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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게재 일자 : 2022년 09월 02일(金)
‘명랑 골퍼’의 스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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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우 영화배우

골프는 어렵고 냉정한 스포츠
룰·매너 스스로 지키기 어려워

멀리건·컨시드는 배려이지만
우린 이미 ‘합작’에 익숙해져

난 샷보다 수다 더 좋아하지만
내 스코어만은 정확히 기록해


도심은 물론이고 해외 유명 미술관 심지어 상갓집에도 출몰하던 그 많던 등산복 차림은 어디로 갔을까? 불과 몇 년 전 경기침체로 허덕거리던 골프장들이 팬데믹 탓에 해외로 못 나가는 골퍼들과 방송사마다 앞다퉈 제작하는 골프 프로그램 영향으로 젊은 사람들도 골프에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호황을 맞았고, 그래서 그 자리를 골프웨어가 대신하는 듯하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골프도 즐기기 위해서는 규칙과 매너가 필요하다. 이를 가볍게 여기는 일부 골프 프로그램을 보며 이제 막 관심을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골프가 잘못 인식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최근 어느 골프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서 멋진 샷과 근사한 매너만 보여 주리라 결의를 다졌는데, 막상 그날 녹화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결에 젊은 후배들과 코 잡고 맴맴 돌고는 혼신을 다해 휘청거리며 페어웨이를 달리고 말았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간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재미있게 해야 하니까.’

골퍼가 매너와 규칙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골프는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심판이 없어서 때론 골퍼 자신이 스스로에게 벌점을 줘야 하는 엄격한 심판이 되어야 한다. 룰과 매너를 익히지 않으면 적지 않은 시간과 비싼 비용을 지불한 동반자들에게 즐겁지 않은 기억을 남길 수 있다.

오늘날 PGA 골프가 세계적인 스포츠가 된 데는 아널드 파머라는 전설적인 선수의 역할이 컸다.(내가 한때 아널드 파머의 모델이어서 우호적인 건 절대 아니다.) 미국 사람들이 파머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보여준 멋진 기량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경기 중에도 갤러리와 눈이 마주치면 먼저 웃어 주었고 특히 어린아이를 보면 다가가서 온화한 미소로 말을 건네는 ‘친절한 매너’를 보여주었기에 그렇다.

최근 들은 일화다. 실내에서 스크린으로만 연습하다가 필드에 처음 나온 사람이 본인 순서가 되었는데도 볼과 티를 준비하지 않기에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실내 골프장처럼 바닥에서 골프공이 올라오는 줄 알고 기다리고 있다고 한 웃지 못할 이야기.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이길 바란다.

오래전 내가 골프를 시작할 때는 전동카트는 물론 없었고 ‘일인 일 캐디’여서 여덟 명이 걸어서 18홀을 마쳤는데, 그린에 여덟 명이 있었던 광경은 떠올리기만 해도 복작복작하다. 서른 살 무렵이었으니, 골프를 조금 일찍 시작한 탓에 클럽하우스의 식당에 들어갈 때면 머뭇머뭇했다. 식당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젊은 내가 보기에 머리 희끗희끗한 연세 많은 어르신이 가득 앉아 있었다. TV에서 본 아는 얼굴이어서인지 아니면 새파란 친구가 건방지게 벌써 골프를 치나 해서인지 식당에 들어서는 나를 모두 쳐다보는 바람에 걸어 들어갈 때 스텝이 다소 불안정(?)했던 기억이 난다.

골퍼는, 패널티의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적으로 치는 사람과 코스가 요구하는 대로 피할 상황에서는 피하면서 요령껏 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36년 구력인 나는 여태 ‘사나이는 직진이야’를 외치며 무모함을 도전으로 착각하고 플레이하고 있으니 아직도 하수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도전에 성공했을 때의 그 희열과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긴 하지만….

그렇다면 공격적 스타일인 나는 얼마나 성공했을까? 몇몇 그림 같은 멋진 샷이 아직도 무공훈장처럼 기억에 남아 있긴 하지만,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주려고 해도 성공 확률은 20, 30%가 안 되는 것 같다. 샷이 잘못되었을 때 멀리건이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한 번 더’ 샷을 할 때도 있는데 그제야 정신 차리고 공격적인 길보다는 안정적인 길을 택하게 된다. 인생에도 멀리건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은 골프와 같다’는 말을 라운딩할 때마다 공감하곤 한다. 인생이든 골프든 불끈 쥔 주먹을 허공에 대고 어퍼컷 날리며 펄쩍펄쩍 뛸 만큼 기쁨의 순간이 있다. 하지만 깊은 벙커나 거친 러프 같은 위기에 빠져 난감할 때도 있다. 인생에서는 가족이나 친구가 도와줄 수도 있다지만 골프는 그것마저 가능하지 않아 어쩌면 참 어렵고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스포츠이기도 하다.(골프가 어려운 것은 샷보다 룰과 매너를 스스로 지키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잘살았든 못살았든 이미 지나온 시간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듯, 잘 쳤든 못 쳤든 그날의 결과도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스코어다.

얼마 전 골프 방송에 같이 출연한 탤런트 윤유선 씨가 핸디캡을 묻는 질문에 “스코어를 꼭 세어야 하나요”라고 예상 밖의 말을 했을 때 모두가 재미있다는 듯이 박장대소하며 웃었지만, 그 말이 아직도 귓전에 남아 있다. 골프 라운드가 끝난 후 실제 친 타수와 차이가 있는 스코어 카드를 보며 마음에 흡족한 스코어를 ‘제조’하느라 마음이 편치 않음을 느끼느니 룰과 매너를 잘 지킨 라운드 후의 바른 스코어가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한다.

‘한 번 더’의 멀리건과 ‘오케이’의 컨시드는 배려지만, 치고 난 스코어를 깎아 주는 건 권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이미 ‘합작’하는 일이 무감각할 정도로 너무 익숙해져 있다. 어느새 ‘명랑골퍼’가 되어 있는 나는 샷보다 ‘수다’를 더 좋아하지만 내 스코어만은 스스로 정확히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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