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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경일기자의 여행 게재 일자 : 2022년 09월 29일(木)
70년만에 열린 ‘금지된 땅’ 최북단… 금강산 능선이 눈물나게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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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 ‘DMZ 평화의 길’ 구간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1052고지’에서 바라본 금강산. 가장 뒤쪽에 바위로 이뤄진 봉우리가 금강산의 산자락이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번거로운 절차에도 불구하고 거기까지 갈 이유는 충분하다.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인제·양구 DMZ 평화의 길

강화~고성 접경지 11개 코스 524㎞ 일제히 개방
인제 1052고지 중턱, 하늘 달리는 듯한 ‘을지 스카이웨이’ 만나
천연기념물 산양 비롯 담비·너구리 출몰 ‘생태의 보고’

양구 두타연 구간, 숲길 걸으며 때묻지 않은 자연 만끽
압권은 수입천 물길 옆 탐방로… 조각공원·출렁다리도 있어
DMZ 자생식물원엔 철책선 너머로 본 가을꽃 총집합


인제·양구=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인천 강화에서 강원 고성까지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 11개 코스 ‘평화의 길’ 524㎞가 열렸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다 코로나19까지 겹쳐 DMZ는커녕 접적(接敵) 지역 출입마저 통제된 지 3년 만입니다. 이번에 열린 길은 닫았다가 재개방하는 곳도 있지만, 70여 년 만에 처음 방문객을 받아들인 구간도 있습니다. 강원 인제와 양구의 DMZ도 오랜 준비 끝에 처음 문을 연 곳입니다. DMZ 평화의 길을 걷는 내내 금지된 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 그리고 경관에 대한 기대가 뒤섞였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전쟁이 지나가면서 젊은이들의 피가 뿌려진 길을 걷고 있는데 왜 안 그랬겠습니까. 마침 국군의 날이 코앞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이 한발 앞서 지나가는 DMZ에는 ‘지뢰’ 팻말 너머로 가을꽃이 한창입니다. 구절초와 용담, 쑥부쟁이, 벌개미취…. DMZ 평화의 길을 걷고, 철책선 인근의 식물을 모아놓은 양구의 국립 DMZ 자생식물원을 따로 찾아가게 된 이유입니다.

# DMZ의 고지에서 보는 금강산

‘비무장지대(DMZ)에 무슨 볼거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하자. 인제 DMZ 평화의 길이 당도하는 최북단의 방문지는 ‘1052고지’다. 1052m란 해발고도에서 고지의 이름을 땄으니 무명(無名)이나 다름없는 고지다.

1052고지 정상에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6·25전쟁 막바지에 을지부대 장병들이 북한군 2개 대대를 전멸시키고 고지를 확보한 전공을 기념하는 전적비다. 전투가 벌어진 고지는 사실 전적비가 세워진 1052고지에서 한참 더 북쪽에 있다. 전투가 벌어진 그 자리가 아니라 뒤로 물러난 여기다 전적비를 세운 이유는, 실제 전투 장소는 군인들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좀 더 많은 이에게 전적을 알릴 것인가.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후자를 택한 결과다.

그렇다면 왜 여기를 인제 DMZ 평화의 길의 종착지로 정했을까. 이유는 분명하다. 1052고지에서는 금강산이 보인다. 그냥 흐릿하게 실루엣으로 보이는 게 아니다. 뾰족뾰족한 내금강의 바위 봉우리들이 하나하나 선명하다. 이 길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1052고지에서 보는 금강산’이다. 전적비는 전투의 영웅담을 증거하고 있지만 탐방객들은 그 자리에서 금강산의 빼어난 경관을 보고 있는 셈이다.

금강산의 내금강을 이렇게 볼 수 있는 자리는, 단언컨대 여기 말고는 없다. 남북화해의 시기에 금강산을 드나들기도 했지만 산은 가까이 다가선다고 해서 더 잘 보이는 건 아니다. 가까운 숲이야 다가가서 보면 더 선명하지만, 유장한 산세는 멀찌감치 물러나야 더 잘 보이는 법이다. 금강산이 보인다는 곳은 여러 곳이지만, 막상 가보면 희미한 실루엣이 고작이었다. ‘저게 금강산’이란 설명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런데 여기 1052고지는 다르다. 여기서는 금강산이 ‘진짜 보인다’.

