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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석의 푸드로지 게재 일자 : 2022년 09월 15일(木)
올 가을엔 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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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조개와 석화, 가리비, 바지락, 대합, 홍합에다 오징어까지 넣은 찜 요리. 해물찜은 시각적으로 푸짐해 보여 식욕을 자극한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찜 요리

고열 수증기로 빠르게 조리
원재료의 고유성분·맛 보존

해물찜·김치찜·바지락술찜…
현대 들어 ‘찜’ 의미 넓어져
볶음·조림 요리까지도 포함


추석을 보내고 본격적 가을이 도래했음을 느낀다. 조금 이른 가을이라지만 산과 들, 바다에는 갖은 제철 재료가 올라온다. 구워도 삶아도 단단히 맛이 든 먹을거리들이다.

물산의 풍요는 곧 마음의 여유로 온다. 한여름 지난 후 다시금 이런저런 모임도 잦아지는 시기, 폭폭 쪄낸 찜 한 쟁반이 당긴다. 보통은 찜 그릇이 커다라니 그릇을 가운데 놓고 동그라니 모여 앉아 두런두런 맛보며 즐기는 화합의 음식이다. 찜은 시원하기도 하다. 높은 확률로 불판 앞에 앉게 되지 않는 까닭이다. 가끔 철판 위에 올리는 찜도 있지만 대부분은 조리해서 식탁으로 가져온다. 지긋한 무더위를 보낸 직후라 불판이 꺼려진다.

경기 파주 ‘홍어전집’의 홍어찜.

식재료를 수증기로 익히는 찜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는 조리법이다. 영어론 스팀드(steamed)라고 하고, 한자로는 증(蒸)이라 한다. 일본에선 조리법은 니루(煮る), 요리는 니모노(煮物)라 부르는데 이는 사실 ‘조림’에 가깝다. 양념 국물에 조리지 않고 펄펄 김을 내 쪄내는 것은 따로 무시(蒸し)라 구별한다.

한식에선 요리 종류나 조리법이나 그대로 찜이라 쓴다. 물에 넣어 익히는 ‘삶기’와는 차이가 있다. 찜통을 두고 아래에 물을 끓여서 올라오는 뜨거운 수증기로 재료를 익히는 방식이다. 물에 넣고 삶으면 재료가 100도 이상 가열되지 않고 또 재료의 고유 성분이 물에 흘러나올 수가 있는데 수증기로 삶으면 그보다 고열로 빠르게 조리할 수 있다. 육즙 등 재료의 고유 성분도 보존된다.

대구 중구 ‘벙글벙글찜갈비’의 찜갈비.

만두나 게를 찔 때 물에 넣게 되면 전분이나 맛이 국물에 녹아난다. 삶는 대신 찌면 재료 고유의 맛이 그대로 있다. 직화나 번철 구이, 기름에 넣고 튀기는 것보다 원재료 맛이 살아있는 것이 찜 요리다. 그래서 찌는 것이다.

지금쯤 뭔가 의구심이 들 때도 됐다.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찜 요리 중 아귀찜이나 코다리찜 같은 것을 보면 간접 가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물 자작하게 조리거나 볶듯이 요리한다. 해물찜이나 갈비찜, 닭찜, 김치찜, 족발찜, 바지락술찜 등 오히려 이름에 ‘찜’이 붙은 요리 대부분이 그렇다. 사람을 쪄대는 한증막(汗蒸幕)의 찜질방과 그저 뜨거운 물을 받아둔 목욕탕을 혼동해서 쓰는 격이다. 왜 그리됐을까.

서울 중구 ‘철철복집’의 이리찜.

이는 현대에 들어 찜의 의미가 보다 넓어진 탓이다. 요즘에는 찜이라 하면 물을 적게 잡고 오래 익혀 조려내는 요리까지 모두 포함한다. 서양 요리로 따지자면 뭉근한 불로 오래 익힌 스튜(stew) 같은 요리까지도 우리가 찜의 범주에 넣고 있는 형국이다.

