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달러 유동성 불안에 ‘경제 하방’ 위험… 낙후 외환시스템 혁신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김경수의 Deep Read - 환율 급등과 정책 대안

미국 통화긴축 → 국채수익률 폭등 → 달러 신용시장 위축… 해외의존도 높은 한국경제에 ‘부수적 피해’
외환 쌓아놓고 ‘돈으로 돈 막기’식 ‘역풍 개입’방식으론 한계…‘달러화 자금 조달원’ 다양화 절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올해 2분기 보유외환 154억 달러를 순매각했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간 순매각 규모는 377억 달러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급이다. 해당 기간 한은은 5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 모든 조치에도 불구,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일각에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외환 보유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현실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문제는 ‘달러화 유동성’이 우리 경제에 ‘대외충격의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입히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달러화 자금 조달원’이 다양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낙후된 외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부수적 피해

막대한 규모의 시장 개입과 긴축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는 것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가치가 오르기 때문이다. 도표는 코로나 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1월 초를 기준(100)으로 올 9월 말까지 일별 주요국 통화가치를 보여준다. 달러화는 12% 상승했다. 엔화(25%), 원화(20%), 유로화(14%), 위안화(3%) 순으로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가 떨어졌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원화가 우크라이나전쟁의 피해를 입은 유로화보다 더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사례가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유로화보다 원화가 더 하락했던 2010년대 초에도 있었다. 이 현상은 원화가 ‘대외충격의 부수적 피해’를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환율은 두 요인에 의해 움직인다. 하나는 내외 금리 차다. 유럽의 스위스프랑처럼 동아시아 지역의 안전자산이었던 엔화가 오히려 원화보다 더 떨어진다는 건 일본은행의 초완화적 통화정책 기조 때문이다. 포스트 팬데믹의 승자로 여겼던 중국의 위안화가 급격히 하락 추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미 간 금리 역전이 치솟는 원·달러 환율의 일부 요인일 수는 있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미 Fed(2022년 3월)보다 앞선 시점(2021년 8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원화 약세를 막지 못했다. 즉 환율을 움직이는 두 번째 요인은 국가 간 성장 격차다.

지난 8월 말 미 Fed는 인플레이션을 2%로 떨어뜨리는 것이 유일한 통화정책 목표임을 선언했다. Fed의 긴축 통화정책 기조는 각국 중앙은행의 경쟁적 긴축통화정책을 동반하고 글로벌 경제의 침체 가능성 또한 높인다. 특히 해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성장의 하방 위험이 커진다.

◇달러 유동성 문제

변동환율제도가 가지는 장점은 환율이 경제가 균형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데 있다. 원화는 수출시장에서 엔화와 위안화와 경쟁한다. 두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원화도 떨어져야 한다. 전쟁이 장기화할 때 상당 기간 에너지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원화가치도 하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원·달러 환율이 충분한 경제적 근거 없이 그 오름세(변동성)가 지나치면 다른 데서 그 요인을 찾아야 한다. ‘대외충격의 부수적 피해’는 달러화 유동성에서 비롯됐다. 증권이나 주택 등 자산가격이 단기간에 급락하면 거래량은 위축되는 속성이 있다. 자산가격의 가파른 하락이 유동성 부족을, 유동성 부족이 다시 가격을 끌어내려 시장 변동성과 유동성이 상호작용을 한 결과다.

한편 ‘베이시스 스와프’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건 차익거래의 기회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달러화가 국내로 유입되지 못한다는 걸 뜻한다. 차익거래가 ‘환위험’을 제어하지만 ‘유동성 위험’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환시장이 안정적일 때 베이시스 스와프는 0.5% 남짓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5%가 넘었고, 코로나 팬데믹 초기 미 Fed와 통화 스와프 직전 2.5%에 접근했으며, 최근 1.5%를 넘겼다.

달러화 유동성의 문제는 불안한 미 국채시장에서 비롯됐다. 일반적으로 안전자산 선호가 일어날 때 미 국채로 자금이 몰리게 되고 수익률은 하락한다. 그러나 9월 미 국채 수익률은 급등했다.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Fed의 긴축 통화정책 기조가 그 배경이다. 물가안정에 대한 Fed의 강력한 의지가 국채시장의 불안을 일으켰다.

◇선진적 외환 시스템

미 국채 수익률 폭등은 국채시장의 유동성 부족으로, 유동성 부족은 다시 국채를 기반으로 하는 단기 달러화 신용시장의 위축으로, 글로벌 파급효과를 불렀다. 전 세계에 달러화를 공급하는 글로벌은행에 대한 ‘레버리지(자본 대비 자산) 규제’가 미 국채에 대한 수요 기반을 위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정책 당국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보유 외환 확충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현 상황에서 보유 외환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돈을 돈으로 막는 ‘역풍 개입’ 방식은 한겨울에 문을 열고 난방을 가동하는 것과 같다. 2014년 중국은 4조 달러의 외환을 보유했지만 2년여 외환 불안을 겪으면서 1조 달러를 날렸다. 더욱이 미국의 무역촉진법은 외환정책에 불공정 관행을 추구하는 나라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경상수지는 달러화 자금의 중요한 원천이기는 하나 이것만으로는 역시 충분한 정책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 경제가 성숙하고 선진화하면서 해외주식투자나 해외직접투자가 크게 늘고 있으며, 레버리지를 동반하는 파생외환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로 우리나라 순대외자산은 늘고 있지만 외화자금 조달에서 차지하는 경상수지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보고서에서 경고했듯, 한국의 외환시장이 대외충격에 취약한 것은 ‘달러화 자금 조달원’이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낙후된 외환 시스템이 최대 요인이다. 정책 당국은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보유외환+거시건전성 정책+외환거래법’ 등으로 구축된 외환 시스템은 글로벌 금융위기 후 외환 부문의 안정성에 나름 기여했지만, 이젠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대외충격의 부수적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호주의 경우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호주의 외환보유액은 600억 달러도 되지 않는다. 경상수지도 지난 2년을 제외하면 만성적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가 세계 최고의 국가신용등급을 보유하는 것은 선진적인 외환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 관찰대상국에 올랐다. 정부는 이를 기회로 여겨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외환 부문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 용어설명

‘부수적 피해’란 특정한 목적이나 계획에 따라 따라붙는 피해나 손해를 가리키는 말.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뜻으로도 쓰임. 본래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경제·사회영역에서도 사용됨.

‘베이시스 스와프’는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유동성을 나타내는 지표. 외국인이 국내로 달러화를 들여와 환율 변동 위험을 제거하고도 얻을 수 있는 무위험 차익. 시장이 불안할수록 수치가 높아짐.


■ 세줄요약

부수적 피해 : 미국 Fed의 통화긴축정책으로 세계 각국 화폐 가치가 하락. 원화는 특히 낙폭이 큼. 미의 공격적 금리 인상이 우리 경제에 ‘대외충격의 부수적 피해’를 입히는 것. 이는 한국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됨.

달러 유동성 문제 : ‘미 국채 수익률 폭등→국채시장 유동성 부족→단기 달러화 신용시장 위축’이 글로벌 파급효과를 불러옴. 한국의 높은 ‘베이시스 스와프’ 수익률은 달러화의 국내 유입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뜻함.

선진적 외환 시스템 : 보유외환 확충은 좋은 대안이 아님. 한국 외환시장이 대외충격에 취약한 건 ‘달러화 자금 조달원’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 낙후된 외환 시스템을 혁신할 때 대외충격의 부수적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