DMZ 평화의 길 거의 모든 구간의 철조망에 걸려있는 지뢰 표시.

1052고지 40㎞ 반경 안에는 북의 금강산과 남의 설악산이 있다. 북쪽으로는 금강산이, 뒤돌아 남쪽을 보면 설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와 높이로 겨루면 금강산의 ‘완패(完敗)’다. 금강산과 설악산까지의 거리는 엇비슷하지만, 금강산이 좀 더 멀다. 높이도 금강산(1638m)이 설악산(1708m)보다 70m가 낮다. 금강산이 설악산보다 더 멀고, 더 낮다는 얘기다. 그런데 희한한 건 1052고지에 올라보면 더 멀고 낮은 금강산의 존재감이 설악산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1052고지에서 설악산은 부드러운 능선의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설악산은 ‘거기 있다’는 감회 정도다. 하지만 금강산의 시각적 느낌은 전혀 다르다. 이리 먼 발치에서 보는데도 온통 바위로 이뤄진 산정이 장엄하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국사봉, 호롱봉, 백마봉, 차일봉, 비로봉, 장군봉, 채하봉, 소반덕, 구전선암에 이르기까지 금강산의 봉우리를 하나하나 짚을 수 있다. 대기가 유난히 청명하고 맑은 가을날이어서 그랬지만, 이즈음에는 그런 날들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꼭 여기가 아니어도 좋다. ‘DMZ 평화의 길’이 가진 매력의 팔 할 정도가 ‘북쪽을 향하는 조망’에 있다면, 그 길을 걷기에 요즘처럼 적당한 시기는 없다.

# 마을 주민이 만들고 안내하는 DMZ

금강산을 바라보는 감회는 다른 산과는 사뭇 다르다. 예로부터 금강산은 우리에게 ‘그냥 산’이 아니었다. 수많은 선비의 유람의 공간이자 구도자들이 저마다 화두의 해답을 찾아 드나들던 금강산은, 분단 이후에는 통일의 염원을 투사하는 공간이 됐다. 벌써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남북화해의 시기, 누구나 신청만 하면 금강산에 갈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먼발치에서 그리워하며 금강산을 본다. 긴장과 대치 속에서 통일의 기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데, 과연 그곳을 밟을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강원 인제 ‘DMZ 평화의 길’과 다른 길의 차이는 지역 주민들이 주축이 돼 직접 여행을 만들고 안내하고 진행한다는 것이다. 인제 서화면 서화리 마을 주민들이 ‘설악금강 서화마을’이란 사단법인을 설립해 DMZ 평화의 길 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 주민 주도로 DMZ 평화의 길을 운영하는 곳은 여기 인제가 유일하다. 그 결과 주민들의 진심 어린 환대와 동행, 그리고 경험이 담긴 공간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DMZ 평화의 길 탐방의 집결지 겸 출발지인 서화면은 남과 북의 접경지대이자 금강산으로 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여기서 4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으로 내달리면 내금강으로 바로 이어지고, 고성재 고개를 넘어가면 외금강이 지척이다. 6·25전쟁 전 서화면에는 모두 8개의 법정 리(里)가 있었는데, 이 중 3개의 리가 전쟁을 거치면서 북한 땅이 됐다. 1052고지에서 내려다보이는 오목한 분지의 마을 장승리도 그렇게 북한 땅이 돼버린 곳이다.

1052고지 앞에서 금강산 전경을 해설하던 서화리 토박이 김종률(76) 해설사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흑백사진 몇 장을 꺼내 보여줬다. 6·25전쟁 전 인제 서화면에서 한의원을 했다는 아버지가 금강산 구룡연에 유람갔다가 찍은 사진이었다. 배경의 폭포 물줄기가 시원해 보였다. 함께 보여준 다른 몇 장의 금강산 유람 사진도 사료적 가치가 느껴질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김 해설사는 사진과 함께 서화면 주민들이 금강산으로 소풍 다니던 시절의 생생한 얘기를 들려줬다.

