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의 시론>한·중 관계 시즌2와 ‘롱 게임’ 전략

  • 문화일보
  • 입력 2022-08-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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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한중 수교 30년 윈윈 번영 기여
한국은 선진국 문턱 중국은 G2
앞으로 30년 미·중 충돌 암운

도광양회 뒤 분발유위 추구 中
안보위협 전략경쟁자 규정 美
동맹과 장기 번영전략 세울 때


올해는 한·미 수교 140주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은 해다. 한·중 수교는 1992년 8월 24일 양국이 베이징(北京)에서 수교문서를 교환함으로써 이뤄졌다. 양국 정부는 24일 각각 30주년 행사를 갖는데, 박진 외교부 장관은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베이징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메시지를 대독한다. 양국이 정상 메시지조차 교환하지 못할 정도의 냉랭한 상태에서 수교 30년을 맞은 것이다.

한·미 수교 뿌리는 1882년 5월 22일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이다. 삼성전자 방문, 정상회담, 국립중앙박물관 만찬 등으로 이어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난 5월 방한은 이 기념일에 맞춰 이뤄졌다. 조미조약은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첫 조약이지만, 청나라가 주도한 일본 견제용이었다는 게 본질이다. 그나마 미국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 후 떠났고, 1945년 해방군으로 오기까지 긴 휴지기가 이어졌다. 수교 140년 역사 중 40년은 암흑기여서, 한·미 공식 관계는 올해가 100주년이나 마찬가지다. 6·25 직후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면서 양국 관계는 날개를 달기 시작했고 가장 성공적인 동맹의 역사를 쓰고 있다.

1882년 한·미 수교가 청나라의 ‘조선책략’ 차원에서 진행된 것과 달리, 1992년 한·중 수교는 탈냉전 시대 조지 H W 부시 미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성사됐다. 미국은 대중 관여정책이 중국의 민주화·자유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신념을 견지했고, 한·중 수교도 이런 낙관론 속에서 이뤄졌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한·중 무역관계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무역 규모는 1992년 수교 당시 63억 달러에서 지난해 3015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교 후 30년은 한·중 관계사에서 전대미문의 상호 번영 시기였다.

그러나 이제 역사의 바람이 바뀌었다. 중국이 자유화에 역행하며 ‘테크노 전체주의’ 체제를 굳히자, 미국은 관여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뒤 중국을 국가안보에 위협적인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국내 정책 면에서 차이가 크지만, 대중정책에서는 일치단결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펴던 대중 압박 정책을 바이든 대통령은 나토 및 아시아 동맹국들까지 연대해 더 강력하게 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냉전 때 조지 캐니언의 ‘긴 전문’이 연상되는 대중전략 보고서 ‘더 긴 전문’을 익명으로 펴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중국담당국장 러시 도시는 저서 ‘롱 게임(The Long Game)’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분발유위(奮發有爲)로 바뀐 과정을 추적하면서 “중국의 세기적 도전에 맞서기 위한 대전략”을 주문했다. ‘더 긴 전문’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국제 기류가 바뀐 만큼 앞으로 한·중 관계는 과거 30년과 다를 수밖에 없다. 더 불길한 것은 향후 30년은 시 주석이 말하는 ‘건국 100년 내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 시기와 겹친다는 점이다. 시 주석의 캐치프레이즈는 공산당 정권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미국을 대체하는 슈퍼 파워가 되겠다는 꿈이다. 현실화할 경우 중국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미군은 한·일에서 철수하고 미국의 아시아 동맹도 해체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칩4’를 비롯해 공급망 디커플링 정책 등을 펴는 것은 중국식 전체주의의 세계화를 저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장기 전략이다. 윤 정부도 공산당 집권 국가의 속성을 직시하고 대중(對中) ‘롱 게임’ 차원에서 향후 30년을 준비해야 대한민국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지킬 수 있다. 문재인 정부처럼 중국 달래기로 일관하다간 국권도 지키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찬 때 ‘인간의 영광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생각해 보라.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들을 가진 데 있었다’는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를 인용했다. 미국이란 좋은 친구 덕분에 대한민국에 영광이 있었다는 뜻이다. 더 거세질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좋은 친구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함께 갑시다”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화답처럼 향후 대중 전략의 관건은 동맹·자유 진영과의 공조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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