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가지

짙은 자줏빛에 아기 팔뚝 정도의 기다란 열매가 맺히는 채소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가지이다. 가마솥에 지은 밥을 기억하는 이들은 밥을 지을 때 가지를 같이 찐 뒤 죽죽 찢어 새콤하게 무쳐낸 가지 무침까지 떠오르기도 한다. 씨와 과육이 얽힌 부분의 물컹한 식감과 외양을 싫어하는 이들이라도 중식이나 일식의 튀김은 큰 거부감 없이 먹기도 한다.

‘가지’는 한자로는 ‘茄子’라고 쓰니 우리 한자음대로 읽으면 ‘가자’라고 해야 한다. 중국어식 발음으로 읽으면 ‘체쯔(qiezi)’라고 해야 하니 앞의 글자는 우리 한자음으로 읽고 뒤에 글자는 중국어식으로 읽은 ‘쯔’가 ‘지’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물이 중국을 통해서 들어오면서 이름까지 함께 들어왔지만 그 이름을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시켰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16세기의 문헌에 ‘茄’를 훈과 음을 ‘가지 가’라고 해 놓은 것을 보면 꽤 이른 시기에 중국어 이름이 들어와 우리말의 일부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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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의 모양과 색이 독특하다 보니 최근에 개발되거나 선보인 작물에 가지가 종종 쓰이기도 한다. 짙은 자줏빛의 고추를 ‘가지고추’라고 하는데 이는 색깔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가지와 고추를 교배해서 탄생시킨 것이다. 알의 모양이 길쭉한 포도를 ‘가지포도’라고도 하는데 이는 교배와는 관계없이 블랙 사파이어 포도의 알이 가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땡볕이 내리쬐는 들판에 가지가 한창이다. 10월까지는 제철이니 당분간은 저렴한 가격에 제철 채소로 만날 수 있다. 가지로 할 수 있는 요리를 들라면 요리사들은 가지로 가지가지 요리를 할 수 있다고 말장난을 한다. 제 땅에서 제철에 나는 먹거리는 싼값에 갖가지 요리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름철의 밥상에 온통 푸른색만 보인다면 가지와 가지고추로 다양성을 더하는 것도 좋겠다. 물론 가지포도는 후식으로.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