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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Deep Read 게재 일자 : 2022년 09월 22일(木)
국내정치에 지배당하는 한·일관계…‘합의의 총량’ 키우는 게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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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장관(오늘쪽)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진창수의 Deep Read - 한·일관계와 정상회담

日 ‘아베 국장’등 놓고 국정지지율 뚝, 韓도 대일 강경파 득세… 정상회담 했지만 현안 접근 못해
협상은 ‘윈셋’키우는 기술… 양국 정부, 의지 갖고 ‘비준 컨센서스’최대화할 관계개선 로드맵 짜야



외교와 대외전략은 국내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불행한 역사를 갖는 한·일 두 나라의 관계는 각각의 국내정치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는 현재의 난국을 설명하기 힘들다.

어렵사리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졌지만 강제징용 등 현안과 관련한 논의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여전히 견해차가 컸다. 이를 극복하려면 두 나라 정상들의 의지만으로는 안 되고, ‘합의의 총량’, 즉 ‘윈셋’(win set·국내 비준을 얻을 수 있는 모든 합의의 집합)을 키우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다가온다.

◇정상회담했지만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21일 정상회담을 했다.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2년 9개월 만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후 1시 23분(현지시간)부터 유엔총회장 인근에서 회담을 가졌다. 30분간의 약식회담이었다.

회담은 진통 끝에 이뤄졌다. 대통령실은 앞서 지난주 순방 사전 브리핑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양국이 합의했다고 발표했고, 이에 일본 정부가 “결정된 게 없다”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날 회담 소식도 회담 시작 2분 후에야 대통령실 공지로 알려졌다.


기시다 정권의 “결정된 바 없다”는 반박은 명분이었다. 실제론 강제동원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과 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직면할 수밖에 없는 국내 비판의 대응에 노심초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국장이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기시다 정권이 먼저 나서 부담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심리가 작용하기도 했다.

회담 후 우리 대통령실은 “두 정상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등 상호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양국이 국제사회와 함께 연대해 나가자는 데 공감하고 협력하기로 했다”고 했다. 사실 한·일 정상회담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양국 정상의 관계 개선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현안 해결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관계 개선의 돌파구는 만들 수 있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등 양국 간 현안을 두고는 견해차가 여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정부가 양국 관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외교 당국 간 대화를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 데에서 이는 읽힌다. 뉴욕과 한·일 외교가에서는 “두 나라가 넘어야 할 현안과 장애물을 여전히 많이 안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비준 컨센서스

이번 한·일 정상회담까지 이르게 된 경로를 되돌아볼 때 한국이나 일본이 얻은 실익은 크지 않아 보인다. 약식회동이었고 현안 논의도 거의 없었다. 사실 양국이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것에 일찌감치 공감했던 만큼, 회담 전의 논란을 물밑 접촉과 소통 등을 통해 잠재웠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로버트 퍼트넘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국가 간의 협상은 협상자(국가·정부)들의 흥정과 국내의 잠정 합의(비준)를 둘러싼 ‘양면 게임’(two-level games)이라고 주장했다(1988년). 퍼트넘 교수는 ‘윈셋’의 크기가 협상을 좌우한다고 봤다.

그의 논의를 한·일 관계에 대입해보면 한·일 양국이 각각 국내에서 합쳐지는 ‘윈셋’이 매우 적어 협상 자체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윤 정부 국정 지지율이 낮은 데다 대일 강경파가 득세하고, 일본 또한 기시다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대한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한·일 두 나라의 현안 해결을 포함해 양국 관계의 미래를 밝게 볼 수만은 없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실 윤석열 정부는 그 어느 정권보다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다. 그런데 국내 정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고 일본과 적극적인 협상을 벌여야 하는 국면이지만, 피해자 단체들의 대일 강경 목소리는 높아지기만 한다.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프레임에 걸려 국정 지지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 추진을 놓고 ‘대일 구걸외교’라는 비판이 이는 것도 부담이다.

◇어려운 해법

일본 역시 국내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기시다 총리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앞으로 황금의 3년을 보낼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지만, 2개월 만에 정권의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그의 지지율은 29%까지 급락했다(마이니치신문 9월 18일자 여론조사). 일본에서 총리 지지율이 30% 이하로 떨어지면 차기 정권을 위한 권력투쟁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기시다 내각 지지율의 하락 이유는 첫째 아베 국장 논란, 둘 구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제, 셋 고물가에 의한 민심 이반이다.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아베 국장 반대는 8월 50%에서 56%로 늘어났다. 국장을 반대하는 응답자 중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비율이 67%로 여론조사 평균 47%보다 높다. 이런 추세는 총리의 정국 구심력 저하로 연결돼 자민당 내에서도 기시다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국민은 기시다 내각의 대응이 부족하고 임기응변식이라고 보지만 자민당 내 우파들은 독단을 문제 삼는다.

이러한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한 세력이 대한 강경파들이다. 그들은 최근의 정치적 약세를 만회하기 위해 한·일 정상회담을 기시다 정권 공격의 소재로 이용 중이다. 만약 기시다 총리가 참의원 선거 승리 이후 정국 장악에 성공했다면 우리 대통령실의 ‘한·일 정상회담 개최’ 사전 발표는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는 27일로 예정된 아베 국장의 고비를 넘기더라도 기시다 총리로서는 현재의 어려운 정치적 국면을 타개할 묘안이 없다. 유일한 대안이 있다면 ‘조기 중의원 선거’를 치르는 것인데, 이 또한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미래를 보장할 수단은 되지 못한다.

◇‘합의 총량’ 키우기

한·일 두 나라의 관계 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도자들의 의지이다. 양국 정상이 관계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질 때 현안 해법과 관련한 동력은 커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나 미·중 전략경쟁에 따른 동북아 질서의 불투명성도 한·일 양국의 협력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정치가 강경론자들에게 장악되면 관계 개선의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한국과 일본의 정부와 지도자들이 국내외의 모든 긍정적 흐름과 ‘윈셋’, 즉 ‘합의의 집합’을 어떻게 만들어낼지에 천착해 관계 개선의 로드맵을 짜야 한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 현대일본학회 회장



■ 용어 설명

‘윈셋’은 미국의 정치학자 겸 교수 퍼트넘의 이론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국내 비준을 받을 수 있는 합의의 집합. 국가 간 협상도 자국의 윈셋과 상대국의 윈셋이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만 성립.


‘아베 국장’ 논란은 일본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숨진 아베 국장 문제를 둘러싼 논란. ‘통일교와의 밀착설’과 ‘국가주의 반대론’ 등을 타고 분신사태까지 일어나는 등 아베 국장 반대 운동이 거셈.


■ 세줄 요약

정상회담했지만 : 어렵사리 한·일 정상회담을 했지만 현안 관련 논의는 진전을 이루지 못함. 정상회담 사전 공개가 논란이 된 데 이어 현안에 대한 견해차는 여전함. 국가의 대외전략은 국내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

비준 컨센서스 : 국가 간의 협상은 국가·정부의 흥정과 국내의 잠정 합의를 둘러싼 ‘양면 게임’임. 즉 합의의 집합인 ‘윈셋’의 크기가 협상을 좌우함. 한국도 일본도 국내 상황이 어려워 현안 해법을 둘러싼 협상이 어려움.

합의의 총량 키우기 : 한·일 두 나라의 관계 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도자들의 의지임. 대외 안보 환경도 중요한 역할.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되고, 결국 ‘합의의 총량’을 키우는 일이 절실한 과제로 다가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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