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공무원 월북판단 근거‘슬리퍼’ 국과수 유전자 감식으로 번복되나

檢, 최근 감식 결과 확보
DNA 다수… 이대준 특정못해
해경청 압수수색… 수사 속도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해양경찰청의 월북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된 “슬리퍼는 실종자(고 이대준 씨)의 것으로 확인됐다”는 발표 내용을 뒤집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감식 결과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검찰은 “(실종 직전) 운동화를 신은 것 같다”는 진술에도 해경이 일부 선원들의 진술만 취사선택해 선박에서 발견된 슬리퍼 주인을 이 씨 것으로 성급히 단정, 월북 근거로 활용한 과정에 윗선 개입이 없었는지 규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해경이 이 씨 소유로 단정한 슬리퍼에 대한 유전자 감식 관련 질의를 보냈다. 이에 국과수는 지난 12일 검찰의 질의 관련 답변을 보냈다고 한다. 국과수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다”면서도 “검찰의 (이 씨 슬리퍼) 유전자 감식 결과에 질의가 있어 최근 답변이 이뤄진 것은 맞다”고 밝혔다.

앞서 해경은 2020년 9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선박에서 발견된 슬리퍼가 실종자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당시 해경의 이 같은 판단 근거에는 선원들의 진술이 주요했다. 해경은 이 씨가 슬리퍼를 벗고 내렸다는 가정을 세워, 월북 판단의 근거로 확장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국과수의 유전자 감식에선 슬리퍼에서 여러 명의 DNA가 확인됐다. 이에 해경의 중간 수사결과와 달리 슬리퍼를 이 씨의 것으로 특정할 수 없게 됐다.

유족 측이 최근 해경으로부터 받은 선원들의 진술 조서에도 슬리퍼 소유자를 단정할 수 없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 씨 실종 당시 함께 당직에 섰던 선원 A 씨는 “(이 씨가) 슬리퍼를 착용한 것은 아니었고, 운동화를 신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진술에도 당시 해경은 “(이 씨를 제외한 선원) 15명이 슬리퍼 주인을 찾아봤는데, 모두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다” 등의 진술만으로 소유자를 이 씨로 단정했다.

한편 이날 수사팀은 전날 압수수색의 연장선으로 해경 본청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전자문서와 메신저 등 (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