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조각 자유롭게 변주… 우주를 새긴 ‘文信’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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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09-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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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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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 관람객이 문신 작가의 작업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과 그의 조각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작가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전

유럽서 인정받은 세계적 예술가
우주의 ‘이동·확장·변화’ 주제
전생애 걸친 작품들 230점 선봬

완벽한 ‘대칭’을 이룰 수 없는
만물의 생명력 작품에 고스란히



“문신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타투를 설명하는 내용이 먼저 나옵니다. 그래서 작가 이름임을 명기하기 위해 작가의 한글명 옆에 한자를 넣었습니다(웃음). 문신 작가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제 무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세계적 예술가입니다. 이번 전시가 그 간극을 메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관에서 1일 개막한 전시 ‘문신(文信):우주를 향하여’에 대해 기획자인 박혜성 학예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 문신(1922∼1995)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창작 본향인 옛 마산이 있는 창원시와 함께 마련했다.

덕수궁관 4개실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엔 조각, 회화, 드로잉, 판화, 도자 등 230여 점이 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30여 점)뿐만 아니라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90점), 숙명여대 문신미술관(15점) 등에서 대여했다. 이건희 컬렉션 등 개인 소장품도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 첫 공개하는 작품만 28점이다. 그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 자료도 대거 전시했다.

방대한 규모의 작품들을 둘러보며, 한국 미술계 주류와 연결되는 학맥 없이 고독하면서도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했던 작가를 국립현대미술관이 조망하는 것은 의미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문신의 전모를 볼 수 있는 이번 전시 핵심 주제는 ‘이동, 확장, 변화’이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간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초국적 예술의 자양분으로 삼고, 회화에서 조각으로 장르를 확장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끊임없이 변주한 작가의 역정을 담아냈다.

문신은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九州)의 탄광촌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에서 보내고 16세 때 일본에 건너가 일본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당시 일본에 유학했던 김환기, 이중섭, 김병기 등이 부유한 집안의 뒷받침을 받았던 것과 달리 그는 밀항으로 일본에 가서 노역하며 공부를 했다. 자신이 힘들게 번 돈을 고향에 부쳤고, 아버지가 그 돈으로 사뒀던 땅이 지금의 문신미술관 부지가 됐다고 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신 작가가 1979년 자필로 작성한 이력서.


그가 회화에서 고기잡이하는 어부 모습 등 생활 현장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것은 자신의 체험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그가 1970년대에 편지지 겉봉에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쓴 메모는 예술론을 오롯이 보여준다. “예술이란 일시적인 사고나 지나친 테크닉만으로 작품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가 터득한 경험과 진지성 있는 정신이 작품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는 마산과 서울에서 화가로 활동하다가 1961년 불혹에 프랑스로 건너갔고, 유럽에서 추상 조각을 제작하며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1970년 프랑스 남부 바르카레스항에서 열린 국제조각심포지엄에 13m 높이의 나무 조각 ‘태양의 인간’을 출품한 것은 그가 유럽에 명성을 떨치게 한 주요 사건이었다. 현지에 지금도 남아 있는 이 조각의 형태는, 문신이 귀국한 후인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만들어 올림픽공원에 영구 설치된 ‘올림픽 1988’의 원형이다. 수직 상승의 형태인 이 조각들은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우주)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는 작가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문신은 나무에서 브론즈, 스테인리스로 조각 재질을 계속 확장했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조각이 미술관을 넘어 도시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랐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을 지향했던 그의 작품들은 지하철역, 공원, 광장 등에 전시됐다.

질감보다 형태를 중시했던 그의 조각은 흔히 대칭의 특징을 지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완벽한 대칭이 아니라 전후좌우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 이는 조각을 통해 우주 만물의 생명성을 전하고 싶어 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무릇 모든 생명체가 정확한 대칭이 아니듯 그의 조각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 미세한 차이를 그의 작품마다 확인하는 것은 이번 전시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다. 조각을 만들기 전에 그가 그렸던 드로잉들을 보는 재미도 크다. 전시는 2023년 1월 29일까지.
글·사진=장재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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