김 해설사는 DMZ 지척인 서화면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왔지만, 1052고지는 이번 ‘DMZ 평화의 길’ 개방을 앞두고 탐방해설을 준비하면서 밟은 게 처음이라고 했다. 그동안 민통선 너머는 자주 드나들 기회가 있었지만, 이만큼 DMZ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어갈 수 있게 된 곳이, 누구에게는 지척에 두고도 가볼 수 없는 곳이었던 셈이다.

# 배고픈 다리와 을지 스카이웨이

인제 DMZ 평화의 길 전체 탐방 구간 거리는 왕복 46㎞에 달한다. 대부분 구간은 차를 타고 이동하고, 두 발로 걷는 구간은 1.5㎞로 짧다. 다른 DMZ 평화의 길도 대개 사정은 비슷하다. 인제 DMZ평화의 길에서 걷는 구간은 흙길이 아니고 왕복 2차선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걷기 코스는 시야를 막는 절개지 벼랑 아래로 이어진다. 시야가 터진 쪽 길옆으로는 철제 펜스가 세워져 있다. 조건이 이래도 경관만 좋다면야 불만이 없겠는데, 기대와는 달리 남쪽을 바라보며 걷는 데다가 길 위에서 보는 풍경이 시시하기 짝이 없다.

재미없는 길이 만들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본래 마을 주민들은 DMZ 통문과 통문 사이 한 구간을 걷는 도보 코스를 준비해왔다. 좀 가파르긴 하지만 걷는 내내 북쪽으로 시야가 시원하게 트인 길이었다. 코스를 정하고 프로그램까지 구상해서 도상연습까지 마쳤는데 DMZ 구역을 관할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에서 탐방객의 통문 출입 불허조치가 떨어졌다. 지금의 재미없는 걷기 코스가 정해진 이유다. 1052고지에서의 금강산 전망은 훌륭하지만, 걷기는 ‘금지된 공간을 걷는다’는 의미 외에는 별것이 없으니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

산길을 달리는 승합차 안에서 보는 경관은 기대보다 낫다. 인제 DMZ 평화의 길은 대부분 군 보급로다. 을지부대의 이름에서 따서 붙인 ‘을지로’도 있고, 강원 고성의 지명에서 가져다 붙인 ‘고성길’도 있다. 김 해설사는 여기서 군 복무를 하던 1986년까지 기마중대가 있었다고 했다. 기마중대의 임무는 말을 타고 전투를 벌이거나 의전을 하는 게 아니라 부식 보급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길이 험하고 차가 귀해서 말과 마차로 부식을 옮겼다는 얘기다.

굽잇길을 돌며 고도를 높이던 차가 1052고지를 향해 산 어깨쯤의 높이까지 올라가면 탁 트인 하늘과 그 아래 진초록의 산자락이 펼쳐진다. 마치 하늘을 달리는 듯한 구간이다. 군인도 ‘보는 눈’은 같은지 군부대에서 길옆에다 돌비석에 길 이름을 지어 새겼다. ‘을지 스카이웨이’다. ‘을지’는 부대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스카이웨이’는 서울 북악스카이웨이에 빗댄 듯하다. 하지만 풍경의 장쾌함으로 따진다면 어디 감히 북악스카이웨이가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이번에는 가장 공감이 갔던 다리 이름 얘기. 인제 DMZ 평화의 길에 개울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그 다리가 ‘배고픈 다리’다. 병사들이 거기를 걸어서 지날 때쯤이면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1052고지로 가는 길의 딱 중간쯤에 있으니 그럴 법했다. 누구 하나의 작명만으로 이름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터. 순전히 군인들의 공감으로 지어지고,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이름이다. 이쪽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며 꼬박 37개월을 근무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문서 연락병을 하면서 이 다리를 수없이 건너다녔을 텐데, 이 다리를 건너면서 배가 고팠을까.