구운 요리 이름에 ‘구이’가 붙고 볶은 것엔 ‘볶음’이 따라오지만 삶은 것에 ‘삶음’을 붙일 수 없어 대신 ‘찜’을 붙인 까닭에 찜 요리의 종류가 이처럼 넓어진 이력도 있다. 게다가 특히 일본의 니모노를 의역해 찜이라 붙인 경우가 종종 있다. 돼지고기를 깍둑 썰어 조려낸 가쿠니(角煮), 곱창에 된장을 넣고 조린 모쓰니(もつ煮) 등 요리는 사실 조림이라 할 수 있는데 삼겹살찜, 곱창찜으로 순화해서 쓰는 바람에 그리됐다. 다만 편백나무 통에 쪄내는 세이로무시(蒸籠蒸し) 요리는 정통 찜의 원리에 부합한다.

경기 고양 ‘정이품’의 아귀해물찜.

실제 원론적인 찜 요리는 시루떡이나 송편 같은 떡 종류와 만두, 생선찜, 계란찜, 굴(조개)찜, 대게(꽃게)찜, 바닷가재찜 등에 국한된다. 차라리 분식점의 순대가 정통 방식의 찜 요리다.

직화로 익히는 요리가 적은 중국에선 찜을 활용한 음식이 더 많다. 만터우(饅頭), 자오쯔(餃子), 바오쯔(包子) 등은 물론, 딤섬(點心)에 쓰는 다양한 요리 중 찜 기법을 쓴 것이 많다. 그 유명한 동파육도 튀기고 삶고 굽는 등 여러 조리를 더하지만 결국엔 찜 요리에 속한다.

몽골에는 뜨거운 돌로 고기를 쪄먹는 요리 허르헉(хорхог)이 있다. 이게 정말 독특한 찜 요리다. 유목민들이 특별한 날 먹던 전통 요리인데 양이나 염소를 잡아 뭉텅뭉텅 썰어 솥에 넣고 불에 뜨겁게 달군 돌멩이(촐로)를 넣어 쪄 먹는다. 물을 전혀 넣지 않고 육즙으로만 익혀낸 정통 찜 원리다. 솥이 귀하던 옛날에는 내장과 뼈만 제거한 상태로 가죽에 돌을 넣어 쪄냈다고 한다.

서북 유럽에서도 건조대구찜 루테피스크(lutefisk)를 즐겨 먹는다. 잔뜩 잡아놓은 대구를 바싹 말려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쪄서 먹는 요리다. 예전엔 불린 생선을 그냥 냄비에 넣고 쪄 먹었지만 요즘은 알루미늄 포일에 감싸 쪄낸다.

이처럼 한번 말린 재료를 조리해 먹을 때 찜이 가장 좋은 요리법이다. 에어프라이어나 오븐, 전자레인지가 없을 때, 생선 등 건조식품을 조리하기에 찜기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 영광굴비 중에서 ‘보리굴비’ 메뉴가 확실한 찜 요리인 것을 조리를 해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른다.

살펴보면 한식에는 은근히 찜 요리가 많다. 족발이나 오징어순대,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 모두 뒤에 ‘찜’ 자가 생략되어 있는 셈이다. 숙육(熟肉), 즉 수육도 찜으로 하는 곳이 있다. 물에 삶지 않고 찜기에 쪄 썰어낸 수육은 육즙이 빠지지 않아 더욱 부드럽다. 끓는 물보다 고온으로 더 짧은 시간에 쪄냈기 때문에 기름기나 풍미가 고기 내부에 제대로 서려 있다. 그저 물에 삶는 것보다 과학적으로 진일보한 방법이다.

협의나 광의의 찜 요리 모두 튀김이나 구이에 비해 원재료의 맛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는다는 측면에선 유사하다. 오랜 시간 열을 가했지만 정작 식탁에선 불을 놓고 끓이지 않아도 되니 여름을 보내고 다시 만나는 ‘찜통’ 더위란 딱 질색인 요즘에 좋다. 다양한 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홍어찜 = 홍어전집. 삼합부터 홍어탕, 홍어전 등 다양한 홍어 요리를 낸다. 이 집 홍어찜은 커다란 홍어를 4등분해서 쪄온다. 콩나물과 미나리 등을 얹은 홍어찜은 부드럽고 투실해 막걸리 안주로 딱 좋다. 경기 파주시 송학1길 67-17. 4만 원.

