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이봉조 ‘안개’

  • 문화일보
  • 입력 2022-08-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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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김승옥이 196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의 표현이다. 이 소설을 김수용 감독은 1967년 ‘한국 최초의 모더니즘 영화’로 평가되는 ‘안개’로 만들었다. 그 영화의 주제가가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하고 시작하는, 정훈희 데뷔곡 ‘안개’다. 1970년대에 송창식은 리메이크해 불러 앨범에 담았고, 윤형주와 듀엣으로도 불렀다. 제75회 프랑스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이 수상작 ‘헤어질 결심’을 구상하는 모티브가 된 것도 그 노래였다. “울컥했다. 가슴이 먹먹했다”며 두 번 이상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은 ‘헤어질 결심’에는 정훈희가 젊은 시절에 녹음한 노래가 나온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이어지면서 흐르는, 정훈희·송창식 듀엣의 ‘안개’는 감동을 극대화한다.

‘안개’ 작곡은 한국 가요에 재즈를 입혀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수많은 명곡을 남긴 이봉조(1932∼1987)가 했다. 당대 최고 색소폰 연주자였던 그는 미국의 전설적 알토 색소포니스트 또는 테너 색소포니스트에 비유돼 ‘한국의 찰리 파커(1920∼1955)’ ‘한국의 스탠 게츠(1927∼1991)’ 등으로도 불렸다. 그의 음악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인물은 경남 진주고 재학 당시 음악 교사였던 이재호다. 그 후에 ‘나그네 설움’ ‘단장의 미아리고개’ ‘번지 없는 주막’ 등을 작곡한 이재호 권유로, 이봉조는 학교 밴드부에 들어가 색소폰을 배웠다. 한양대 건축학과 재학 중에 미(美)8군 무대에서도 색소폰을 불기 시작한 그는 1958년 대학 졸업 후 취직한 서울시청 공무원을 1961년 그만두고 본격적 직업 음악인으로 나섰다.

그가 남긴 불후의 명곡이 많다. 현미가 부른 ‘나의 별’ ‘떠날 때는 말 없이’, 김추자의 ‘무인도’,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 정훈희의 ‘꽃밭에서’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종택 작사로, 이봉조가 작곡해 직접 불러서 발표한 노래 ‘하늘을 보소’도 있다. ‘잘난 체하지 말고/ 뽐내지 마소/ 못 본 체하지 말고/ 잘 봐 주소/ 세상은 도는데/ 밤이 가면 아침이 오는데’ 하며, 걸걸한 목소리로 부른 그 노래도 더 듣고 싶어지는 때다. 그의 환상적인 색소폰 연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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