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불확실성 시대 민·관 합동 컨트롤타워 시급… 새 균형전략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문화산업포럼 2022’ 첫 번째 세션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최석영 전 주제네바 대사,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김동훈 기자

■ 문화산업포럼 2022 - 1세션:경제패권 전쟁 속 한국산업의 좌표

“다자간 자유무역체제 종식되고
G2 신냉전·경제패권시대 도래

美·中 사이서 균형전략 필요
반드시 脫중국이 답은 아니다”

무역갈등으로 촉발된 미국과 중국 간의 충돌이 안보, 보건, 환경 등과 결합한 경제패권 다툼으로 확전하면서 다자간 무역규범에 의한 자유무역주의 체제는 종식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새 질서가 도래하는 대(大)전환의 시기,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미·중 간 균형 있는 협력관계 및 초격차 기술 유지를 통해 두 강대국으로부터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한국 기업에 반드시 위기 요인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29일 ‘문화산업포럼 2022’ 첫 번째 세션(경제패권전쟁 속 한국 산업의 좌표)에서 정치외교 전문가들은 “완전히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고 있다”며 변화된 국제 환경에 맞는 한국의 새로운 전략 마련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좌장으로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최석영 전 주제네바 대사,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토론에 참여했다.

이들은 미·중 경제패권 경쟁이 일시적이거나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최 전 대사는 “최근 국제무역질서는 정부의 개입이 강화되는 관리무역과 노동, 인권, 환경 등 비(非)무역적 요소가 포함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전 본부장도 “단순히 경제적 이득만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통해 진영 가르기 측면까지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냉전, 경제 패권주의가 도래했다는 해석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시욱 교수는 “더는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경제 질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이승주 교수는 “경제와 안보의 연계가 필수인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새 질서의 주도권을 누가 잡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누가 동맹이고 누가 적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대응전략 마련을 어렵게 한다. 이와 관련, 이승주 교수는 “미국은 중국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가로 인식하는 동시에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의 상호의존을 유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반드시 ‘탈중국’이 답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시욱 교수는 미국 주도 반도체 동맹인 ‘칩4’를 예로 들며 “미국의 칩4 결성 목적 중 하나가 국내 사업 육성이란 점에서 한국, 대만보다 미국 인텔사가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차이나 리스크’보다 ‘미국 리스크’가 심각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포럼 연사 및 토론자들은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 전략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도, 경제통상적 관점으로도 미국과는 동맹관계(안보), 중국과는 경제 파트너 관계이므로 미·중 양국과의 균형 있는 협력관계 구축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최 전 대사는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비중 축소는 불가피하다”면서도 “우리가 추구하는 핵심가치인 민주주의 시장가치와 대한민국 국가 주권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균형 전략을 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승주 교수는 “초불확실성 시대에 특정 국가 의존도를 높이는 국가전략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력대상으로서의 ‘매력’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 등의 기술 초격차 전략으로 미·중 양국으로부터 영향력을 유지해 두 강대국의 전략에서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최 전 대사는 “상호의존의 비대칭적 관계에서는 열세에 있는 국가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며 압도적인 기술 격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전 본부장도 “기술격차를 유지하는 등 우리만의 안전장치를 하나씩 만들어간다면 보복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효율성이 조금 떨어지게 되더라도 안정화 쪽에 방점을 두고 움직일 필요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 전 대사는 “IRA에 규제만 있는 게 아니라 청정에너지 관련 인센티브도 많다”며 “패닉에 빠져 있지 말고 한국의 강점과 IRA 혜택을 연계해 한국 기업에 유리한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욱 교수도 “현재 IRA는 경제는 고려되지 않고 안보만 강조돼 미국 기업들의 우려도 크다”며 “IRA 시행령이 나오기 전에 정부가 적극적인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또 미·중 경제패권 경쟁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해 민·관 합동의 국내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 전 대사는 “경제안보를 국가안보전략 핵심 어젠다로 편입하고 긴급대응체제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혜진·이근홍·이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