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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희경의 시:선(詩:選) 게재 일자 : 2022년 08월 10일(水)
식사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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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 지켰어야 할 약속과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 장석주 ‘밥’(시집 ‘햇빛사냥’)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후배와 밥을 먹기로 했다. 가깝게 지내온 지 수년이 됐는데, 밥을 함께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식성도 모르는 사이였네. 미안해져서 무얼 먹고 싶으냐 마음껏 말해 보아라 큰소리를 쳤건만 후배의 바람은 냉면 한 그릇이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냉면이 뭐냐고 거듭 설득해 보아도 한사코 거절하니 슬쩍 마음이 뾰족해져서는 그러자 그럼, 가까운 냉면집으로 찾아가게 됐던 것이다.

그래도 여름엔 냉면인가 보다. 커다란 사발 그릇 둘을 놓고 보니 그럴듯한 여름 한 상이 되는 것이다. 뻔한 문답을 나누면서 우물우물 냉면을 씹던 중에 후배가 하하, 웃었다. 선배. 우리, 만날 때마다 언제 한번 밥 먹자는 약속했던 거 알아요? 하는 거였다. 그랬나? 하고 얼버무리려는 내 대답에 다시 한번 하하 웃는다. 인사치레인 줄 알았는데, 두 번 세 번 반복되니까, 든든해지는 거예요. 아무리 돈 없어도 한 끼 정도는 사주겠지, 하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게 참 고맙더군요. 빨개진 얼굴을 감춰 보려고 나는, 그릇을 들어 육수를 마셨다.

밥이란 사실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밥으로 살고 밥으로 일하고 더러는 밥으로 용기를 주고 위로를 할 수 있는 법이다. 밥값을 누가 내느냐는, 고전적인 실랑이를 뒤로하고 냉면집 앞에서 헤어지려는데, 후배의 눈이 빨개지고 말았다. 잘 지내세요 선배. 하는 후배의 인사에 다음에 오면 또 밥 먹자. 어깨를 툭 쳐주는 것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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