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尹 ‘자유론’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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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국정 지표로 자리매김한 自由
시민의 적극적 자유 보장해야
간섭 최소화 원칙과 조화 중요

공교육과 기초생활 지원하고
특정 가치관 강요는 절대 금물
규칙 준수할 시민의식도 중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사에서 국가적 난제를 풀어가기 위해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국정 기조로 제시했다. 이후 8·15 광복절 경축사와 유엔 기조연설에서도 자유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자유에 대한 강조는 우리 모두 자유인이라는 믿음에서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정책적 노력을 시작해 보자는 뜻이다. 국무회의에서도 대통령이 자유를 역설했다는 것을 보면, 이제 자유는 윤 정부의 국정 가치로 자리매김했다고 봐도 틀림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유만큼은 누구나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로서 훌륭한 국정 운영의 논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자유론이 국정 운영의 기본 가치로서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못하고 공허하게 들린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의 자유론이 아직 국정 운영 철학으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 같은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유론을 더욱 정교한 논리로 국정철학으로 제시하고, 정책으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옥스퍼드대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인간의 자유를 두 가지 종류로 나눴다. 외부의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누리는 자유를 소극적 자유로 정의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의도적으로 추진하는 자유를 적극적 자유로 봤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와 경축사에 나타난 인간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외부의 침해와 간섭이 없는 소극적 자유의 개념에 가깝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사유재산을 빼앗는 행위는 타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며, 때에 따라 필요하다면 형사처벌도 해야 한다. 소극적 자유의 실현은 경제성장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가장 효율적인 지점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고, 나아가 경제성장 또한 이루게 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에 그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외부의 간섭만 없다면 모든 사람이 저절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이 어떤 꿈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각자가 자유롭게 판단할 일이지만, 국가의 간섭이 없다고 모두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부모를 잃은 고아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외부 간섭이 없더라도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따라서 보편적 가치로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정부는 스스로 자유를 누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시민에게 공교육, 기초생활 보장, 장애인 생활 지원을 제공하는 것 또한 자유를 위한 것이다. 윤 정부의 국정 논리가 소극적 자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민들에게 자유를 강요한다면 이 또한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특정한 가치관을 제시하고 강요하는 일은 오히려 시민들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고 부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시민의 소극적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보호하며, 그들이 적극적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되,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도록 최대한 사적 영역을 보호해야 한다.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 시민들도 법률과 사회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곳이다. 법과 규칙은 당장에는 시민의 자유를 제약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규칙 덕분에 시민들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운전할 때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교차로를 통과하면 큰 사고가 난다. 반대로 신호를 지키면 우리는 목적지까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 시민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로를 건설하는 등의 공공 서비스는 정부의 몫이다.

이 같은 공공재가 효율적으로 생산된다면, 자유는 더 풍족해진다. 자유는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소중한 가치다. 윤 정부가 성공하려면, 자유의 다양한 모습을 구체적인 공공정책으로 실현해야 한다.