# 가까워진 DMZ와 더 멀어진 두타연

다른 지역의 DMZ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이곳 인제 DMZ 구간도 생태의 보고다. 사람의 간섭이 없는 원시림 속에서 야생의 생명이 살아가고 있다. 4년 전 이곳 인제 DMZ 구간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이 무인카메라에 촬영된 적이 있다. 목격담도 하나둘이 아니다. 몇 해 전 서화리 이장도 민통선 안에 농사를 지으러 들어갔다가 반달가슴곰과 딱 마주쳤는데, 몸이 덜덜 떨려 사진 한 장도 못 찍었단다. 멧돼지와 고라니는 물론이고, 담비나 너구리도 자주 출몰한단다. 깊은 산속에서도 아주 드물게 보이는 천연기념물 산양을 이곳 주민들은 숫제 ‘동네 개’ 취급이다. 김 해설사는 ‘이른 아침에 인제에서 양구로 가는 지방도로 구간에서 도로로 내려온 산양을 한두 마리쯤 볼 수 있다’고 했다.

양구 두타연 조각공원에 설치된 조형작품 ‘소원의 항아리’.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앞두고 금강산에 개국의 염원을 담은 발원 사리구를 묻었다는 이야기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그의 말대로 인제에서 453번 지방도로를 타고 양구까지 달렸다. 길에서는 고라니 한 마리 볼 수 없었지만 적막하다 싶을 정도로 호젓한 길 위에서 차츰 물들어가는 가을 색을 만끽할 수 있었다. 양구에도 DMZ 평화의 길이 있다. 두타연을 지나 하야교까지 가서 거기서 통문을 통과해 평화 쉼터까지 1.35㎞를 걷는 코스다. 이 길은 조망이 아예 없다. 숲길을 걷는 게 전부다. 군사분계선에 좀 더 다가섰다는 의미 외에는 별다른 감상을 느끼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도 여기를 추천하는 건 잘 다듬어진 두타연 탐방로 때문이다.

두타연 탐방로는 사전출입 신청만으로 출입할 수 있다. 시간과 인원 제한, 해설사 동행이 엄격하게 전제되는 ‘DMZ 평화의 길’ 탐방보다는 신청도 허락도 쉽다. ‘허가’보다는 ‘사전 출입신청’의 개념이랄까. 그러니 두타연 탐방로를 가보겠다면 굳이 DMZ 평화의 길 탐방을 예약하지 말고, 두타연 사전출입신청만 하는 것이 좋겠다.

강원 양구의 명소인 두타연. 과거에는 신원 확인만으로 쉽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사전 예약을 거쳐야 방문할 수 있고 정해진 시간 동안만 머물 수 있다.

사실 두타연은 과거에는 당일 현장 신원확인만으로 자유롭게 드나들던 곳이었다. 그런데 아프리카돼지열병에다 코로나19가 겹치고,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출입 절차가 엄격하게 바뀌었다. 사전 출입허가를 받아야 하는 데다 정해진 입장시간에 신청자들이 함께 들어가야 하고 체류시간도 3시간으로 제한했다. 탐방객이 출입하는 탐방로 구간에 군부대나 이렇다 할 보안시설이 전혀 없는데도 그렇다. 얼핏 불필요해 보이는 제한과 규제가 마뜩잖지만, 불만을 터뜨리기보다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을 바꾸는 게 마음이 편하다. 번거롭고 까다로운 출입절차로 두타연 입장 인원이 크게 줄었다. 두타연 주변에서 하야교까지 가는 산책로도 거의 비어 있다시피 하다. 엄격한 통제와 절차 ‘덕분에’ 출입신청을 하고 나면 마치 전세 낸 것처럼 드넓은 공간에서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 DMZ의 가을꽃, 소도시 산책하는 맛

두타연은 이른바 구태의연한 느낌의 ‘안보 관광지’를 뛰어넘어 빼어난 경관부터 공간의 의미까지 두루 갖춘 곳이다. 맑은 계곡물이 쏟아지는 폭포 아래 두타연의 정취도 좋지만, 잘 다듬어낸 주변의 조각공원이며 출렁다리 등도 훌륭하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수입천 물길을 따라 평탄하게 이어진 생태 탐방로다. 이 길이 얼마나 걷기 좋은지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앞으로 나아갈 정도다. 민통선 너머 수입천의 맑은 물과 싱그러운 공기야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게다가 두타연 일대는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꼽히는 ‘단장의 능선’과 ‘피의 능선’ 사이에 있어 전쟁에 바친 목숨과 평화의 가치가 주는 숙연함까지 자연스럽게 깃들어 있다.

