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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동미 기자의 두근두근 정주행 게재 일자 : 2022년 08월 16일(火)
열정과 노력…‘일에 진심’인 사람들 통해 내 삶의 답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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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미 기자의 두근두근 정주행
-‘오늘의 웹툰’ 원작…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


▶드라마의 주요 무대인 바이브스 편집부의 사람들. 부편집장 이오키베(오다기리 조·왼쪽부터), 신입 편집자 고코로(구로키 하루), 영업부 직원 고이즈미(사카구치 겐타로).

출판사 배경, 편집자·만화가 등
다양한 인물과 일의 애환 다뤄
“무엇을 위해 일하나” 자문케해

열정 충만 막내 편집자 고코로
실패에도 좌절 않고 진심 다해
20년째 문하생에 머문 누마타
동료·후배 성공 지켜보다 낙향
현실적 전개에 동병상련 느껴



(※이 글은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굴지의 출판사 흥도관의 사장 구지 마사루는 어느 날 복권 1등에 당첨된다. 자수성가한 그는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다. 노력 없이 얻은 것에 아주 엄격하다. 운의 관리에 인생이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술과 도박에 빠져 살던 과거를 청산한 후, 그는 “오로지 책을 위한 일에만 운을 쓴다”는 철칙을 세웠다. 그렇다면, 이 복권은 어떻게 하나. 번호를 확인한 그의 심장이 ‘덜컹’한다. 큰 운은 더 잘 써야 하니까. 이때 거실에서 종이접기를 하던 손녀가 외친다. “색종이가 모자라!” 아… 설마, 진짜? 아악, 안돼! 복권 한가운데를 가위로 오리는 다음 장면.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채 울었다. 너무해. 말도 안 돼. 책이 뭔데. 당첨금 받아도 책을 위해 쓸 수 있잖아요….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의 한 장면이다. ‘중쇄를 찍자’는 만화가와 편집자, 영업부와 인쇄소, 그리고 서점 직원 등 책이 탄생하고 팔리기까지 한땀 한땀 애쓰는 모든 출판 관계자들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다룬 드라마다. ‘중쇄’는 초판본을 다 팔고, 두 번째 인쇄에 들어가는 것으로 작품이 많은 독자를 만났다는 것이고, 매출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모두에게 이로운 일. 살아온 배경, 일하는 스타일, 취향도 전부 다른 등장 인물들은, 그래서 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복권 당첨금도 포기하는 사장부터 갓 입사한 막내 편집자까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바람은 오직 ‘중판출래(重版出來)’.

2016년 방영한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팬층이 두꺼운데, 최근 ‘오늘의 웹툰’이란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돼 다시금 화제다. 만화 대국이자 비교적 오프라인 시장이 건재한 일본 출판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원작은 만화 주간지 바이브스의 편집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와 달리, 한국판의 배경은 IT 대기업의 웹툰 부서다. 웹툰 시장 규모가 1조 원에 달하는 국내 현실에 맞춰 현지화한 것이다. 히트를 했던 리메이크작일수록 ‘안티 팬’도 많은 법. ‘중쇄를 찍자’의 오랜 팬으로서, 6회까지 본 감상을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글쎄요’. 대신, 오랜만에 원작을 다시 보게 했으니 고맙다.

꿈꾸던 일을 하고, 동료들과 가치를 공유하며 삶, 그리고 자신을 알아간다. “무엇을 위해 만화를 그리나요”라는 드라마 속 대사는 “무엇을 위해 일하나”로, 다시 “무엇을 위해 사는가”로 확장되며 매화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의 순간을 안긴다. 큰 줄거리는 유도 선수를 하다가 부상을 당해 진로를 변경한, 신입 막내 편집자 구로사와 고코로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의욕이 앞서 실수도 하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며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나간다. 모든 일에 열심인 고코로와 선의를 품고 서로 밀고 끌어주는 편집부의 풍경은, 지금 봐도 여전히 뭉클하다. 좋으면 좋다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모르면 모르겠다고, 쉴새 없이 얼굴 근육을 쓰는 고코로만 봐도 드라마는 심심하지 않은데, ‘정력선용(精力善用) 자타공영(自他共榮)’(자신의 힘을 선한 곳에 쓰면 모두에게 이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이라 외치며 유도의 덕목을 일에도 적용하는 고코로의 ‘진심’에 누구라도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 일을 하지? 직장인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그 질문들을 안고 말이다.

