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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Who, What, Why 게재 일자 : 2022년 09월 21일(水)
국왕은 구시대 유물?…현대 민주시민도 ‘왕관의 무게’ 견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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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Why - 입헌군주제 유지되는 배경

英 국민 62% “군주제 계속돼야 왕가마저 없으면 국제위상 하락”

펠리페 6세 이끄는 스페인서도 “국민, 왕·왕비에 정신적 안정감”

엘리자베스 2세 거친 총리 16명...의회 등 상호견제속 정치적 역할

왕실 경제적 가치 107조원 달해...비용·편익만 따져도 ‘존재 가치’


영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8일 96세 나이로 서거했다. 영국은 큰 슬픔에 잠겼다. 여왕의 관이 일반인에게 공개됐던 런던 웨스트민스터 홀엔 조문 행렬이 최대 8㎞까지 이어졌고,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무려 13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과 왕족 500여 명은 19일 국장으로 거행된 장례식에 참석해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는 “어머니인 여왕을 본보기로 삼겠다”는 포부와 함께 새로운 영국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국왕이라는 개념이 21세기에도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70년이라는 여왕의 재임 기간 가려졌던 ‘입헌군주제’ 존폐 논란이 여왕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영국은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Kings reign but do not govern)’는 원칙을 바탕으로 입헌군주제를 유지해왔다. 입헌군주제에서 국왕은 국가의 형식상 수장일뿐, 실질적인 권력은 의회가 가진다. 다만 민주주의가 전 세계에 보편화한 가운데 국왕과 왕가는 곧 계급의 존재를 의미하며,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는 상황이다. 호주와 뉴질랜드 등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인정하는 14개국 영연방 국가에서도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도 “여왕 사망 이후 입헌군주제의 미래는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입헌군주제에 대한 지지는 아직 견고하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거브가 지난 5월 진행한 조사에서 ‘군주제가 계속돼야 한다’는 영국 국민은 62%에 달했다. ‘지도자 선출제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입헌군주제가 당장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고 보는 의견도 드물다. 그렇다면 이처럼 현대사회에도 입헌군주제가 유지되는 배경은 무엇일까.

◇국왕은 곧 국가의 상징…국왕에게서 정체성을 찾는다 = 뉴욕타임스(NYT)는 영국인이 여왕 죽음에 왜 이렇게 슬퍼하는지에 대해 “여왕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여왕은 격동의 세계사에서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1945년 19세였던 여왕은 “조국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동서 냉전이 본격화하는 시점인 1952년 왕위에 올랐다. 이후 소련의 붕괴와 대영 제국의 쇠퇴를 지켜봤다. 말기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까지 경험했다. 여왕을 거친 영국 총리만 16명에 달한다. 영국 BBC의 “여왕이 떠나며 역사의 순간이 멈췄다”는 표현은 영국인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국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여왕의 존재는 곧 영국인의 정체성과 같았다는 의미다.

독일 도이체벨레(DW)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DW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조차 군주제 폐지 여론이 소수에 그치는 이유는 영국 왕가가 보유한 브랜드 때문”이라며 “경제 침체를 겪는 영국에서 왕가마저 빠지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분석했다. 이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펠리페 6세가 이끄는 스페인도 최근 입헌군주제 폐지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유로뉴스는 “스페인은 군주제와 공화국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군주제가 없어질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며 “스페인 국민은 왕과 왕비에게서 정신적인 안정감을 얻는다”고 전했다.

◇입헌군주제도 민주주의의 한 양태…대통령제의 폐단을 막는다 = 영국 데일리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여왕은 90세 생일까지 117개국 103만2513마일(약 166만1668㎞)을 여행했다.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여왕은 미국 대통령만 총 13명을 만났는데, 모두가 그 앞에서 제대로 행동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여왕이 단순히 명목상의 군주 역할만 수행하진 않았다고 평가했다.

여왕은 영국 총리와의 신경전도 마다치 않았다. 특히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의 껄끄러운 관계는 유명하다. 대처 전 총리가 여왕에게 매주 화요일 주례 회동에서 가르치는 말투로 정책을 설명했고, 여왕은 이에 대처 전 총리가 주례 회동에 약속 시각보다 15분 먼저 오는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시에 나타나 대처 전 총리를 기다리게 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군주제 폐지를 주장하며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전통까지 깼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에겐 2011년 손자 윌리엄 왕자 결혼식에 초청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름의 복수를 했다.

NYT는 “여왕은 매주 총리에게 자신의 견해를 은밀하게 알렸다”며 “토론하고 역정을 내면서 더 나은 결론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입헌군주제가 여당과 야당, 의회와 총리 등 다양한 상호 견제로 운영되는 가운데 왕실 또한 정치의 한 축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영국 정치에 능통한 한국 측 인사는 문화일보에 “왕실은 각종 현안에 대한 정보 파악이 다 돼 있다”며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군주”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는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한이 부여돼 폐해를 낳는 대통령제와 비교되기도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70년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기로 한 스웨덴에서도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의 막후 역할이 상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 왕실 가치는 107조 원…경제를 뒷받침한다 =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가 입헌군주제를 포기하지 못하는 데엔 경제적인 문제도 한몫한다. 국제 브랜드 가치 평가 기관인 브랜드파이넌스(BF)가 201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 왕실이 지닌 가치는 총 675억 파운드(약 107조 원)에 달한다. BF는 영국 왕실 자산과 정량화할 수 없는 왕실 브랜드의 영향력 등을 모두 고려해 추산했다고 밝히며 “왕실 가치의 대부분은 유형자산 외에서 창출된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관광업이다. 윈저성과 버킹엄궁 등 왕가와 관련한 관광 산업으로 영국이 매년 벌어들이는 돈은 5억5000만 파운드(8725억 원)로 집계됐다. 영국 왕실은 또 미디어 산업에 5000만 파운드(793억 원) 규모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국 왕족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얻어낸 무역 기여분 또한 매년 1억5000만 파운드(2379억 원)에 이른다. BF는 “영국 왕실의 존재는 국가 경제에 무조건 이득”이라며 “단순한 비용과 편익 분석을 해봐도 왕실은 영국 경제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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