◇조개찜 = 택이네조개전골. 이름은 조개전골이지만 조개찜이다. 자작한 육수가 담긴 사각형 양철 냄비 위로 조개를 한가득 올려 팔팔 끓는 김에 쪄내는 방식이다. 수증기에 쪄내니 조갯살이 마르지 않고 끝까지 탱글탱글한 식감을 유지한다. 키조개와 홍합, 바지락, 개조개 등 조개 종류도 다양하다. 조개 육수에 칼국수 등을 넣어 먹으면 식사까지 해결된다. 서울 중구 다동길 24-4. 조개전골(2인) 5만 원.

◇딤섬 = 모트32. 홍콩 식도락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광둥(廣東)식 레스토랑 모트(Mott)32가 국내에 들어왔다. 딤섬을 위시해 화려한 홍콩의 식문화를 조용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 블랙 트뤼프와 메추리알을 넣은 ‘블랙 트러플 메추리알 샤오마이’등 국내에선 생소한 딤섬이 준비되어 있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176 2층. 딤섬 3개 2만1000원.

◇찜갈비 = 벙글벙글찜갈비. 갈비찜이 아니라 찜갈비다. 대구 중구 동인동에 찜갈비 골목이 있다. 양은냄비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뒤집어쓴 매콤한 찜갈비를 판다. 강력한 양념과 달리 육질은 부드럽다. 고기를 집어 먹고 화끈한 양념에 밥을 비벼 먹으며 갈비찌개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미리 매운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밥은 꼭 볶아 먹어야 한다. 대구 중구 동덕로36길 9-12. 2만 원.

◇순대편백찜 = 청와옥. 분명히 순댓국집인데 유난히 젊은 층 손님이 줄을 선다. 탱글탱글한 순대 속에 구수한 소가 가득 찼다. 팔각 편백찜(세이로무시)을 따로 낸다. 편백향이 우러나는 찜통 안에 순대와 내장, 채소 등 맛난 음식들이 정갈하게 들어앉았다. 정식으로 판매한다. 서울 중구 을지로3가 346-1. 편백정식(가마솥밥) 1만3000원.

◇백숙 = 송천휴게소. 가장 대표적인 찜은 닭백숙이다. 백숙(白熟)은 양념 없이 익혔다는 뜻이다. 토종닭백숙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집이 강릉에서 진부로 넘어가는 길 소금강계곡 옆 도로변에 있다. 커다란 토종닭을 삶아 각종 산나물 찬과 함께 차려낸다. 상추 쌈을 싸먹으라고 찐 감자를 내준다. 쌀밥 대신 감자를 먹었던 강원도 산골의 식문화다. 강원 강릉시 연곡면 진고개로 781-1. 6만 원.

◇아귀찜 = 오동동아구할매집. 마산에서도 원조로 꼽는 아귀찜 집이다. 꾸덕꾸덕 말린 건아귀를 쓰는 정통 마산식. 말린 아귀를 불려 쓰니 씹는 느낌이 좋다. 옛날식으로 된장을 밑 양념으로 써서 요즘의 아귀찜처럼 너무 맵지 않다. 생아귀찜도 팔고 아귀수육도 판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아구찜길 13. 2만5000원부터.

◇아귀해물찜 = 정이품. 해물을 곁들인 아귀찜을 내는 집이다. 낙지와 꽃게 등 제철 해물을 곁들인 푸짐한 비주얼이 압권이다. 껍질과 살을 절묘하게 잘라내 두둑이 넣어둔 생물 아귀의 살점도 투실하고 존득하다. 구수한 양념이 살 토막이든 콩나물이든 잘 배어들어 부드럽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대산로212번길 14. 생아귀해물찜 6만 원.

◇복곤이찜 = 철철복집. 곤이도 아니고 구이도 아닌데 메뉴는 ‘복고니구이’다. 실은 수컷 복의 이리(魚白)를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자체 수분으로 쪄낸다. 부드럽고 녹진한 맛이 일품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9. 3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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