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도시’ 꿈꿨던 잔혹한 갱들의 도시… 자본의 탐욕이 인간 압살

  • 문화일보
  • 입력 2022-09-19 09:12
  • 업데이트 2022-09-2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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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카고 도심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 지식카페 -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19) ‘빛과 어둠’ 시카고

가장 미국적인 도시이며 서부 개척의 상징… 새로운 기회·넘치는 일자리 찾으러 이민자들 개미 떼처럼 몰려들어
급속한 산업화로 빈부 격차, 마약·폭력 일삼는 마피아 득시글… 인간답게 살기위해 왔다 생존마저 위협받던 파멸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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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란 모두가 갖고 있고 나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시스터 캐리’의 여성 주인공 캐리 미버는 말한다. 이 작품은 미국의 자연주의 작가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대표작이다. 1889년 열여덟 살의 시골 처녀 캐리는 “도시 군중에 속하고 싶은 저항할 수 없는 욕망에 굴복”해 무작정 고향을 떠나 시카고로 향한다.

도시는 사람을 유혹한다. 빛나는 가로등, 웅장한 건물, 넘쳐나는 물건, 화려한 유리창, 잘 차려입은 사람들의 물결은 영혼을 홀리고 정신을 타락의 굴레에 떨어뜨린다. 캐리의 가슴에는 “도시를 굴복시켜 제 것으로 만들겠다는 모호하고 아득한 꿈”뿐이다. 부와 성공만 바라보는 이 꿈에 홀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파멸했던가.

성공을 얻으려 헤매는 캐리의 눈을 카메라 삼아 드라이저는 급속히 팽창하는 도시 풍경을 냉정하게 그려낸다. 미국 최초의 백화점이 앞다퉈 문을 열었을 정도로 화려한 도시 시카고는 ‘축산업의 제왕’이자 ‘호숫가의 여왕’이다.

‘도시는 역사다’에서 박진빈은 시카고를 “가장 미국적인 도시”라고 부른다. 이 도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1833년 처음 생겨났을 때 시카고 인구는 100명도 안 됐다. 그런데 1860년에는 약 11만 명이었고, 1880년에는 50만 명을 넘어섰으며, 1900년에는 170만 명에 달했다. 약 70년 만에 허허벌판이 마천루가 즐비한 ‘강철의 도시’로 변모했다. 시카고의 급성장은 역사상 가장 빨리 세계 패권을 거머쥔 젊고 강한 나라 미국의 정체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호수와 강을 끼고 자리 잡은 시카고는 서부 개척의 상징이었다. 1820년대에 건설된 이리 운하를 통해 뉴욕과 이어진 이 도시는 미국 중서부 평원에서 생산된 가축들과 곡물들이 몰려드는 ‘관문 도시’였다.

이민자들이 서부에서 움트는 새로운 기회와 넘치는 일자리를 좇아 개미 떼처럼 몰려들었다. 1871년 대화재로 도시 전체가 파멸적 타격을 입었을 때도 사람들의 발길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영국 역사가 벤 윌슨의 ‘메트로폴리스’에 따르면, “복잡하게 얽힌 전신선, 사방으로 뻗은 철도, 대형 곡물창고와 목재 하역장, 시끄러운 가축 사육장과 제철소, 공장 굴뚝으로 이뤄진 시카고의 풍경은 19세기 산업주의의 명백한 증거”였다. 목재 건축으로 세워진 ‘오래된’ 시카고가 대화재로 잿더미로 변한 후, 시카고를 뒤덮은 것은 강철과 콘크리트로 지어지고 승강기, 전구, 전신, 전화 등 전기로 작동되는 건물이었다. 목가적 미국은 사라지고, 산업적 미국이 들어선 것이다.

시카고는 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미래 도시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이 도시의 극적인 변화에서 산업혁명의 미래와 근대문명의 앞날을 읽었다. 1893년 ‘백색 도시’에서 열린 ‘콜럼버스 도착 400주년 기념 세계박람회’는 그 눈부신 증거였다. 박진빈은 이 박람회를 “미 제국의 등장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1890년대에 대륙의 서쪽 끝까지 영토를 확장한 후, 태평양으로 나섰다. 하와이를 점령하고, 필리핀 등 아시아 식민지 확보를 시작했다. ‘프런티어 정신’을 상징하는 도시 시카고는 무역 박람회를 통해 문명의 총화를 자기 안에 재현함으로써 “19세기 말엽 미국의 정신을 대표하는 곳”이 됐다. 무일푼의 촌뜨기로 시작해 “멋진 옷과 화려한 마차, 우아한 가구와 든든한 은행 계좌”를 가진 배우로 변신하는 캐리가 보여준 것처럼, 시카고는 “최고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캐리는 안락의자에 앉아 공허를 곱씹을 뿐이다. 화려한 산업도시 시카고는 “맹목적으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이 마지막에 이를 슬픔과 허무, 불행과 소외, 종말과 파탄의 증거였다. 사회 운동가 조사이아 스트롱이 경고했듯, 시카고는 사회적 다이너마이트가 쌓인 곳으로, 가난과 폭력, 오물과 유혈이 넘쳐나는 범죄와 암흑의 도시였다. 환경오염과 빈부격차가 명백한 증거였다.

저주받은 땅 ‘리틀헬’은 시카고의 어두운 지옥을 집약한 동네였다. 뿌연 연기로 뒤덮인 하늘, 비처럼 쏟아지는 검댕들, 제철소에서 분출돼 하늘을 붉은빛으로 물들이는 불똥들은 지옥을 재현했다. ‘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에서 소설가 애니 프루는 “시카고에서 평원으로 뿜어나오는 연기 덩어리” 탓에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동쪽 지역 공기까지 오염된다”고 말했다.

