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쫓긴 음악 천재… 눈물로 쓴 최후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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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09-29 09:05
업데이트 2022-09-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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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모차르트 ‘레퀴엠’

병고·생활고 시달리던 말년에
교수 연봉 5배 사례 받고 작곡
작업중 사망… 엄숙한 미완성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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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다른 어떤 작품도 쓰지 않고, 오직 현악 4중주와 레퀴엠만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모차르트는 영원한 명성을 얻는 데 충분했을 것이다.” 하이든(1732∼1809)의 말이다. 레퀴엠 중 가장 유명한 곡인 모차르트(1756∼1791)의 ‘레퀴엠’(Requiem, D minor. K. 626)은 그의 최후의 작품이자 미완성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묘사됐듯이 1791년 병고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모차르트에게 검은 옷을 입은 익명의 사내가 찾아와 파격적인 금액 50두카텐(당시 국제 통화로 사용된 금화)을 제시하며 레퀴엠의 작곡을 의뢰한다.(당시 대학교수의 연봉이 약 10두카텐이었다.) 단, 어떤 곡을 작곡했는지, 누가 의뢰했는지 절대 누설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검은 옷의 사나이는 빈 남서쪽에 있는 슈투파흐의 영주였던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의 하인이었는데, 백작은 스무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추모할 목적으로 레퀴엠을 주문했고, 후에 그것을 자신이 작곡했다고 하면서 1793년 자신의 지휘로 연주했다. 18세기에는 권력자들의 이런 파렴치한 행태가 비일비재했다. 당시 모차르트는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와 ‘마술 피리’의 초연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었지만 레퀴엠 의뢰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산더미처럼 불어난 빚 때문이었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몸 상태였지만 모차르트는 ‘마술피리’의 초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퀴엠 작곡에 착수한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결국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완성하지 못한 나머지 부분은 제자인 쥐스마이어(1766∼1803)에 의해 완성됐다. 마치 저승사자처럼 검은 옷을 입고 찾아온 이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레퀴엠이 모차르트 자신을 위한 장송곡이 된 셈이다.

모차르트 레퀴엠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제8곡 ‘눈물의 날’(Lacrimosa)이다. 이름난 음악가였지만 말년의 모차르트는 건강과 금전 상태가 좋지 않았다. 1791년 12월 4일 모차르트는 친구들과 함께 당시 작곡 중이던 레퀴엠의 ‘눈물의 날’을 연습하던 도중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병마와 싸우며 빚을 갚기 위해 쉴 새 없이 악상을 쥐어짜야만 했던 천재의 비통함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일까. 모차르트는 ‘눈물의 날’의 첫 여덟 마디만 남긴 채 다음 날 숨을 거둔다. 모차르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눈물의 날’은 전체적으로 중후하고 엄숙한 느낌이며 애통함이 정점에 이르는 곡이다. 서서히 상승하고 다시 서서히 하강하는 선율은 태어나고 뜨고 지는 인간의 삶을 묘사하는 듯 여운을 준다.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는 말 이외의 표현이 불가능한 곡이다.

악장의 끝에 레퀴엠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등장하는데 이 선율은 그림자를 드리우듯 어둡고 숙연하다. 소멸돼 가는 한 생명, 죽음을 상징하듯 숙연한 선율은 갑자기 밝은 분위기의 장조로 바뀌며 반전이 일어난다. 마치 하늘에서 한 줄기 밝은 빛이 내려오듯 밝고 성스러운 느낌의 마지막 구절 ‘아멘’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의 애통함에 그치지 않고 성스러운 희망과 구원의 불씨로 장중한 대미를 장식한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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