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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22년 08월 05일(金)
떠도는 듯 찬란했던 청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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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우 영화배우

청춘 땐 ‘귀한 시절’ 못 느껴
가물가물해질 때 가치 깨달아

‘절대 결핍’속에서 뒹굴면서
책 읽고 음악 듣고 열변 토해

청춘은 빛을 낼 준비하는 때
아쉬워 보여도 청춘 격려하자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 아깝다는 말이 있다. 청춘일 때는 그 시절이 얼마나 빛나고 멋지고 귀한 시간인 줄 모른다는 말일 텐데, 인생이라는 게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 많고 살아본 후에야 알게 되는 게 많듯 청춘도 그 시절이 한참 지나서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질 때쯤에야 ‘귀한 시절이었구나!’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피천득 선생은 ‘오월은 금방 찬물에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 했는데 청신한 얼굴 같은 오월이 바로 청춘 시절이 아닐까. 또, 학창시절에 배웠던 청춘예찬의 첫 문장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는 글의 의미와 느낌을 청춘들은 알기가 어렵다. 만약 이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는 이미 청춘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나 또한 이 글을 배우던 학창시절에 청춘이라는 단어에 설레진 않았으니까. 느낌을 알든 모르든 청춘 시절은 기회의 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기회라는 것이 내가 계획한 대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오늘도 청춘들은 아파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일찌감치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일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어떤 영향이 있을까. 단 한 번의 인생인 우리는 장래의 계획을 세워서 하나하나 성취해 가며 사는 것과 별 계획 없이 인생의 길이 펼쳐지는 대로 사는 것 가운데 한 가지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청춘 시절에는 ‘미래에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하나’라고 스스로 수없이 물었고, 그보다 훨씬 전 어린 날엔 “장래 희망이 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예배당에 열심히 다니던 나의 어머니 김 권사님이 늘 말씀하셔서 ‘부담 백배’였던 그 성직자 외에는 직업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던 터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방과 후 축구를 할 만하면 큰 빗자루 휘두르고 우리를 내쫓았던 아저씨를 보며 ‘초등학교 수위가 되어서 캄캄해질 때까지 아이들을 실컷 놀게 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게 장래 희망의 전부였던 것 같다.(모든 어린이가 잘 뛰어놀기를 바랐던 열두 살 무렵의 나는 홍익인간으로서 부족함 없이 기특하지 아니한가.)

빛이 좀 나야 하는 나의 청춘 시절, 그러니까 대학 졸업을 앞둔 때부터 KBS 일일드라마 ‘보통사람들’로 데뷔하기 전까지의 20대 전반 몇 년의 세월은 전혀 빛이 나지 않았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 아침부터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할 일도, 갈 곳도 떠오르지 않았고, 남들 다 가는 휴가도 생각조차 할 형편이 못 되었다. 어디로든 움직여 보자니 용돈이 변변치 않아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민폐’라는 생각에 그저 집에서 최소한의 옷만 걸치고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게 일상이었다.

어느 날 오후 식구들의 ‘혹시 좋은 일이?’ 하는 기대의 눈빛을 받으며 오랜만에 시내로 외출한다. 하릴없는 청춘 댓 명이 아지트인 다방에서 만나 ‘레지 언니들’의 눈치를 봐 가며 커피는 상징적으로 두어 잔 시키고 나머지는 엽차에 설탕을 타서 휘휘 저어 마시며 낄낄거리다가 만장일치로 선정한 어느 선배를 찾아간다. 우리보다 서너 살 정도 위이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을 텐데도 의연한 표정으로 무리를 감수한 선배 덕에 그날 저녁은 모두 행복했다. 그때 우리는 일단 뭉치면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우리는 청춘이었으니까. 인생의 가장 빛나는 때인 줄도 모르는 우리는 내 상식이 진리인 양 열변들을 토하다가 적당히 지치면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수일 내에 또 뭉치게 될 것을 알기에 헤어짐이 서운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날처럼 마루에 걸터앉아 책을 읽으며 클래식 방송을 듣는데 “너는 어떻게 살아갈 궁리는 좀 하고 있니”, 답답한 어머니는 이렇게 한마디 하실 만도 한데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좋다더라, 너 하곤 상관없겠지만…” 하시면서 맛있는 배를 깎아 옆에 놔 주신다. 당시는 부모님 몰래 담배를 태울 때이니 속으로 뜨끔하긴 했지만 태연한 척 미소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청춘은 빈 배처럼 떠돌고 있는데 가족 누구로부터도 “앞으로 뭐 해먹고 살 거냐”는 걱정의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나를 믿은 걸까, 아니면 말해 봐야 뾰족한 방법도 없는데 기분만 상할까 봐 참았을까.

하지만 나의 청춘은 그때 빛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절대 결핍의 시절’인 몇 년, 평생 읽은 책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 매일 아침 FM 방송을 통해 귀담아듣던 클래식 음악이 오늘 사람들에게 음악과 삶의 얘기를 같이 나눌 수 있는 바탕을 다지게 해 준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DJ를 꿈꾸진 않았다. 계획한 대로 차분히 준비해서 DJ가 된 사람도 있겠으나, 좋아하고 즐기던 일이 직업이 되어 참으로 고마운 인생의 역사가 펼쳐진 경우가 많다.

지금은 비록 불투명한 시간 속에 방향 없이 떠도는 듯 보이지만, 즐기고 있는 일이 찬란하게 빛을 발할 청춘은 얼마든지 많다. 젊은 날 찢어진 청바지에 슬리퍼 질질 끌고 어슬렁거리던 나를 보며 최소한 면전에서 “쯧쯧” 혀를 차지 않았던 그분들처럼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좀 아쉬워 보이는 청춘을 만나면 책망보다는 격려를 보내자. 나의 어머니 김 권사님처럼 맛있는 배를 깎아 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청춘의 때에 빛이 나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는 빛이 나기를 준비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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