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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역사 속의 This week 게재 일자 : 2022년 08월 08일(月)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관객 울고 웃게 했던 나운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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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의 This week

1926년 영화 ‘아리랑’을 만든 나운규가 배우, 제작진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에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이 나운규. 자료사진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무성영화 ‘아리랑’이 개봉했다. 당시 상황을 암시하는 ‘개와 고양이’라는 자막이 나오고 변사의 해설이 시작된다.

서울로 유학 갔던 소작농의 아들 최영진은 실성해 고향에 돌아오고 그의 친구 윤현구와 여동생 영희 사이에는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마을잔치가 열리던 날 악덕 지주의 마름(대리인) 오기호가 영희를 겁탈하려 하자 영진이 낫을 휘둘러 기호를 살해한다. 영진은 정신을 되찾지만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고 마을 사람들이 뒤따르며 다 함께 아리랑을 부른다.

영화가 끝이 나자 극장 안은 눈물바다가 됐고 관객들은 아리랑을 따라 부르며 독립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마치 어느 의열단원이 서울 한구석에 폭탄을 던진 듯한 설렘을 느끼게 했다”는 영화감독이자 배우 이경손의 회고처럼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개봉 전 공안을 방해하는 노래 가사가 있다며 전단 1만 장을 압수당했지만, 개봉 후 인파가 몰려들어 기마 경찰이 동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2년 6개월 동안 흥행을 이어가며 전국에서 상영돼 15만 명이 관람했고 6·25전쟁 직전까지 계속 재상영됐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원본 필름은 남아 있지 않다.

각본을 쓰고 주인공 영진 역과 감독을 맡은 춘사 나운규는 1902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회령보통학교 졸업 후 간도의 명동중학에서 수학했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수배당했고, 일제의 기간시설 파괴 임무를 띤 독립군 단체 도판부에서 활동하다 1921년부터 2년 동안 청진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출소 후 극단 예림회에 가입해 연극배우를 하다 영화제작사인 조선키네마주식회사 연구생으로 입사한 그는 1925년 ‘운영전’의 단역배우로 데뷔했고 ‘농중조’에서 뛰어난 연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가 1926년 24세 때 만든 아리랑은 당시로는 선진적인 영화 기법으로 제작됐고, 일제 치하 조선의 현실을 우리 민족의 한이 담긴 민요 아리랑과 함께 그려내 항일의식과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아리랑으로 일약 조선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 나운규는 ‘풍운아’ ‘사랑을 찾아서’ ‘벙어리 삼룡’ ‘오몽녀’ 등 29편의 작품을 제작했고 2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암울했던 시대, 영화를 통해 조선 관객들을 울고 웃게 했던 나운규는 35년이라는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폐병이 악화해 1937년 8월 9일 세상을 떠났다. 영결식은 단성사에서 치러졌고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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