문명의 동력인 공장 주변은 무수한 판잣집, 쓰레기 덮인 거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쥐와 바퀴벌레가 인간과 뒤섞여 사는 이곳은 마약과 매춘, 폭력과 범죄의 온상이었다. 아일랜드 마피아, 폴란드 마피아, 이탈리아 마피아가 차례로 이곳을 장악해 범죄 행위를 일삼았다. 시카고는 알 카포네의 끔찍하고 악랄한 신화가 살아 숨 쉬는 잔혹한 갱들의 도시였다.

시카고 사람들은 돈만 생각했다. 이 대도시에는 놀랍게도 공원 같은 공공 공간도, 하수도 같은 위생 설비도 없었다. 심지어 물을 끌어다 먹는 곳과 하수를 방출하는 곳이 같았다. 강은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로 가득 차 견딜 수 없는 악취를 풍겼다. 우물은 오염돼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공기는 ‘죽음의 안개’로 덮여 폐를 썩게 했다. 시카고는 인간 욕망의 추구가 파멸의 되먹임을 낳는 ‘충격 도시’였다.

‘종달새의 노래’에서 윌라 캐더는 성공을 위해 시카고를 찾은 여성 성악가 티어 크론보그를 통해 인간을 괴롭히는 시카고 환경을 비판한다. “노래하는 사람은 항상 맑은 공기를 듬뿍 들여야 목소리에 깊이가 생긴다.” 그러나 시카고에는 노래하는 종달새가 필요 없었다. “그녀의 방은 온통 어둡고 축축했으며 곰팡이에다 카펫 아래에는 깊은 흙바닥이 있었고 벽도 더러웠다.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해 질 녘 도로 사이로 우뚝 선 시카고의 건물들. 게티이미지뱅크

시카고 축산 산업의 집결지인 패킹타운은 더욱 끔찍했다. 매년 도살된 가축 3000만 마리의 내장과 피가 거리 곳곳에서 썩어가고, 비가 올 때마다 씻겨서 오염 물질이 호수로 흘러들었다.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이질, 디프테리아 등이 창궐했다. 이 도시에선 인간이 오래 사는 게 가능하지 않았다. 생후 5년 이내 유아 사망률이 60%에 달했고, 기대수명이 26세에 지나지 않았다.

‘정글’에서 업턴 싱클레어는 리투아니아 이민자 가족의 파멸을 통해 미국 축산 산업의 끔찍한 위생 상태와 비인간적 노동환경을 고발한다. 건장한 몸집의 유르기스는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살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리라는 기대를 품고 아내와 가족을 데리고 시카고로 온다. 그러나 현실은 정글이다. 밀려드는 이민자 탓에 일자리를 얻는 건 하늘의 별 따기, 결국 그는 굶어 죽지 않으려고 비참할 정도로 낮은 임금을 받고 한 정육업체에 취직한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배가 찢어진 소는 물론, 이미 죽은 소도 섞여 있었다.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은 이런 소를 ‘다우너’라고 불렀다. 유르기스는 그 소들이 다른 고기들과 뒤섞여 매달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절뚝거리고 늙고 병든 소만 끌고 오는 것만 같았다.”

공장은 사기와 기만의 지옥이었다. 육류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든 것이 지옥처럼 썩었다”는 말을 달고 산다. 인간이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대량으로 도살되고, 화학 처리를 거쳐 멀쩡한 것처럼 보이도록 가공된 후 상품으로 팔려나갔다. 소설이 출판되자 미국 도축장과 육가공 공장의 위생 상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는 결국 ‘미국 식품위생법’과 ‘육류 검역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오직 돈만을 보고 달려드는 자본이 인간을 ‘개돼지’ 취급하지 않을 리 없다. “내가 돼지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네”라고 안도했던 유르기스는 건강도, 집도, 가족도 모조리 빼앗긴 채 길거리에 나앉아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시카고로 왔다 인간다움을 잃고 생존마저 위협받는 상황에서 사회의 다이너마이트가 작동하지 않을 리 없다. 1877년 풀먼 파업과 1886년 헤이마켓 폭탄 테러가 모두 시카고에서 벌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오염과 불결, 빈곤과 범죄, 부패와 악덕이 뿌리 박힌 구제 불능의 도시 시카고는 20세기에도 위태로운 번영을 지속했으나,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 창설에 반대해 벌어진 반세계화 시위에서 보이듯 미국 노동운동의 성지가 된다. 시카고는 자본의 탐욕이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압살하는 디스토피아의 상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날 시카고 문제는 전 지구적 과제가 됐다. 인류는 과연 기후 위기를 이겨내고, 파멸에서 벗어나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까. ‘충격 도시’ 시카고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문학평론가

■용어설명
백색 도시

1893년 세계박람회를 개최하려고 시카고는 호수 주변에 눈부시게 흰 대리석 건물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박진빈에 따르면, 고대 로마의 양식을 흉내 내 지어진 이 웅대한 건물들은 미국이 20세기의 로마제국임을, 뉴욕이 아니라 시카고가 새로운 제국의 심장임을 은유한다.

충격 도시

급속한 산업화와 인구 집중으로 인해 극심한 빈부 격차와 사회 기반 시설이 부족한 존재하지 않는 도시.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부유층과 더럽고 비참한 환경에서 굶주린 채 살아가는 빈곤층이 충격적으로 공존한다. 엥겔스는 최초의 충격 도시 영국 맨체스터의 비참한 환경에서 공산주의 혁명의 필연성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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