‘중쇄를 찍자’를 한국 배경으로 새로 만든 ‘오늘의 웹툰’.


실없어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엔 ‘한 방’을 보여주는 프로들. 바이브스의 편집자들을 보고 출판사 사장이라도 된 듯 기특해하다가, 쉴새 없이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는 고코로의 무한 체력이 부럽다가, 문득 드라마는 변한 게 없는데 사실은 좀 변한 ‘나’를 느끼고 조금 울적해졌다. 이제는 좋아도, 화나도, 뭘 잘 몰라도 늘 비슷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된 N년 차 직장인. ‘정력선용’할 힘은 없고, ‘자타공영’은 환상이라는 것도 안다. 또, 바이브스 편집부처럼 한결같이 착하고 일에 ‘진심’인 사람들만 모일 수도 없다는 것도. 가장 달라진 건, 가장 많이 울었던 일화다. 그것은 바이브스의 원로 작가 밑에서 20여 년 문하생으로 있던 누마타 와타루가 만화가의 꿈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갈 때였다. 남모르게 만화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20년을 투자한 것도 없지만 마음이 그랬다. 처음엔 뭐든지 기세 좋게 밀고 나가는 고코로에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점차 누마타의 좌절과 포기에 연민과 동병상련을 느꼈다. 우리 대부분은 고코로의 시절을 잠깐 지나 누마타처럼 사니까.

누마타는 오로지 만화가가 되기 위해 정진했다. 대학 동아리에선 가장 잘 그렸고, 신인상을 받은 적도 있다. 명망 높은 작가 곁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배우고 그렸지만, 20년째 문하생.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는 동료들을 보면서도 잘 버텨왔던 그는 마흔 살 생일을 축하한다며 집에서 보내온 술을 보다가, 천재적인 어린 후배가 금세 연재를 따내는 걸 보다가, “그래도 언젠가는”이라며 견뎌온 지난 세월을 회상하다가, 문득 결심한다. 만화를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술 빚는 가업을 잇기로. “언젠가, 언젠가…”라고 되뇌는 그의 눈앞에 만화를 그린 종이가 벚꽃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은 흥도관 사장이 손녀에게 복권을 내어줄 때보다 몇 배는 더 서글펐다. 노력하면 된다고들 하고, 또 노력하면 되는 것도 있다. 노력은 값지고 숭고하지만 그 절대량과 진정성이 무색하게, 인생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산다는 건, 그걸 깨우치고 받아들이고 내려놓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이 에피소드는, 내내 행복한 듯 보이는 이 드라마 안에서 가장 현실적이기도 했다. 낙향한 누마타에게 “연재가 결정됐어요!”라는 기쁜 소식이 들려오진 않을까 했는데, 끝내 그런 반전도 없었다. 아 진짜, 야속하다….

출판 강국 일본도 독서 인구가 줄고, 만화책 시장도 위기라고 한다. 드라마는 ‘이게 문제야, 책이 최고다’라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 속에 사라진다 해도 남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남길 수 있는지 고민하기에 더 울림이 깊다. 특히, 막 인쇄된 책의 향기를 맡거나, 고객들을 위해 서가를 계속해서 바꾸는 등 드라마는 ‘종이’가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과 모든 단계에 ‘사람’을 두어 더욱 빛난다. ‘오늘의 웹툰’이 한국 현실과 정서에 맞게 ‘현지화’한 것이라고는 해도 웹툰은 만화책보다 훨씬 젊고 빠른, 전혀 새로운 산업이다. 종이와 연필, 잉크, 인쇄, 사람이 사라진 세계에서 과연 원작의 페이소스가 얼마나 발현될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중쇄를 찍자’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2016년에 제작된,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드라마가 젠더 감수성 측면에서 뒤떨어져서다. 여성 편집자에 대해 수군거리며 “담당이 여자면 성가시게 굴지는 않아?”라고 하는 대사나, 부편집장이 신입 직원을 혼내면서 책으로 배를 쿡쿡 치는 장면은 내게 편집권이 있다면 당장 삭제하고 싶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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