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사색의 즐거움

  • 문화일보
  • 입력 2022-09-30 11:57
  • 업데이트 2022-09-3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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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사색은 신이 인간에게 준 능력
상상력과 함께 근원적 에너지

과학자들의 발견이나 발명도
모두 사색에서 출발해 나온 것

사색의 즐거움을 모른다면
인생의 중요한 부분도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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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사색하는 존재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신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왜 신은 인간을 사색하는 존재로 만들었을까. 성서적(聖書的)인 해석에 따르면,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지식의 나무 열매를 따 먹고 타락하는 것을 보고 신이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면서도 연민을 느껴 인간에게 베푼 은혜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은 죄에 대한 형벌로 노역(勞役)하도록 만들었지만, 사색을 통해 ‘잃어버린 낙원’을 복원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악몽과도 같은 험난한 역사 속에서 인간이 사색과 상상력을 통해 창조한 문화가 유토피아에 대한 꿈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화란 무엇인가. 그 정의는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달무리와도 같이 명백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내면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하면, 문화는 신이 불완전하게 만든 세상을 인간의 힘으로 완성하려는 노력 가운데서 얻어진 결과이자 그 빛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크리스토퍼 말로는 문화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예술은 저항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고, 매슈 아널드는 “문화의 기원은 호기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것에 대한 사랑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는 거칠고 황량한 세계를 상상력에 바탕을 둔 인간 의지를 통해 완전한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으로 시를 썼다. 그의 시에 의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유난히 찬란한 색채와 이국적인 언어들이 현란하게, 그러나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가 ‘어둠의 저주’라는 시편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 것은 불완전한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 의지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내 그것들의 울음소리를 들었지 ―그 공작새들의 울음을,

그것은 황혼을 슬퍼하는 울음이었던가.

아니면 나뭇잎들이

불꽃 속에서처럼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는 것을

슬퍼하는 울음이었던가?



시인이 ‘어둠의 저주’에서 대낮에만 그 아름다운 날개를 펴는 공작새를 어둠과 싸우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불완전한 자연과 싸우는 인간 의지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밝힐 필요는 없겠다.

아무튼, 인간이 불완전한 자연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색에서 비롯된 비전 때문이다. 인간은 신이 부여한 사색의 힘을 통해 존재 의미를 탐색하고 그것과 함께하는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인식론적으로 터득해 그것을 역사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잃어버린 낙원에 비유할 수 있는 유토피아 건설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인간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거나 발견할 때 느끼는 절대적으로 순수한 기쁨은, 이러한 가정을 증명해주는 심리적이면서도 존재론적인 단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색을 통해 발견하는 것은 철학적인 진실만이 아니다. 그것은 회상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갈 때도 짙은 향수 속에 순간적이지만 순진무구한 절대적인 기쁨을 갖게 한다. 또, 사색은 상상력과 함께 이 거친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모든 인간적 노력의 근원적 에너지는 물론 그 바탕을 제공한다.

많은 사람이 사색은 철학과 같은 인문학에서만 필요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 문명을 이룩하는 데 필수적인 과학적 발견을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도 한다. 이를테면, 케플러는 플라톤이 사색을 통해 우주에 존재하는 것으로 상상한 다섯 개의 규칙적인 입체에 대한 가설을 바탕으로 태양계의 운행 법칙을 발견했다. 미국 원자폭탄 개발 총지휘자였으나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해 공직을 떠나게 된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탁월한 과학적인 업적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물리학자가 되기 전에 고전문학자로서 많은 사색을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과학자들은 깊은 사색을 통해서 얻은 가설 없이 과학적인 발견이나 발명을 할 수 없다. 실험은 사색을 통한 상상력으로 세운 가설을 현실적으로 증명하는 작업 과정이다. 불완전한 자연과는 다른 세계, 즉 인간이 상상력으로 발견해서 창조한 과학 세계 및 예술 세계는 모두 사색에서 출발해 이룩한 인간 의식의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색과 상상력을 통해 숨어 있는 새로운 현상과 지식을 발견할 때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노력이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비 때문은 아닐까? 아담과 이브는 신처럼 되기 위해 금지된 지식의 열매를 따 먹고 타락해서 낙원을 상실했지만, 인간은 사색을 통해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유토피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지 않는가. 독일의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지식의 나무 열매를 두 번째 먹음으로써만 우리는 낙원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계의 노예가 되어 사색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은 생의 중요한 부분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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