두타연 탐방로를 걷겠다면 하야교 삼거리까지만 들어가야 한다. 거기까지 다녀오려면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방문객들에게 주어진 제한시간 3시간을 알차게 써야 거기까지 다녀올 수 있다는 얘기다. 더 들어갈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시간을 지키기 어렵다. 트레킹은 오른쪽으로 수입천 물길을 끼고 넓은 길을 따라 하야교까지 곧바로 간 뒤에, 돌아올 때는 수입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다니며 샛길로 돌아오면 된다. 길이 간명해서 지도를 보지 않아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갈 때보다 이렇게 돌아올 때의 길이 훨씬 더 운치 있다.

양구에는 국립수목원 DMZ 자생식물원이 있다. 양구 펀치볼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DMZ 자생식물원은 DMZ의 식물과 멸종위기에 놓인 북방계 식물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전시하는 공간이다. DMZ 평화의 길에서 보았던 가을꽃들은 모두 이곳에서 볼 수 있다.

DMZ 평화의 길에서 만난 야생화. 왼쪽부터 용담, 참취, 미역취, 세잎꿩의비름.

자생식물원의 정원은 다채롭다. 군사분계선 통문을 재현한 구조물을 세우고 전쟁이 지나간 자리 위에 피어나는 풀꽃과 나무를 주제로 꾸민 ‘워(War)가든’도 있고, 식물원이 들어서기 전 누군가의 경작지였던 곳의 흔적을 그대로 놓아두고 세월이 쌓여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미래의 숲’도 있다. 습지원과 야생화원에는 지금 가을꽃들이 온통 만발했다.

양구읍은 여느 전방도시라면 으레 떠올리는 삭막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작은 도시지만 곳곳에 작은 공원을 조성하고 녹지를 만들고 예술작품을 넣었다. 대로변에는 양구 출신 국민화가 박수근의 그림을 벽화로 그리고, 작품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양구 백자를 알리는 조형물도 곳곳에 세워져 있다. 그 덕분에 도시가 어쩐지 미술적인 느낌이다. 도시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훌륭한 커피를 파는 커피집도, 근사한 디저트를 파는 카페도 있다. 대도시에서 온 여행자라면 작은 소도시를 느긋하게 돌아보며 뜻밖의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 ‘평화의 길’ 가보려면
DMZ 평화의 길은 경기 강화와 김포, 고양, 파주, 연천, 강원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등 DMZ 접경지역 10곳에 조성됐다. 장소는 10곳이고 코스는 11곳인 건 고성의 DMZ 평화의 길이 A코스와 B코스 두 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DMZ 평화의 길 탐방에 참가하려면 한국관광공사의 두루누비 사이트 평화의 길 홈페이지(www.durunubi.kr/dmz-main.do)를 통해 방문신청을 하면 된다.

보통 하루 탐방은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두 번이고, 한번 탐방에 참가하는 인원은 최대 20명까지다. 방문확정 인원이 4인 미만이면 탐방이 취소되고, 방문신청자가 배정 인원을 넘어서면 무작위 추첨을 거쳐 당첨자에게만 참가기회를 준다. 인원 미달이나 취소 인원이 발생한 경우에는 추첨 없이 바로 예약이 확정되기도 한다. DMZ 평화의 길 탐방 참가비는 1만 원. 탐방이 끝난 뒤 참가비 전액을 지역 상품권 등으로 환급해준다.

■ 북한군이 보고 있다
인제 DMZ 평화의 길 끝의 1052초소에서는 정면으로 북한의 무산(1319m)이 보인다. 무산에는 남쪽을 감시하는 북한군의 주요 기지가 있다. DMZ 평화의 길에 동행했던 서화마을 한 주민의 설명. “원통에서 서화리로 고개를 넘어올 때 무산 기지의 북한군들이 여러분이 타고 온 차의 번호판을 식별하고, 차에 몇 명이 타고 있는지도 확인했을 겁니다. ” 군사분계선 코앞까지 와 있다는 게 비로소 실감 나는 순간이다.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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