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담벼락’ 걷는 韓경제… 물가방어·혁신성장 실패땐 ‘침체’로

  • 문화일보
  • 입력 2022-09-08 09:24
  • 업데이트 2022-09-0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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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진의 Deep Read - 경제, 위기인가 아닌가

1997·2008년 같은 전통적 위기와 달라… 생산성 제고로 경제성장 견인 못하면 줄도산·대량실업 일어날 수도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선 케인스 아닌 슘페터 해법 바람직… 규제·제도 개혁으로 ‘혁신생태계’ 강화해야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글로벌 복합 위기가 한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의 물결 속에서 생산, 투자, 무역, 환율, 소비 지수가 악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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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한국 경제는 위기인가. 아직 전통적인 의미의 위기로 볼 수는 없다. 다만 물가 상승 압력을 방어하지 못하고, 중장기적으로 규제·제도 개혁으로 생산성 제고와 혁신생태계 구축을 꾀하지 못하면 경제는 위기를 넘어 침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거시경제와 위기

글로벌 복합 위기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다. 물가 상승은 에너지·곡물 등 생산원료 가격 상승에 의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인데, 이는 1970년대 석유파동에 의한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의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예측치인 4%대에서 2%대로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이 치솟아 1400원에 바짝 다가섰고, 무역수지 적자는 통계 작성 이후 66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을 경제위기(economic crisis)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경기순환(business cycle) 과정의 어느 단계로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커진다.

경기순환이란 확장기-후퇴기-수축기-회복기가 반복되는 순환 현상이다. 확장기는 생산·투자·소비 등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최고점을 ‘정점’이라 한다. 정점을 지나 경제활동이 축소되면서 이윤·물가·임금이 하락하는 시기를 후퇴기라고 한다. 후퇴기가 더욱 심각해지면 수축기가 되며 이때 최저상태를 ‘저점’이라 부른다. 저점을 지나 경제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면 회복기로 나아간다. 이어 투자 수요가 늘고 물가가 다시 상승하는 추세가 진전되면 확장기로 돌아온다.

이에 비해 거시경제에서의 ‘위기’란 국민소득 하락, 물가하락, 이자율 상승으로 유동성 경직, 실업률 증가, 기업들의 파산, 주식·부동산 가격 폭락 등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경제성장률이 2분기 이상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경기침체(economic recession)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국 경제는 지금

한국 경제는 경제성장이 예상보다 낮아지긴 했지만 마이너스도 아니고, 주식·부동산이 폭락한다고까지 얘기하기 어렵다. 아시아 금융위기(1997∼1998년)나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의 경험을 볼 때 아직 경제위기라 하기는 이르다. 당시와 다르게 현재 경제 상태는 파산에 이르지도 않았고, 기업 줄도산으로 심각한 실업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한국의 현재 경제는 강한 수축기에 진입해 있는 상태로 보는 게 맞는다. 다만 이 상태가 더욱 악화할 경우 경제위기에 진입할 우려는 있다. 특히 스태그플레이션이 기존의 경기순환 과정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총수요 증대를 통해 경기부양을 하는 전통적인 케인스 정책은 유효하지 않다. 그런 방식은 물가만 올릴 가능성이 크다.

그럼 한국 경제는 어떻게 위기로의 이행을 막을 수 있을까. 여기엔 단기 대책과 장기 대책이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경제성장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 단기적으로 볼 때 경제성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가 상승이 임금·생산비용 상승으로 연계되고, 다시 물가 상승을 만들어내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진짜 경제위기로 갈 수도 있다. 경제성장에 대한 우려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미국보다 늦추면 무역수지를 악화하고 자금의 국외 유출을 만들어낸다. 현재의 환율 움직임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혁신으로 생산력을 높이고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존 케인스와 같은 해에 출생했지만, 다른 해법을 제시한 조지프 슘페터를 소환할 필요가 있다. 슘페터는 총수요 증대 방식보다는 혁신과 기업가정신으로 공급 확대를 통한 경기회복을 주장했다. 1970년대 세계 경제위기를 몰고 온 석유파동으로 야기된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한 것이 슘페터의 공급 중시 경제학이다.

◇혁신생태계

중요한 건 혁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혁신 성과가 생산성 증대와 경제성장으로 연계될 수 있게 혁신생태계(innovation ecosystem)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의 혁신에 대한 투입(R&D 지출)과 성과(특허출원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2020년 R&D 투자는 93조 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5위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4.81%로 2위였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서 파악한 특허출원 건수는 2만60건으로 세계 4위다.

문제는 이러한 혁신 성과가 생산성과 제품 생산으로 효과적으로 연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반도체 인력을 많이 양성하더라도 이들이 효과적으로 생산 현장에 투입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혁신생태계 강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제도 혁신이다. 규제 완화를 통한 신규 시장 창출이 대표적이다. 유능하고 미래지향적인 혁신인력이 신규 시장으로 쉽게 진출하도록 해서 기업가정신을 실현할 기회를 극대화하게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한국이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상징인 우버나 무인자동차 실험 주행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혁신생태계 조성을 가로막는 악질 규제다.

혁신의 성과가 생산성으로 연계되도록 하는 제도의 유연성 강화도 대단히 중요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에 발표한 국가경쟁력평가(2019년)에서 한국은 전체 141개국 중에서 13위였다. 정보통신기술(ICT) 보급이나 거시경제 안정성 부문은 1위로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생산물시장은 59위, 노동시장은 51위로 국제적 수준이 매우 떨어져 있다. 노동시장을 구체적으로 보면 정리해고 비용(116위), 고용·해고 관행(102위), 노사관계 협력(130위) 등은 최저 수준이다.

◇담벼락 위의 한국

한국 경제가 기업이나 국가가 파산에 이를 정도 어려움에 직면한 전통적 의미의 경제위기를 맞은 건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글로벌 복합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언제든 경제위기에 맞닥트릴 수 있고, 경기침체라는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의장


■ 용어설명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은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나 노동비용 같은 공급 측 생산원가의 상승에 의한 물가 상승. 이에 반해 수요 확대에 의한 물가 상승을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라 함.

‘국가경쟁력평가’는 세계경제포럼이 세계 각국의 4대 분야·12개 부문 경쟁력을 지수화한 것. 코로나 유행 이전인 2019년 자료가 최근 것으로 한국의 종합순위는 141개국 중 13위였음.


■ 세줄 요약

거시경제와 위기 :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로 확산 중. 거시경제에서 ‘위기’란 국민소득·물가 하락, 유동성 경직, 기업 줄파산 등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 경제성장률 2분기 이상 마이너스 기록 시엔 경기침체로 봄.

한국 경제는 지금 :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는 아님. 경제 파산이나 기업 줄도산이 나타나지 않아. 하지만 운용을 잘못하면 경제위기를 넘어 침체로 나아갈 수도 있음.

담벼락 위의 한국 : 한국 경제는 ‘위기의 담벼락’ 위를 걷는 형국. 위기를 피하려면 혁신이 필요하고, 그 성과가 생산성 증대와 경제성장으로 연계되도록 혁신생태계를 강화해야. 특히 규제 및 제도 개혁이 최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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