이너로 급선회한 특이한 디자이너였다. 그런데 그의 조명 디자인들을 보면 그래픽이나 조명과 같은 특정한 디자인 영역을 넘어 활동한 디자이너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생각해 보면 디자이너라는 제약을 넘어 자신의 인문적 교양과 철학을 디자인으로 표현했던 철학자였던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의 세계를 굳건히 만들고, 그것을 대중에게 알리고 대단한 호응을 얻는 사람들을 거장이라고 부른다. 잉고 마우러는 디자인이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열띤 논쟁을 매우 하찮은 것으로 평가절하시키며, 디자인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에게 어떤 깨우침을 줄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줬던 진정한 거장인 것 같다.

디자인은 무조건 기능적이고 상업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하던 시대를 용기 있게 깨면서 새로운 디자인의 세계를 열어줬던 진정한 거장 잉고 마우러. 아쉽게도 그는 지금 우리와 세상을 함께하고 있진 않지만, 그가 열어 놓은 세계로 인해 많은 사람이 디자인을 즐겁고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 잉고 마우러는

- 1932년 : 독일 콘스탄스 호수의 라이헤나우섬에서 출생
- 조판공으로 견습 받은 후 뮌헨에서 그래픽 디자인 공부
- 1960년 : 미국으로 이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리랜서 그래픽디자이너로 활약
- 1963년 : 독일로 귀환, 조명회사 디자인 엠 설립, 나중에 Ingo Maurer GmbH가 됨
- 1989년 : 날개 달린 전구 루첼리노(Lucellino) 디자인
- 1994년 : 포르카 미세리아(Porca Miseria) 디자인
- 1998년 : 뮌헨 베스트프라이드호프(Westfriedhof) 지하철역 조명 디자인
- 1999년 :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패션쇼를 위한 조명 디자인
- 2006년 : 런던 왕립예술대학 명예박사
- 2019년 10월 20일 : 뮌헨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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