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하수구 막힘의 원인이 되는 담배꽁초들. 필자 제공
길을 걷고 있었다. 무교동 거리였다. 딱히 바쁜 일도 없어서 지나가는 늘씬한 다리만 골라보며 걷고 있었다. 늘씬한 다리 하나가 피우던 담배를 거리에 툭 던지자 습관이 된 발이 다가가 짓이기고 있었다. 연기를 내뿜던 담배는 순식간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 늘씬한 다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을 세차게 뱉으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늘씬한 다리 사이로 구름이 어둡게 다가오고 있었다.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진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길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들이 송충이처럼 우글거리며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빗방울이 점점 세차게 내리자 하나둘 포개졌다 흩어진다. 빗줄기는 금세 폭우로 변해 흥건하게 물살을 가르자 우글거리던 꽁초들이 부딪치고 휩쓸리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 전 내린 폭우로 서울 시내 곳곳에서 많은 재산과 인명피해가 일어났다. 신림동 반지하 방에서 살던 세 식구가 밀려든 빗물을 피하지 못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고 강남역 부근에서는 빗물이 역류한 맨홀에 빠진 남매가 멀리 떨어진 하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순식간에 쏟아진 폭우는 집과 가축을 종이배처럼 띄워 마을을 맴돌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다리는 흔적을 지운 채 삐딱하게 처박힌 잔해들만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다. 일기예보조차 빗나간 이 슬픔, 이것을 우리는 천재지변이라 한다. 천재지변이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자연현상으로 인한 재앙을 말한다. 그러나 그 재앙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우리는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큰일을 치르고 나서야 요란하게 뒷북을 친다. 그 북도 며칠 지나면 깜깜이북이 되고 만다. 세계는 지금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극한의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한쪽에서는 심한 가뭄이, 다른 쪽에서는 집중 폭우가 쏟아진다. 뉴스 화면에서만 봤던 기상이변이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님을 이번 폭우로 알게 됐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지형에 따라 흘러야 할 물이 어느 한 곳이라도 막히면 그 물은 역류한다. 길을 가다 보면 도심 곳곳에 맨홀 뚜껑을 볼 수 있다. 그 맨홀 아래는 큰 지하관이 매설되어 지상의 물을 받아 하수처리장으로 흘려보낸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 특히 담배꽁초들이 빗물이 흘러가야 할 하수구를 막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차라리 길바닥에 버리면 환경미화원이 쓸기라도 할 텐데 꼭 잘 안 보이는 하수구 속에 버린다. 누군가 먼저 버리면 줄줄이 따라 버린다. 급기야 하수구는 큰 재떨이로 변한다. 그때 비가 오면 수십 수백 개의 꽁초가 빗물을 틀어막는다. 마치 붉은 띠를 두른 데모대처럼 완강히 버티며 막는다. 집중 폭우도 그 벽을 뚫지 못하고 집으로 상가로 들이닥친다. 처음엔 바가지로 물을 퍼내어 보지만 점점 차오르는 물줄기는 거실로 안방으로 들어온다. 신발들이 쪽배처럼 떠다니는 거실은 이미 빗물이 주인이다.
무교동 식당가 뒷골목 식사를 마친 수십 명의 직장인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길바닥은 이미 꽁초 천국이다. 버리고 짓밟고 또 버린다. 바로 옆 하수구에도 꽁초들이 쇠창살에 갇힌 죄수들처럼 우글거리고 있다. 순간 폭우가 내리면 꽁초들이 틀어막은 하수구는 또 역류의 수마로 돌변해 무교동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국내총생산(GDP) 3만5000달러에 달하는 선진국이다. 우리의 문화의식도 그에 걸맞게 변해야 한다. 꽁초 함부로 버리는 의식으로는 절대 문화 시민이라 할 수 없다. 나의 잘못된 습관 하나가 누군가에겐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애연가들이여! 고치자. 그리고 꽁초 때문에 피해를 본 모든 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자. 발아래 힘없이 뭉개지던 담배꽁초도 뭉치면 무섭다.
시인 김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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